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만난 사람들-8]
일과 관련되어 관공서에 드나드는 경우가 잦다. 자연스레 공무원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다. 군청, 읍 사무소, 보건소, 농업기술센터 등 각각의 기관과 필요한 업무를 위해 협력하고 도움도 받는다. 공무원에게 주민은 상황에 따라 민원인이고 함께 사업을 수행하는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당연히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은 기본이다.
30대 초반, 민주 쌤은 공무원이다. 대도시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영양사로 일했다. 나름 재미도 있고 적성에 맞는 직업이었지만 마음 한구석,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밀려왔다. 더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국민에 대한 봉사라는 직업정신에 매료돼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길지 않은 시험기간을 보내고 합격했다. 믿고 성원해 준 부모님 덕분에 편하게 공부하고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직렬은 보건직. 처음 발령받은 곳은 읍내에 있는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였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맞춤형 관리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고령화로 치매에 대한 관심과 예방, 치료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해지면서 그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치매의 조기 발견과 예방 관리 및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한 적극적 활동 등을 위해 전문성을 갖춘 인력 구성이 중요하다. 투철한 봉사 정신과 보람 있는 일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민주 쌤에게 치매안심센터는 최적의 일터였다
몇 년 전, 운영 중인 농장이 동물과의 교감 및 다양한 공예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치유 농장으로 지정되었다. 마음치유와 치매 치유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상자들을 만나고 있다. 치유 농장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시작한 첫해, 치매안심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8회에 걸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했다. 대상자는 치매 예방 군, 치매환자와 가족분들이었다. 참여 인원은 12명.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날짜를 확정하고 프로그램을 공유했다. 민주 쌤과의 첫 만남이었다. 민주 쌤은 프로그램 참여를 위한 공고부터 모집, 인솔과 프로그램 진행 과정, 마무리와 귀가까지 모든 일정을 안내하고 책임진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참가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민주 쌤의 모습이 빛나고 감동적이었다.
빈틈없는 일 처리와 치매 어르신 및 보호자들을 대하는 모습은 한결같았다. 매사에 친절하고 공손하며 야무졌다.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 때 그 사람으로부터 보이고 우러나는 자연스러움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진심은 통한다. 민주 쌤과 함께 했던 분들은 시간이 흘러도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간다.
민주 쌤은 첫 발령 후 맡은 업무를 준비하면서 다짐했다. 치유 농장에 가서 활동하는 것으로 치매를 고칠 수는 없지만 잠시라도 치매를 잊고 즐거움만 가져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민주 쌤이 어르신들을 정성으로 대하는 자세는 마음가짐에 있다. 어르신들에게 덕을 베풀면 그게 다시 내 부모님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 내가 아는 소중한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 그런 믿음으로 공무원으로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
민주 쌤은 얼마 전 큰 아픔을 겪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날들,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심성이 곱고 바른 민주 쌤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도움으로 이겨 낼 힘과 용기를 얻었다. 마음을 다독여 주는 책과 시를 읽고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며 자신을 돌아봤다. 그렇게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 내자고 다짐했다. 다시 민주 쌤은 씩씩해졌다. 시련과 아픔을 극복한 경험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어 줄 넉넉한 마음을 키웠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 자신이 받았던 사랑과 관심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요즘, 민주 쌤은 자신을 가꾸며 다듬는 일에 열심이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학원도 다닌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베풀며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자신에게 먼저 보여주려 노력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보듬어 줄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민주 쌤과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잔잔한 일상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소소하고 익숙한 행복의 순간들을 찾아 공유하기로 했다. 민주 쌤은 자신의 행복 바이러스를 멀리멀리 퍼뜨려 누군가의 문 앞에 닿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봉사하는 임무를 기꺼이 실천하는 사람이다.
한편으론 민주 쌤에게 사소한 부탁이 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