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만난 사람들-2]
병철의 날들은 설렘으로 차오른다. 하고 있는 일의 만족으로 하고 싶은 일의 준비도 순조롭다. 지난 10년의 시간이 알차고 탄탄하게 영글어 계획했던 목표가 성큼 다가왔다. 40대 초반인 병철의 마음은 느긋하다. 느긋함은 열심히 달려온 날들이 안겨준 선물이다.
처음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지금의 일을 시작했듯이 서두르지 않고 내일의 꿈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그의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다.
병철의 첫 직장은 2교대로 근무하는 공장이었다. 성실한 그였지만 교대 근무로 밤낮이 바뀐 생활은 힘들었다. 젊은 날의 자유는 빡빡한 노동의 벽에 저당 잡혔다. 직장 생활의 권태와 피로가 쌓여갔다.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는 갈망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고민이 깊어 갔다. 돌파구를 찾고 싶었지만 선뜻 떠오른 대안은 없었다. 일을 하면서 찾기로 했다. 그렇게 6~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으로 물건을 싣고 들어오는 화물차 기사님을 알게 됐다. 커피를 뽑아 드리며 휴게실에서 틈틈이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생활의 어려움과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기사님과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화물차 운송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운전하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한몫했다. 일하는 짬짬이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운수업에 대해 공부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확신이 들자 회사를 그만뒀다. 처음엔 택시 운전을 했는데 낮에도 맞닥뜨린 진상 손님들 때문에 그만두었다. 직접 사람을 상대하는 일보다는 필요로 하는 물건을 원하는 곳으로 운반해 주는 화물 운송업이 적성에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아 놓은 돈으로 1톤 화물차를 구입하고 부대비용에 투자했다. 단순하고 가벼워 보이는 일도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면 절대 안 된다. 화물 운송 일도 시작하려면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다. 화물 운송자격증을 취득하고 노란색 화물 넘버도 받았다. 철저히 분석하고 준비한 만큼 병철의 새로운 도전은 날개를 달았다. 화물차를 운송에 적합한 최적의 상태로 튜닝했다. 안전장치도 부착하고 비가 와도 물건이 비에 젖지 않도록 접이식 천막도 장착했다. 작은 화물차지만 움직이는 사무실 겸 휴식공간이다.
처음부터 일감은 화물 콜 앱을 통해 수주했다. 주로 이용하는 두 개의 콜 서비스가 있는데 수요자와 공급자를 바로바로 연결해 주는 플랫폼이다. 콜이 올 때마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빨리 판단하고 선택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의 차에는 휴대폰 4대가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장 충실한 비서요, 능력 있는 직원이다. 2대는 화물 콜이 떴을 때 바로 응답할 수 있는 용도, 1대는 내비게이션 담당, 1대는 동영상 시청이나 sns 용이며 주로 휴식시간에 이용한다.
병철은 날마다 운행 일지를 꼼꼼하게 작성한다. 그만큼 고객의 요청에 정확하게 화답하고 빈틈없이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늘 그렇듯 화물 경기는 좋지 않지만 조바심 내지 않는다. 단골이 늘어 직접 일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 서로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 신뢰는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
그와 함께 일한 지도 7년이 되었다. 화물 콜을 통해 만났다. 첫 만남부터 정확한 일 처리에 매료됐다. 한 달에 한 번씩 꼬꼬들에게 먹이는 중요한 모이를 멀리 김제에서 싣고 온다. 이후 꾸준하게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병철은 성실함과 근면함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거워한다. 전화 한 통이면 알아서 척척해주는 그는 듬직한 파트너다.
그의 좌우명은 '안전운행'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실어 나르는 화물기사의 책임과 의무는 안전한 운송에 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장시간 운전하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졸음운전을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능력 중 하나다. 10년 동안 무사고로 운행 중인 병철은 진짜 프로다.
병철은 오늘도 새벽 네시에 눈을 떴다. 어제 상차해 놓은 물건을 싣고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을 달린다. 병철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 업무 시간은 12시간, 실제 운행은 8시간이다. 오후엔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이른 저녁을 먹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빨리 잠자리에 든다.
주말이면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을 마음껏 즐긴다. 병철이 주로 즐기는 여가는 캠핑과 스노보드다. 틈틈이 부모님을 모시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다니는 시간도 소중하다. 성실하게 일한 결과 꿈을 실현하기 위한 현금자산과 살고 있는 도시에 넉넉한 아파트도 구입했다.
병철의 꿈은 2~3년 뒤에 큰 차로 바꾸는 것이다. 3.5톤이나 5톤 정도의 화물차 구입을 목표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조그만 개인 사무실에서 좀 더 넓고 쾌적한 곳으로 옮겨 가는 거와 같다. 차가 커지면 한 번에 실어 나를 수 있는 화물의 양도 늘어나 수입이 증가한다. 차 안에 편의시설도 많아 피로도 덜하고 운행도 수월하다.
내일을 향해 달리는 화물차 시동 소리는 새벽을 깨우는 알람으로 울려 퍼진다. 병철은 늘 넘치지 않는 무게를 싣고 목적지가 명확한 길을 자기만의 속도로 달린다. 즐거운 노동의 가치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그의 일상은 늘 밝고 활기차다. 꿈꾸는 미래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