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번 설에도 선물처럼 문자가 왔다. '항상 안전 운전하시고...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빠지지 않고 오는 문자다. 받을 때마다 죄송하면서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2018년 12월 12일 저녁 7시 30분경. 나는 고속도로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전남 구례에서 화물차에 닭모이를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하면서 늘 불안하고 걱정되는 건 졸음운전인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밀려드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힘겹게 운전 중이었다. 도로 표지판은 덕유산 휴게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조금만 가면 휴게소에서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계속 달렸다.
잠시 후... 쾅하는 소리와 함께 눈이 번쩍 뜨였다. 강한 충격과 함께 차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잠깐 사이를 견디지 못한 졸음운전으로 앞에 가고 있던 15톤 화물 트럭을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고 혼란스러웠다. 앞 유리는 완전 파손되고 핸들은 가슴에 닿아 있었다. 다리는 밀려 들어온 차량 앞면과 좌석사이에 끼여 꼼짝할 수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발가락은 움직였다. 추돌사고로 멈춘 곳은 왕복 4차선 고속도로의 내리막 직선차로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차 사고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 다리가 끼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불안과 공포는 가중 됐다. 식은땀이 흐르며 오싹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두 사람이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긴급히 신고를 하고 뒤로 가서 차량 안내를 했다. 다른 한 사람은 내려진 창문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겠어요?"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나오세요."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마음이 놓인 나는 천천히 발을 움직여 빼내고 깨진 창문을 통해 그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곧바로 순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했다. 천우신조였다.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부상은 경미했다. 갓길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모두들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맞냐고 물었다. 차의 파손 상태로 봐서는 운전자의 상태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데 멀쩡히 서있으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이 나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폈고 경찰들이 사고 현장을 수습했다. 차는 그 자리에서 폐차장으로 견인 됐다. 위급한 상황에서 달려와 나를 구해준 두 사람은 크게 안 다쳐 천만다행이라며 잘 마무리하시고 조심해서 가시라며 황급히 떠나려 했다. 나는 그분들을 붙들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어렵게 연락처를 받았다.
큰 사고였지만 천운이었다. 사고 얼마 후 도와주신 분께 전화를 드렸다. 정말 감사드리며 조그만 성의라도 표현하고 싶다고 했으나 완강히 거절했다. 자신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고,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들처럼 행동했을 거라며 많이 안 다치고 무사하셔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결국 나는 아무 사례도 하지 못했다. 마음의 빚을 갚지 못한 무거움이 늘 따라다녔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희미해져 갔다. 어떤 상황이 되어 가끔씩 떠오를 땐 읊조리듯 감사의 마음을 전할 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덤으로 주어진 건강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깜짝 놀랐다. 아침 출근길에 그때 나와 비슷한 상황의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도움을 줬는 데, 불현듯 나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 전화를 드렸다며, 사고 당시 나의 몸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떠나온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그분의 의도를 왜곡할 수 도 있지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거듭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으나 역시 대답은 똑같았다. 그러면서 "정말 제게 감사하다면 사모님과 자제분께 더 많은 사랑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부탁했다. 다시 한번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고 울컥했다.
그 이후로 계속 먼저 안부를 물어오고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문자를 주신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비록 내가 그분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사회에 작은 밀알이 되리라 다짐한다.
누군가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선뜻 손 내밀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타인의 아픔과 위험에 아무 조건이나 대가 없이 희생하는 분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
팍팍하고 어두운 사회에 등불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의인'이라 부른다.
혹시 이 글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헌신해 준,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나의 의인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이렇게나마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 부족한 글로 남긴다.
"나는 의인을 만났다"
나는 그분을 핸드폰 연락처에 '의인'이라고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