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우리 아버지가 시골 내려가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할머니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들(총 4명)이 시골에 도착하면,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게 만드는 모습이
마치 쿼드코어 CPU를 돌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거기에 덧붙여서 말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힘들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는 문맹이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어떻게든 글을 익히게 하려고 하셨지만, 끝내 포기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말로는 수리 감각은 엄청나게 뛰어나시다고 한다.
우리 가족들과 할머니의 조카들도 자연계열 쪽으로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걸 보면 나도 할머니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할머니 머리가 쿼드코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의미를 단박에 이해했다.
내 머릿속도 네다섯 개의 주제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부모님 집에 살 때 엄마는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니?”
생각이 많았다. 걱정도, 계획도, 후회도, 기대도 섞여 있었다.
대답을 하고 싶어도 정리가 안 돼서 말로 꺼내지 못했다.
정말로 말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나는 아내 이외에는 소통할 곳을 거의 다 끊어냈다.
무정보가 답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마주하니 부작용이 생겼다. 머릿속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했었나 보다.
아내 외에는 말할 기회가 없으니, 머리가 쿼드코어가 아니라 옥타코어가 될 기세였다.
쿼드코어까지는 버티겠는데, 옥타코어는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몇 년 전 유튜브를 시작했다. 복잡한 머릿속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러 주제의 말들을 게워내는 느낌이라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아 안심했다.
물론 유튜브가 성공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머릿속은 한결 가벼워졌다.
영상도 쌓이고, 내 머릿속은 더 안정되자 이젠 글로 정리할 때가 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게 브런치 스토리였다.
예전에 가입만 해놓고 언젠가는 해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글쓰기 플랫폼이다.
예전에 써 놓은 글 두 개로 작가 승인을 받고, 무슨 글을 쓸지 고민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왜 번뜩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끝없이 고민할까.
결론은 간단했다.
증명을 통해 딱히 얻을 것도 없으면서, 그 마음 하나로 이렇게 살아온 것 같다.
그 후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해야만 했던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번 글쓰기는 디스크 조각 모음이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인생이 조각모음처럼 정리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파편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됐다.
다만, 잊고 싶었던 일도 있었고, 다시 꺼내야 했던 생각도 있어서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서서히 정리되고, 오래된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캐시, 쿠키, 방문기록, 레지스트리를 한꺼번에 비우는 느낌이었다.
요즘처럼 머리가 청명한 적이 있었을까.
결론적으로, 천재임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됐다.
대신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잠시라도 멈춰 서주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만의 조각들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고맙게도 이렇게 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와 준 당신 덕분에,
오늘도 내 머릿속은 조금 더 정리됐다.
세상과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고요했다.
Q.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