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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면 은퇴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에게

<답은 숫자가 아니라 자신을 아는 일>

by 무명치의

과연 얼마면 은퇴할 수 있을까.

치과의사 커뮤니티 ‘덴트포토’에 종종 올라오는 질문이다.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보려 한다.

나는 은퇴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은퇴를 하고자 하면 은퇴를 하는 것이고, 일을 하고자 하면 일을 하는 것이다.




만약 은퇴가 돈으로 결정되는 일이라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부자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님, 삼성전자의 이재용 님, 그리고 유재석 님 같은 분들은

지금쯤이면 은퇴했어야 한다.

반대로 길거리 노숙자들은 무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그 부자들은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고 있고,

거리에서 지내는 분들은 누구보다 느긋하게 은퇴자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충분한 자금 없이 은퇴하면 비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유자금이 충분한 상태로 은퇴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자본의 여유와 상관없이 일 자체를 놓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면 은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남에게 던진다는 건,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자기 기준이 없으니까 남의 기준을 빌려 쓰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건강 문제, 가족 상황,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을 놓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어디까지나,
은퇴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 한정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지기知己', 즉 나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은퇴 자금을 물어보는 것은 은퇴 후 경제적 환경을 알고 싶다는 뜻이다.

즉, '지피知彼'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기知己'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피知彼'만 하는 건,

남에게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려주세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이 내게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면 은퇴할 수 있냐’ 같은 단순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꼭 살아야 하는 사람이고,
세 끼는 무조건 밖에서 사 먹어야 하며,
가끔 친구들 만나서 은퇴 한 사람으로서의 가오도 잡아야 하고,
자녀 교육은 대치동 1타 강사의 학원을 실강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한적한 지방을 선호하고,
밥은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집에서 직접 해 먹는 것을 즐기며,
만나는 친구는 거의 없고,
자녀 교육은 스타 강사의 인강 패키지로 대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은퇴 자금은 자릿수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에 자신의 직업으로 100억을 벌었다고 치자.

그럼 은퇴를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때는 또 200억을 목표로 살게 될 것이다.


'무한매수법'을 개발한 '라오어'라는 레전드 치과의사가 있다.

그분은 결국 자신이 목표했던 자금을 넘어서며 '치과의사'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투자자'로서의 은퇴는 말하지 않았다.

주식에 들어가 있는 자금을 모두 현금화하지 않는 이상, 그건 실제 은퇴가 아니라 단지 역할의 이동일뿐이다.

조기 은퇴와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하는 유튜버들도 마찬가지다.

정작 본인들은 절대 은퇴하지 않고, 그 주제로 몸을 갈아 넣으며 강의하고 콘텐츠를 만든다.


어떤 일로 큰돈을 벌게 되면, 그 일을 계속하게 된다.

바로 그 부분을 우리는 캐치해야 한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파민의 노예로 살고 있는 현생 인류의 한계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은퇴를 고민할 때는, 먼저 '지기知己'를 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최소한 그건 알아야 은퇴를 논할 수 있다.


혹시 나에게 얼마면 은퇴하겠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난 500억이 있어도 은퇴하지 않고 일할 것이다.

반박하고 싶으면, 501억 계좌이체를 해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주인님 말이 맞다는 걸 확실히 증명해 드릴게요.

(1억은 마통에 -1억이 있어서...)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7


근관치료(신경치료) 관련 2

1. 오늘 세척까지만 해야 될 것 같아요.

- 근관치료 오늘 마무리 못한다는 뜻이다.

2. 오늘 충전 or 근충 하죠.

- 근관치료 마지막 단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3. 칼슘 or 캐비톤 주세요.

- 오늘 진료는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뜻이다.

근관치료 전에는 비어있는 신경관이, 치료 마무리 후 어떤 재료로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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