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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30. 2022

천 년의 기운이 지켜준 밤

경주 감은사지와 황룡사터

나는 그 세대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책에 나오는 곳들을 찾아다니던.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책에 빠져든 많은 청춘들처럼 나도 그 책을 읽고 가슴이 뛰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번째 책인 ‘남도답사 일번지’에 나오는 많은 곳들이 의 여행목록 윗자리를 차지했는데, 그중에서도 첫 번째는 책 표지에 우뚝 서 있는 감은사탑이었다.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라는 제목의 글을 몇 번이나 보고 사진을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나의 여행 메이트인 친구와 함께 이번엔 책에 나오는 곳들을 찾아 경주의 감포로 향했다. 경주는 어릴 적 수학여행을 비롯해 여러 번 가봤지만 감포 쪽은 처음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책에 나오는 감은사탑과 대왕암, 이견대였다. 



신라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있는 감포 바다를 먼저 찾았다. 푸른 바다 가운데에 있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처럼 보였지만, 우린 책에 적힌 설명을 떠올리며 보고 또 봤다. 그리고는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곳에 세워진 이견대에 올랐다. 이견대에서는 대왕암과 바다가 정자의 기둥이 만든 액자 속에 그림처럼 들어 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흔든 것은 대왕암과 이견대가 아닌 길에서 만난 작은 비석이었다. 이견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자연석으로 만든 비석이 서 있었는데, 비석에는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미술사학자인 고유섭의 수필 제목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온다. 평범한 비석이지만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문구는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 그날 이후로 감포 바다는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되었고, 나는 아름다운 바다를 만날 때마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말을 되뇌곤 했다. 



바다도 좋았지만 감은사탑만 했을까. 우리의 목적지인 감은사탑에 도착해 탑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황량한 들판에 우뚝 선 거대한 두 개의 탑. 사진으로 볼 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웅장한 규모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고, 유홍준 교수가 왜 그 말만 반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웅장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면서도 초라하지 않고, 적막하면서도 차갑지 않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탑이었다. 


그 이후로도 감은사지에 두 번 더 갔는데, 감은사탑이 주는 감동은 똑같았다. 아무리 좋은 곳도 다시 가면 그 감동이 덜하기 마련이지만, 신기하게도 감은사탑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 황량한 들판에서 홀로 단단하게 버티며 남다른 기운을 응축한 것일까. 그 기개와 위용은 그대로였고, 갈 때마다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라는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감은사탑은 반드시 그곳에 가서 봐야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때 친구와 나는 탑을 하나씩 차지하고 한참 동안 앉아 그 기운을 느끼며 탑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 몇 번을 다시 간다 해도 그 거대한 탑 앞에 서는 순간은 처음 갔을 때처럼 설렐 것이다.  




여행을 다니며 뜻하지 않게 노숙도 여러 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참 겁이 없었고, 청춘이라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절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안전했거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취업을 위해 상경했고, 친구는 부산에 계속 살고 있었다. 우리는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여전했고 여행에 대한 갈망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서울과 부산의 중간쯤에서 만나 여행을 하기로 했다. 경부선 정차역인 구미나 김천 같은 곳에서 만나 인근 명소를 둘러보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나는 경주에 취재차 갈 일이 생겼고, 우리는 이때다 싶어 경주에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경주에서 만난 우리는 경주의 유적들을 둘러보다 황룡사터를 찾았다. 경주를 여러 번 갔지만 황룡사터는 처음이었다. 절터에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끝도 없이 넓은 들판에 크고 작은 돌이 박힌 광활한 터는 과거의 번성했던 모습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절터의 매력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우리의 계획은 절에서 다시 한번 자는 것이었다. 절에서의 하룻밤 로망을 송광사에서 실현한 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저녁을 먹고 숙소를 잡으려다가 비구니 사찰이라는 인근의 한 절로 향했다. 밤 9시가 넘어 숙소를 잡기가 애매한 데다, 비구니 스님이면 우리를 보고 재워주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어두컴컴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절에 도착했다. 그런데 절 마당에 있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짓기 시작했다.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는 개 짖는 소리. 우리는 예상치 못한 개의 출현에 절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때 불이 켜진 절집의 여닫이문이 획하고 열렸다. 그러더니 문 사이로 한 스님이 얼굴을 내밀고는 “누꼬?”하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인자한 모습의 비구니 스님을 생각했던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앙칼진 목소리의 스님이었다. 밖을 내다보던 스님은 개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던 우리를 발견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밤이 늦어 숙소를 구하지 못해 절에서 잘 수 있을까 하고 왔다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안돼요. 내려가이쏘!”하고 매몰차게 말하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시도하긴 했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나 냉랭한 모습에 우리는 기가 죽었다.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늦은 시간에 어렵게 찾아왔는데 거절을 하더라도 좀 좋게 말할 수는 없었는지, 그동안 만났던 인자한 스님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냉대라 실망도 더 컸다. 


어차피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어서 우리는 절에서 내려오며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민박집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황룡사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노숙. 아무런 건물도 없이 탁 트인 넓은 터라면 여자 둘이서 밤을 보내도 안전할 것 같았다. 사실 밤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인데, 그런 절터에는 사람도 없겠지 싶었다. 하긴 한밤중에 아무것도 없는 터에 누가 오겠는가. 그때가 5월 즈음이었으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 밤을 보내기에 날씨도 적당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소주와 안주거리를 사 들고 절터 한가운데로 갔다. 캄캄한 밤이었지만 들판 가운데로 가니 달빛과 별빛에 오히려 환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반반한 바위를 찾아 짐을 풀고 앉았다. 그날 밤 바위에 기대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른다. 한참을 얘기하다 졸리면 스르르 잠이 들고 그렇게 밤을 보냈다. 새벽녘 이슬비가 내려 살짝 한기가 돌 땐, 몸을 밀착해 옷을 덮고 서로의 체온으로 버텼다.


청춘의 밤에는 따뜻한 방도 푹신한 침대도 필요없었다. 따뜻한 영혼을 가진, 마음이 맞는 친구 하나면 족했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모두 방이고 침대고 베개였다. 절터에 남아 있는 수천 년 전의 성스러운 기운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았고, 머리에 기댄 오래된 돌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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