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맛-5]
이십 대 후반의 청년 규진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어떤 일이든 주저함이 없다. 맡은 일은 확실하게 해낸다. 어디서든 인정받는다.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목표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희망은 규진을 단단하게 하고 도전하게 한다. 희망은 오늘을 기꺼이 살아내게 하는 동력이 된다. 한국에 있으면 무조건 일하고 돈을 번다. 돈이 모이면 훌쩍 배낭여행을 떠난다. 규진은 둥근 지구의 어느 곳이든 거침없이 다닌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아직 가야 할 곳,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규진은 지금 한국에 있다. 한국에 있어 가장 좋은 건 맛있는 '김치'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규진의 별명 중 하나는 '김치 맨'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이런 별명을 얻기까지는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느끼한 건 못 먹었다. 어느 순간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서 꺼려지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게 됐다. 그때부터 규진의 특별하면서도 지독한 김치 사랑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 규진의 식판에 가장 많이 담긴 음식은 김치였다. 밥을 위해 김치를 먹은 게 아니라 김치를 먹기 위해 밥과 다른 반찬을 먹었다. 친구들은 그런 규진을 '김치 아저씨'라고도 불렀다. 또래의 친구들 중에는 김치를 아예 안 먹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규진의 김치 사랑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다.
당연히 어떤 음식을 먹든 김치는 필수다. 김치만 있으면 못 먹는 음식이 없다. 피자와 파스타, 짜장과 짬뽕, 햄버거를 먹을 때도 김치가 있어야 한다. 김치가 없는 식당엔 가지 않는다. 식당 선택의 기준은 김치 맛이다. 김치가 맛있는 집이면 무조건 단골이 된다. 이젠 어느 곳, 어느 식당의 김치가 맛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해외여행 중 7~800km를 달릴 때에도 규진을 견디게 한건 김치였다. 김치 관련 먹방 유튜브를 보면서 힘을 냈다. 케냐, 이집트, 남아공, 나미비아, 인도, 네팔, 필리핀, 베트남 등 어느 곳을 여행하든 직접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는 소고기를 먹는 데 김치가 생각나 배추와 오이를 사서 만들어 먹었다. 배추와 오이가 소고기 보다 비쌌다.
규진은 할머니 김치가 제일 맛있다. 김치가 떨어지면 곧장 할머니 집으로 달려간다. 할머니는 김치를 좋아하는 손자를 위해 뚝딱 김치를 담가 주신다. 김치냉장고에 가득 담긴 김치도 규진을 기다린다. 할머니 김치 중 최고의 별미는 열무김치다.
여자친구와 캠핑을 가도 김치 한 통은 필수다. 김치를 잘 먹지 않았던 여자친구도 규진 덕분에 김치를 좋아하게 됐다. 남도가 고향인 여자친구로 인해 젓갈이 들어간 김치 맛에 푹 빠졌다.
규진의 김치 사랑은 무한하고 지극하다. 무더운 여름의 노동도 김치가 있어 거뜬하다. 김치는 규진을 살게 하는 힘이다. 그 힘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린다. 다시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