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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공은 아주 조용히 피어났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서>

by 무명치의

나는 왜 성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건 도대체 어디서 온 생각일까.


나는 질투심이 꽤 강한 사람이라, 처음엔 친구들에게서 온 것 같았다.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만남 뒤엔 항상 ‘나는 왜 제자리일까’ 하는 자책과 비교가 후폭풍으로 따라왔다.

그래서 친구들의 성공은 나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올 것 같았고,

진심으로 축하하려 해도 마음 한구석이 쓰라릴 것 같았다.

결국,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기 위해서는, 나도 그만큼 성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진심이 온전히 닿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성공으로 마음의 균형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그들의 삶을 모르는 '무정보인 상태'로 응원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지 않고,

다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길, 행복하길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성공의 이유 하나는 사라졌다.


그다음 남은 이유는 ‘발언권’이었다.

나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 성공해야 한다고 믿었다.

초, 중학교 시절 뭐 하나라도 잘하지 못했을 때, 동급생들에게 무시를 받았던 기억 때문일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라는 의구심을 벗기 위해선, 결국 성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공이 있어야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또 얼마나 덧없는 욕심인가.

성공으로 발언권을 얻은 사람 중에 진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성공이 커질수록 말 한마디의 무게도 커진다.

발언권은 커지지만, 그만큼 검열도 따라온다.

그리고 성공으로 얻은 말은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




문득 조선시대 천재 문신, 신숙주가 떠오른다.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봤다.

아마 엄청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몇백 년 후 내가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삶은 잊혔다.

그에 대해 잘 모르면서 이름만 언급한다면, 그 이름이 남는 게 과연 영광일까.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는 능욕일지도 모른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미라들을 본다.

그들은 자신이 미라 상태로 파헤쳐지는 것을 원했을까.

미라 상태로 파헤쳐지는 것과, 내가 뜬금없이 이름을 언급하는 것, 사실 비슷한 것 아닐까.

어쩌면 성공이라는 것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살아 있을 땐 큰 영광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저 미라처럼 흔적만 남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정작 성공이 뭔지도 모른다.

진짜 화끈하게 '나 성공했습니다. 하하하!' 하는 사람은 내 주변엔 없다.

대한민국 1000대 그룹의 수장이면 성공일까?

하루에 환자 500명 보는 치과 병원의 병원장이면 성공일까?

강남, 서초, 송파 대단지의 국평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 성공일까?

나는 성공이란 건 강과 바다의 경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강이고, 어디서부터 바다인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어느 즈음부터 짠물이 섞이고, 어느 즈음부터 강물이 옅어진다.

그 흐름 어딘가에서, '이쯤이면 바다겠지' 하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성공도 그렇다.

명확한 기준이 없기에 아무도 그걸 정확히 정해줄 수 없다.

단지 사람들은 '나 성공했어' 하면 '아니야, 너 그거 없잖아'라고 인정하지 않거나

'나 성공하지 못했어' 하면 '넌 그걸 가졌으면서 무슨 소리야, 겸손 떨지 마'라며 반박한다.




이렇게 보면, 성공이란 건 애초에 사회가 만들어놓은 대강의 합의로 보인다.

‘이쯤이면 성공이라 하자’는 기준 위에서 우리 모두가 비교되고 평가받는다.

나 역시 그 합의 속에서 오랫동안 끌려 다녔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그 기준이 나를 숨 막히게 할 때는, 내가 나만의 합의를 새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가끔, 어쩌면 나는 이미 '대강'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성공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마치 강과 바다의 경계를 mm 단위로 나누려는 사람과 같다.

그런 사람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성공이라는 건 결국 그런 거다.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 말 한마디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아도, 적어도 내 마음의 무게는 달라진다.

성공이 발언권을 주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믿는 힘이 발언권을 만든다.

남들이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한 발언권이라고 믿는다.




성공은 남들에게 보이는 자격증이 아니다.

누군가보다 앞서거나, 비교의 저울 위에 올라서는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계속 나 자신을 응원해 주는 일에 더 가깝다.

때로는 쉬어도 괜찮다고, 지금 이 길 위에 서있는 나도 괜찮다고,

조용히 되뇌는 순간들 속에 성공이 숨어있다.

결국 성공은 성취의 끝에 있는 결과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믿어주는 태도 그 자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믿음으로 하루를 건넌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9


틀니 관련

1. 틀니 리텐션이 안 나와요.

- 틀니가 잘 빠진다는 말이다. (근데 틀니는 원래 잘 빠짐)

2. 환자분이 틀니가 너무 잘 빠진데요. or 환자분이 틀니가 또 아프데요. or 틀니 환자분 또 오셨어요.

- 직원이 틀니 환자 제발 안 보면 안 되겠냐고 치과원장에게 요구하는 말이다.


efef.jpg 나이가 들면서 잃어가는 것 중에, 치아도 있다. 틀니는 물(잇몸) 위에 둥둥 떠다니는 배(틀니)로 식사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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