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 너의 선택>
썸네일에는 주로 굵은 폰트와 불타는 글씨, 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한 강연자가 나온다.
대부분의 내용은 비슷하다.
“당신이 지금 놀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앞서가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따라잡을 수 없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괜히 조급해진다.
이런 사람 대부분은 자기 강의를 파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조급함은 최고의 판매 전략이니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면,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특히 '30대, 40대에 느끼는 친구와의 격차'라는 제목의 영상.
... 일단 자주 보는 친구가 있는지부터 물어봤으면 좋겠다. 예의 없는 유튜버.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는 줄어들고, 비교할 사람조차 없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격차도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열심히 사는 편이다.
안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피부에 가끔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 전신에 올라오는 ‘콜린성 두드러기’다.
내가 좋아하는 포항공대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형,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게 편한 사람이에요."
그 후배는 명문대 교수가 되었다.
나도 열심히 사는 과정에서 분명 얻은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몇 가지 결과물.
치과의사라는 직업, 2020년식 포르쉐 마칸 중고, 그리고 플러스가 된 적 없는 1억짜리 마통.
그런데 열심히 산만큼 행복한지 묻는다면, 대답이 어렵다.
행복하다고 단정할 자신이 없다.
행복이라는 건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은행 잔고나 명함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걸 추천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행복과 무관하니, 열심히 살지 마라'라고 하기엔 또 이상하다.
나만 열심히 살고, 남한테는 그러지 말라하는 내로남불 모순 덩어리가 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죽기 10초 전에는, 열심히 산 사람이 놀아 재낀 사람보다 후회를 더 많이 하지 않을까?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괜히 열심히 살았네...'
내 상상일 뿐이지만, 충분히 이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조금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는 결국, 그 사람이 원했던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열심히 살았든, 대충 살았든, 본인이 선택한 길이라면 후회도 덜하지 않을까.
인생에는 몇 번, 아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만큼은 누구 말도 듣지 말고, 내가 모든 걸 직접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잘 됐을 때는 내 덕이고, 잘 안 됐을 때는 원망할 사람이 없다.
가장 피해야 할 건,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말에 따라, 남의 눈치를 보며 결정하는 것이다.
그 ‘남’이라는 사람은 내가 가장 안 됐을 때, 오히려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잘되길 바란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너무 잘되면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내 결론은 단순하다.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와 후회는 본인이 감당하면 된다.
남의 결승선이 아니라, 나의 결승선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답이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6
근관치료(신경치료) 관련 1
1. 러버댐 할게요.
- 치아에 고무 막을 끼우겠다는 뜻이다.
2. 엑세스오프닝 할게요.
- 근관치료 첫 단계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3. 근관 확보가 잘 안 되네요. or 석회화가 심하네요.
- 근관이 좁아져서 오래 걸리고 여러 번 와야 한다는 뜻이다.
4. C형이네요.
- 근관 모양이 일반적이지 않아 난이도가 어려워졌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