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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May 20. 2024

훈수는 이제 그만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처음 닭을 키운다고 했을 때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닭과 관련된 나름의 추억을 바탕으로 가르치듯 툭툭 던지는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볍고 단편적인 사실의 나열을 들어야 하는 시간들은 아깝고 지루했다. 대단하지 않은 경험으로 대단한 말의 향연을 쏟아 낼 때 나는 웃음으로 응대했다.


삶의 전환점에서 선택한 자연 양계는 닭의 종류와 기르는 방식, 규모와 시설, 차별화된 유통과 마케팅이 필요한 전문 영역의 분야였다. 집 마당과 뒤뜰에서 몇 마리 키우던 분들이 던지는 말들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이유다.

15년이 흐른 지금도 자신들의 굳어진 생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훈수를 둔다. 나는 여전히 형식적인 끄덕임으로 대응한다.


대추농사로 유명한 분의 농장에 갓 2년 차 대추 농부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묻고 배우는 듯했다. 다음 해 와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늘어놓으며 가르치려 했다. 1년 사이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워들은 정제되지 않은 설익은 정보들을 툭툭 던지며 아는 체한 것이다. 어이없고 황당했다. 그런 소리 늘어놓을 거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며 쫓아 보냈다고 하셨다.


알고 있는 것을 내뱉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귀농, 귀촌인들이 그렇다. 귀농인들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해당 분야와 관계없이 아는 게 많음을 내세운다. 엉뚱한 곳에서 자존심을 세우려 한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실전 경험과 노력의 가치보다 얕은 지식과 풍문으로 주워 담은 어설픈 상식을 앞다투어 늘어놓는 오류를 범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훈수에 강한 거부감만 불러일으킨다.

상대적으로 훈수를 듣는 대상의 대부분도 귀농, 귀촌인들이다. 각각의 훈수 배틀이다.


훈수는 바둑이나 장기판에서도 천대받는다. 훈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훈수는 말이 길고 두서가 없다. 훈계처럼 들려 듣는 사람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훈수는 듣는 이의 마음과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다. 훈수는 보통 속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해 놓은 많은 일중의 일부를 끄집어내고 지적한다. 듣는 사람의 상황과 조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례한 일이다. 부탁하지 않았는데 뭐든 알고 있다는 자신을 내세우는 가벼운 처신이다. 가고 나면 어이없어 헛웃음만 나온다.


훈수는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때와 장소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제사를 지낼 때도 훈수를 둔다. 한 집안에서도 지역이나 가풍에 따라 제사의 규모나 상차림, 절하는 순서와 절차가 다양하다. 제사를 지내면서 삼촌과 조카가 다투는 모습을 봤다. 고집 세기로 유명한 집안에서 문제 될 게 없는 문제로 팽팽하게 대립한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훈수 때문이다.


훈수는 잔소리와 유의어다. 잔소리는 비교적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다. 훈수는 관계의 깊이나 만남의 횟수와 상관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훈수를 둔다. 무례한 경우다. 듣기 싫기로는 도긴개긴이다


훈수는 조언과 충고와는 다르다. 조언은 듣고 충고는 받으며 훈수는 거부한다. 조언해 주는 사람은 고맙고 충고해 주는 사람은 믿음이 간다. 훈수 두는 사람은 멀리한다. 훈수 두기 좋아하는 사람을 '훈수꾼'이라 부른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거기에 있다.


조언과 충고를 떠나 가르침의 말은 장황하거나 겉돌지 않는다. 가르침의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닿아 스스로 해답을 찾게 한다. 이도 저도 아닌 훈수는 이제 그만!


나의 서툰 글과 말도 누군가에게 훈수로 들리지 않기를 늘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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