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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30. 2022

온종일 걷고 싶은 그리운 길

하동 섬진강

스물 몇 살 그 언저리엔 섬진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그 시절 지리산과 섬진강은 청춘의 숙제 같은 것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치는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지리산과 섬진강은 청춘의 심장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섬진강 둑길을 처음 걸은 것은 스물한 살, 대학교 3학년 때다. 여행 메이트인 친구와의 두 번째 여행이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여행을 작당하던 우린 겨울방학에 섬진강으로 떠나기로 했다.  특별한 무엇을 보고자 하는 것도 없이 그저 목적지는 섬진강이었고, 섬진강을 따라 그냥 걷는 게 목표였다. 


추운 겨울,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하동송림.  수백 년 된 노송들이 강변에서 몸을 뒤틀고 있었다. 송림을 지나자 강을 따라 둑길이 길게 이어졌다. 겹겹이 이어진 지리산 능선 아래 굽이굽이 흐르는 강, 그 강물을 바라보며 걷기 좋은 높은 둑. 그 길을 온종일 걸었다. 



둘이서 같이 걸어도 나란히 걷는 일은 잘 없었다. 그녀가 앞서고 나는 뒤서고. 항상 그랬다. 왜 그랬을까. 나는 누군가의 뒤에서 걷는 것이 더 좋다. 산을 탈 때도 그렇다. 앞사람의 발을 보며 걷는 것이 편하다. 누군가 뒤를 바짝 따라오면 잘 걷던 걸음도 괜히 흔들린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 누군가 따라오면 불안하다. 남들 앞에 나서기보다는 남들 뒤에 서는 걸 더 좋아하는 성격 때문일까.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고 챙길 수 있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내가 볼 수도 없고 챙길 수도 없다. 내가 볼 수 없는 뒷모습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 허점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도. 뒷모습까지도 신경 쓰고 살아야 하니 삶이 더 피곤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날 우린 하동에서 구례까지 10km 넘게 둑길을 걸었다. 잔디가 덮인 둑길에 앉아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에 넋을 놓기도 했다. 인생의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알지 못해 방황하던 그때, 나는 그 길에서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길을 걷다 보면,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을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만 같았다. 그저 하루 종일 걷기만 해도 좋았던 섬진강은 그날부터 가슴 한편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따스하게 흐르던 그 물줄기를 따라 다시 걸은 것은 10년 뒤였다. 언젠가 다시 걸어보고 싶었는데 그 바람이 뜻하지 않게 이뤄졌다. 길을 걷는 도보여행이 뜨기 시작했고, 걷고 싶은 길로 섬진강 둑길을 취재하게 된 것이다. 


10년 만에 찾은 섬진강은 그대로였지만 주변이 많이 변해 있었다. 펜션과 카페가 들어서고 둑길엔 데크가 놓인 곳들도 있었다. 그리고 변한 것은 강변만이 아니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도 변해 있었다. 예전엔 나와 친구 외엔 그 둑길을 걷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주민들과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걷기가 일상의 운동이 되고 걷기여행이 하나의 문화가 되면서 생긴 변화일 것이다.  



그런데 걷다 보니 그 사람들 속에 있는 나도 변해 있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충만했던 그 시절의 순수한 나는 없었다. 여행에서조차 끊임없이 이것저것 살피고 재고 따지느라 한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까칠한 나의 모습만 보였다. 길 위에서 여러 갈래 길을 헤아려 보며 꿈을 키우던 나는 사라지고, 정해진 길에 눌러앉아 다른 길을 곁눈질조차 하지 못하는 낡아 버린 나를 발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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