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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Apr 08. 2024

흙과 삶과 생명

흙으로 돌아가는 삶

흙은 생명이요, 삶의 근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곳의 뿌리는 흙 속에 있다.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도 흙이 필요하고 모든 동물들도 흙에 발을 딛고 서야 건강한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


며칠 전 꼬마 아이 둘이 아들의 농장을 찾아왔다. 아들은 가까운 곳에서 조그만 식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사토로 평탄하게 다져진 땅 위를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소리를 지르며 내달리는 아이들을 보니 절로 함박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모습에 엄마는 "아이들이 평소에 흙을 밟아보지 못해서 저렇게 좋아하는가 봐요"라며 놀라워했다.


어릴 적 모든 놀이는 흙 위에서 이루어졌다. 뛰고 뒹굴고 만지며 흙과 함께 보낸 시간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어린 마음들은 흙을 딛고 한 발 한 발 미래로 나아갔다. 흙은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며 상처 입은 마음들을 포근히 보듬어 주었다. 흙 위에 휘갈겨 쓴 글씨는 그리운 이름이거나 소망이거나 지워버려야 할 그 무엇이었다. 흙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길이 콘크리트나 아스콘으로 포장되었다. 시골 마을도 구석구석까지 말끔하게 정돈된 길이 연결되어 있다. 흙을 밟고 다닐 일이 없어졌다. 마당도 모두 시멘트로 덮었다. 비만 오면 질퍽질퍽해지고 농작물을 놓거나 말리기 위해  편의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집 마당은 포장 대신 잔디를 깔고 일부는 흙으로 남겨 두었다. 깔끔하고 정돈된 마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동과 노력이 필요하다. 풀을 뽑고 잔디를 깎고 바닥을 고르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수고로움 후에 마당은 쉼터이고 삶터가 된다.


귀농 초기, 농장의 흙 속엔 지렁이가 살지 않았다. 농약과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땅을 살리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들이 움틀 대는 살아있는 땅이 되었다. 굵은 지렁이가 되살아 나며 흙은 보슬보슬 해졌다. 지렁이를 집어 들며 기뻐하는 아내의 웃음이 더없이 싱그러웠다. 흙은 정직하고 순박하다. 주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꼬꼬들이 있는 공간도 흙바닥이다. 흙바닥에 닭똥과 왕겨, 부엽토와 낙엽이 자연분해되어 가장 쓰임새 있는 거름이 된다.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동물들을 콘크리트로 포장된 바닥에서 사육하는 건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흙바닥을 헤집고 벌레를 찾으며 건강한 몸을 유지한다. 흙은 모든 걸 감당하며 다시 되돌려 준다.


모든 작물은 땅을 딛고 성장해야 한다. 땅속에 깃들어 있는 수많은 양분과 보호막을 토대로 굳건히 뿌리내린다. 작은 씨 한 톨이 땅속에서 여린 싹을 틔워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순간은 경이로움이다. 흙 속에 있는 그 무엇이 단단한 열매를 깨워내 싹이 되고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어 열매를 맺게 한다. 여린 상추잎이 겹겹이 자라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건강한 흙의 냄새와 바람의 향기와 따사로운 태양의 속삭임을 품어 안는다. 나무의 가지 둘레는 흙 속의 뿌리 둘레와 같다고 한다. 가지가 넓고 멀리 뻗어 갈수록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땅의 세계에서도 가장 여린 뿌리는 옆으로 아래로 뻗어 나가며 줄기와 가지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흙 속의 세상은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게 하는 작은 우주이다.


흙으로 지은 집은 사람의 숨결로 숨 쉰다. 흙집은 잠시만 비워 두어도 금방 폐가가 된다. 거미줄이 생기고 뭇 생명들이 기웃거리며 금방 벽에 금이 가고 허물어 진다. 사람의 온기를 잃어버린 집은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사람과 흙이 함께 어우러진 집이 진짜 집이다.

요즘은 흙집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시공이 간편한 건축자재의 홍수 속에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조립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시골에 살지만 흙집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관리와 유지 보수에 따른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농부로 살면서 흙집에 살기는 더 어려운 모순된 현실이다.


흙은 어머니다. 모든 걸 품어주고 다독여 준다. 어머니 같은 흙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도시에서 흙은 애물단지다. 흙은 지저분하고 쓸모없어 치워버려야 할 존재다. 흙이 사라지면 사람의 본성은 메마르고 삶은 팍팍해진다. 흙을 밟지 않으면 사람의 몸은 막혀 버린다. 건강은 흙과 함께 할 때 유지되고 연장된다. 흙의 가치를 잃어버린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이 빨라지고 우리의 삶과 생명도 급격하게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린다.


한 세상 살다 떠나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장례 문화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당연하지 않게 돼 버렸다. 흙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흙 속에 묻혀 봉분으로 남는 허상이 아닌 한 줌 재로 흙에 버무려지는 마지막이 되고 싶다. 어느 나무의 뿌리에 살짝 스며들어 다시 햇살과 바람을 만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들의 노랫소리도 듣고 그리운 이들의 행복한 모습과 웃음소리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땅속에 굳건히 뿌린 내린 나무에 깃들어 누리고 싶다.


건강한 오늘을 위한 원초적 에너지의 원천은 흙이다. 우리들 스스로 흙을 걷어내고 덮어 버리고 외면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흙을 살리는 농부의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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