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의 명성 높은 과일가게
[농부가 만난 사람들-9]
이곳저곳에서 과일을 사 먹었는데 맛이나 신선함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는 분들에게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가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모두가 주저 없이 한곳을 가리켰다. 바로 가서 과일을 사 먹었다. 소문 그대로였다.
지역에서 이름난 과일가게는 부부가 운영하신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시작한 지 30년이 돼간다. 30여 년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새벽에 문을 열고 늦은 밤까지 가게의 불을 밝혔다. 한순간도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손님을 맞이하는 매 순간이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은 늘 한결같다. 그전까지는 터미널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위아래 형제들의 학비를 댔다. 오빠와 동생들을 모두 공부시켰다. 힘든 줄 몰랐다.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 보람찼다.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날들이었다. 두 분은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서로를 지켜봤다. 바라보기만 했던 두 분의 사랑은 탄탄한 믿음으로 결실을 맺었다.
마흔 즈음에 하나가 된 두 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터미널 근처 과일가게를 인수했다. 1997년, IMF 바로 전이었다. 늦은 나이에 만났지만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 결혼식도 미뤘다. 가게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게 우선이었다. 하루 두 시간만 자고 일했다.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큰 수해로 읍내 전체가 물에 잠겼다. 과일가게는 읍내에서도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갑자기 물이 쏟아져 들어와 과일 박스와 꾸러미, 바구니, 낱개의 과일들이 순식간에 둥둥 떠내려갔다. 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모든 걸 버리고 빠져나가 높은 곳으로 대피했다. 하늘이 야속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특유의 성실함과 긍정적인 생각은 위기 때 더 힘을 발휘했다.
-철마다 최고의 과일을 내 놓는다-
다시 과일가게의 문을 열었다. 좋은 과일을 찾아 이곳저곳을 밤낮없이 누볐다. 가격은 따지지 않고 맛으로만 승부했다. 삶의 모든 방향을 과일가게의 성공을 위해 맞춰 갔다. 몇 년 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도 감귤농장만을 찾아다녔다. 지금도 유독 귤이 맛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듯하다. 두 분의 노력은 금방 결실을 맺었다. 수요도 많았지만 최고의 과일가게라는 소문은 금방 매출로 나타났다. 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두 분은 결혼을 하면서 약속했다. 늦게 출발했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가난한 모습을 보여 주지 말자고. 집을 마련하고 승용차도 구입하며 경제적 자립도 이뤘다. 늦게 아이를 가진 이유다.
과일가게가 제일 바쁜 명절을 피해 계획적으로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인생 최고의 선물인 늦둥이 두 딸은 그렇게 태어났다. 가게 때문에 거의 돌봐 주지 못했는데 속한 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엄마, 아빠의 모습과 때마다 편지로 마음을 전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최고의 가정교육이었다. 공부도 알아서 잘했다. 딸들 생각만 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행복하다.
두 딸이 엄마 생신에 보낸 편지두 분은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일한다. 새벽 6시 30분에 문을 열고 저녁 11시에 문을 닫는다. 고객과의 약속이며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생각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좋다. 두 분은 상도를 아는 상인이다. 명성 높은 '명성 청과' 이름 그대로다.
맛이 소문나 단체에서도 주문을 많이 한다. 일정하게 나가는 고정 거래처가 많다. 변함없는 신뢰가 만들어 준 선물이다. 산지에서도 맛있고 싱싱한 과일이 나오면 먼저 연락이 온다.
지금은 지역의 인구감소와 소비 트렌드 변화로 과일 수요가 많이 줄어 매출이 예전만 못하지만 아이들도 잘 성장해 제 몫을 다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과일을 통한 나눔과 봉사는 또 다른 선물이고 보람이다.
믿고 먹을 수 있는 맛있고 신선한 과일을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맛볼 수 있는 가게. 희끗한 머릿결만 세월을 증명할 뿐 두 분의 열정과 노력과 성실함은 늘 그대로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두 분의 미소가 더해져 과일은 더 깊은 향과 달콤한 맛을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