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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Feb 17. 2024

농부와 먹거리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 된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듯 보인다. 눈만 돌리면 먹을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각양각색의 미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화려하고 강력한 맛의 유혹에 누구나 쉽게 빠져든다. 


자극적인 먹거리에 길들여진 우리의 감각은 혀를 길들였지만 몸은 병들게 만들었다. 머리가 먼저 반응해 손이 가면 혀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으로 끌어당긴다. 무장해제된 우리 몸은 입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몸은 서서히 병들고 마음도 황폐해진다.


먹기 위해 살다가 건강을 잃고 나면 다시 살기 위해 먹게 된다. 살기 위해 먹는 음식은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고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다. 짓밟히고 갈아 엎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고개 내미는 생명들. 주변에 널려 있어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이름들을 간절히 찾는다.


 봄이 오는 들판엔 강인한 생명력으로 솟아나는 냉이, 달래, 쑥, 돌나물, 두릅, 씀바귀, 민들레가 지천이다.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오래도록 우리 땅에 뿌리내려 누군가의 소박하고 부지런한 손길을 따라 밥상에 오른다. 봄나물들은 비타민C와 단백질, 칼슘, 철분 등의 무기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부지런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때 맞춰 올라오는 햇나물들을 잔뜩 채취하여 무치고 데치고 버무려 먹는다. 남은 것들은 절이고 담궈서 보관한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한다. 봄철 햇나물은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농부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농사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다. 먹거리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먹는 모든 것이다. 농부의 농사는 오직 땅에서 길러내는 생명의 먹거리를 말한다. 봄이면 산과 들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봄나물처럼 건강하고 영양이 풍부한 먹거리를 길러내는 것이 진짜 농부의 일이다.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조화와 공존을 실현하는 소명의식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이 농부다. 자연 그대로의 날것을 길러내고 생산해 내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숭고한 노동을 통해서 농부는 직업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다. 

기계화, 대형화, 자동화, 인공지능과 결합된 농사는 온전한 농부의 일이 아니다. 그냥 농산물을 생산하는 공장이고 공장장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먹거리는 공산품이다.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명이다. 안전하고 영양 많은 먹거리를 길러내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구도자적 철학을 새기고 실천하는 일이다. 더 좋은 먹거리, 더 안전한 먹거리는 농부의 신념과 노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농촌에 농약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온갖 병충해와 가축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과 소독약들은 점점 더 독해지고 있다. 바이러스는 번식하기 위해 스스로 변이를 거듭하고 그런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개발되는 약들은 더 강력해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화학비료와 공장에서 생산된 퇴비, 각종 영양제와 농약, 제초제는 작물을 키우고 살찌우지만 정작 사람을 아프게 하고 땅을 병들게 한다. 진짜 농부의 농사는 사람을 살리고 땅과 자연을 살리는 일이다.


농부의 세계에도 명장과 명인이 있지만 단연코 최고의 농부는 자연이다. 

자연은 오로지 흙과 낙엽과 바람과 비와 햇빛만으로 최고의 먹거리를 내놓는다.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고 되찾기 위해서 자연의 성찬을 찾아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닌다. 요즘은 기후변화로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며 자연 그대로의 먹거리는 점점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마음은 무겁고 막막하다.


농부의 일은 자연의 일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다. 자연이 제 몫을 못해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먹거리를 위해 쉼없이 내딛는 농부의 발걸음은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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