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커닝하면 생기는 일>
나는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누구의 삶이 맞고, 누구의 삶이 틀렸는지 판정해 줄 채점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선택을 해도 누군가는 만족하고, 누군가는 후회한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편안하고, 어떤 사람은 불편하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고 해서, 아무 선택이나 다 괜찮은 건 아니다.
분명히 오답은 있다.
그리고 그 오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가장 대표적인 오답은 남이 선택한 인생을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이다.
다들 이렇게 살더라.
이 나이엔 이 정도는 해야 한다더라.
누군가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더라.
이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어가 없다.
'다들, 누군가, 사람들은'이라는 말 뒤에, 정작 선택을 해야 할 '나'는 빠져 있다.
그 방향이 나에게 맞는지, 그 속력이 나에게 적당한지,
그 성공이 내가 진짜 원하는 건지에 대한 질문은 없다.
남의 선택을 빌려오면 고민은 줄어든다.
잘되면 나의 실력이고, 잘 안 되면 환경이 나빴다고 말하면 되니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안고 가야 할 책임은 미뤄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시간 끝에 남는 건
성공도 실패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다.
또 하나의 오답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 채 사는 것이다.
싫은 건 잘 안다.
하기 싫은 일, 피하고 싶은 상황, 버티기 힘든 관계.
그런데 좋아하는 건 잘 모른다.
어릴 때부터 그걸 물어본 사람도 없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대신 이런 질문만 받아왔다.
공부는 잘하냐.
대학은 어디냐.
직업은 뭐냐.
결혼은 했냐.
집은 샀냐.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안 하냐.
그러다 보니 삶의 방향은 좋아함이 아니라 회피로 결정된다.
이건 싫으니까 안 하고, 저건 힘들어 보이니까 피하고, 그렇게 남들이 정해 놓은 중간쯤에 서게 된다.
그게 흔히 말하는 평범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평범은 편안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다.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어진다.
직업도 그렇고, 인간 관계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선택의 이유가 나에게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흔들림에도 삶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린다.
금전 문제 대해서도 비슷하다.
얼마면 충분한지 모르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묻는다.
남들은 얼마면 은퇴하냐고.
남들은 이 정도면 만족하냐고.
이 정도면 평타는 치냐고.
하지만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방향을 잃었다는 신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떤 불편함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숫자부터 묻는 건 순서가 뒤바뀐 일이다.
나는 이제 정답을 찾지 않는다.
대신 오답은 피할 줄 안다.
이 선택이 정말 내 선택인지, 아니면 남의 기준을 빌려온 건지.
이 방향이 불안해서 싫은 건지, 아니면 나와 맞지 않아서 싫은 건지.
그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남의 기준은 항상 친절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전해 보이고, 합리적으로 들리고, 지금의 불안을 빠르게 덮어준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인생은 시험이 아니다.
정답을 맞힐 필요도 없고 누구보다 빨리 도착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오답을 선택하면, 틀렸다는 고통을 몸으로 겪게 된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둘 사라진 뒤에야
그 선택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답은 없어도 괜찮다.
다만, 적어도 이 삶이 내 선택이었다는 건 분명히 하고 싶다.
잘됐을 때는 내 덕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잘 안 됐을 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
그 정도면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남들보다 느려도 괜찮다.
대신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그 정도면, 이 인생은 충분히 pass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21
교합 관련
1. 교합이 안 맞네요.
- 씹는 높이가 높던지 낮던지, 뭔가 부조화가 있다는 말이다.
2. 교합조정 좀 할게요.
- 씹는 높이가 높은 경우 교합을 낮춰서 다른 치아와 높이를 맞추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