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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담 Jan 17. 2024

<농부와 기후변화> -기상이변의 최전선에서

하늘의 일이 90%, 사람의 일이 10%

무겁게 내려앉았던 하늘이 어제는 화창했다. 새해 들어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드물다. 이상고온으로 겨울 같지 않은 날들이 길어진다. 눈보다 비가 더 자주 내리는 겨울의 복판이다. 비 내리는 겨울은 아직 적응하기 힘들다. 힘겹게 눈을 치우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들이지만 요즘은 상황이 다르다. 겨울이 춥지 않아 좋다는 말에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머뭇거려진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상이변의 소식들은 공포영화, 그 자체다. 예고편 만으로도 엄청난 공포를 보여준다. 진짜 영화라면 본편에서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지구의 몸부림은 생생한 다큐멘터리다. 상영은 시작했으나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공포의 강도와 두려움의 크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 분명한 건 다큐멘터리 영화의 결말이 비극이라는 사실이다.


재난 영화도 그 표현과 내용이 시시해졌다. 우리 앞에 펼쳐진 재난의 강도와 규모가 더 두렵고 소름 돋는다.

북극의 빙하가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장면은 여전히 섬뜩하다. 남극에 세워진 기지 주변으로 눈이 녹아 물이 넘쳐흐르는 모습은 절망적이다. 남미나 유럽의 한 겨울 낮 기온이 영상 30도를 넘어섰다는 소식은 이제 놀랍지 않다. 눈이 내리지 않던 지역에 폭설이 쏟아지고 비가 내리지 않던 곳에 홍수가 난다.

더 이상 나를 열받게 하지 말라는 지구의 경고가 섬뜩하다.


기상이변의 정점으로 가고 있는 지금, 슈퍼컴퓨터도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의 심술을 따라가지 못한다. 기상예보가 아니라 기상통보가 됐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하루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다. 습관처럼 수시로 일기예보를 들여다본다.

시간대별 예보는 물론, 보름뒤의 날씨와 기온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날씨 따라 농부의 마음도 오르락 내리락이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바람과 비와 햇빛의 양에 조바심 낸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따라 일의 종류와 방법이 달라진다. 충분히 계산하고 준비해서 대비해야 한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다. 비에 젖지 않게 땔감을 충분히 들여놓아야 한다. 어제 가져온 밀기울은 퍼 내릴지 말지 조금 더 고민한다. 밖에서 맨 몸으로 겨울을 버티는 운반기는 비닐이라도 덮어줘야겠다.

겨울이 포근하고 다습하면 땅속과 나무껍질 속 해충이 죽지 않고 번식한다. 봄이 되면 기승을 부려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이래 저래 농부는 따뜻한 겨울이 야속하고 시름은 깊어만 간다.


예전의 농부들은 구름의 모양이나 바람의 세기와 흐름을 읽고 날씨를 예측했다. 삼한사온의 뚜렷한 겨울이 신기하고 좋았던 시절이다. 절기 따라 척척 들어맞는 날씨는 농부를 여유롭게 했다. 겨우내 사랑방에 둘러앉아 한껏 늘어져도 불안하지 않았다. 시간을 마중 나가지 않아도 때는 어김없이 제모습으로 찾아왔다.


농사는 하늘의 일이 90%이고, 사람의 일이 10% 임을 실감한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은 농부의 숭고한 기도다. 심어놓은 나무의 성장과 열매를 맺기 위해 거름을 주고 가지치기하는 일은 농부의 간절한 염원이다. 기도와 염원이 담긴 노동이 끝나면 나머지는 거의 자연의 몫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때를 기다리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주어진다. 감사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하고 가혹하고 냉정한 시련의 시간이 닥치기도 한다. 절대적인 자연의 힘 앞에 농부는 순한 양이 된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농사는 농사가 아니다.

예측불허인 자연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아무리 첨단 기술이 접목된 농업이라 해도 땅심과 농심이 어우러지지 않은 결과물은 온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농업이 아니고 공업이고 농산물이 아니라 공산품이다.

땅은 온갖 미생물과 퇴비와 흙이 버무려져 생명의 씨앗을 길러낸다. 농부의 땀방울을 듬뿍 먹고 자라난 먹거리가 진짜다. 자연 그대로의 맛과 영양은 비와 바람과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안은 땅과 작물이 준 선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곁에서 진짜 먹거리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몸부림치는 것은 온전히 인류 모두의 책임이다. 그 책임의 끝이 어디 인지도 모두가 알고 있다. 무너지는 우리 삶과 미래를 담보할 해법을 함께 풀어가야 한다.

자연 순환 유기 농업을 지향하며 자연 양계로 닭을 키우고 있다. 닭 모이는 곡물과 잡곡, 황토등 자연의 부산물을 적절히 활용하여 직접 만들어 먹인다. 냉, 난방을 하지 않아도 닭들은 건강하다. 오, 폐수가 나오지 않는다. 닭의 똥은 자연 분해되어 냄새가 없고 충분히 발효되어 바로 거름으로 쓴다.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환경오염 발생원을 제거하며 재활용 가능 자원을 적극 이용한다. 흔들리지 않고 지켜온 원칙을 고수하며 생태계를 보전하고 유지하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려고 한다.


기상이변으로 농업이 흔들리면 우리의 생존은 더 빨리 위협받는다. 농부의 일이 땅에서 멀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농부의 하늘은 더 이상 낭만과 감상의 배경이 아니다. 일희일비하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비가 올지 눈이 올지 주시한다. 영하로 내려 가는지 영상의 기온이 유지될지 수시로 파악한다. 구름이 많은지 화창한 날이 얼마나 지속될지 습관처럼 살핀다. 주시하고 파악하며 살핌이 농사의 기술이다.


농부는 농사만 짓는 사람이 아니다. 환경운동의 실천가이자 환경오염의 원인 제공자일 수도 있다.       

농부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한계는 제한적이다. 극복할 책임은 농부에게 있다.

농사는 농부만의 몫이 아니다. 먹거리는 인류생존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제대로 된 먹거리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모든 과정이 농사다. 농사와 먹거리에 연계된 모든 사람은 농부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의 최전선에 농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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