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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30. 2022

서랍 속에 넣어둔 여행을 꺼내며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고 하지만, 나는 사람보다 자연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 크다. 넓고 푸른 그늘에 오롯이 안기고 싶은 산과 숲, 끝없이 펼쳐진 파란 물결에 마음을 얹고 싶은 강과 바다. 그런 자연이 눈과 귀를 사로잡고 가슴을 벅차게 한다. 


자연 속에 서면 힘이 생긴다. 싱싱하고 싱그러운 힘, 생기가 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만 해도 나는 달라진다. 머릿속에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고, 마음속에 뭉쳐 있던 앙금이 스르르 녹는다. 그게 여행의 힘이 아닐까.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힐링’이나 ‘치유’쯤 되겠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수시로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야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고단한 일상을 버틸 수 있다. 멀리 가지 못할 땐 하다못해 한강에라도 나가 바람을 맞아야 하고, 그마저도 어렵다면 나무가 보이는 카페에라도 앉아 두 눈에 초록을 담아야 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여행이 생활이 된 시대에 내 여행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여행이 유행이 되기 전부터 나는 여행을 내 삶의 중요한 자리에 앉혀놓고 틈날 때마다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서 때론 현실을 잊기도 했고, 때론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어쩌면 그 꿈을 조금은 이뤘는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되어 때때로 밥벌이로 여행을 하기도 하니까. 


혼자서 처음 여행을 떠난 스무 살 무렵, 그때 내가 애지중지하던 지도책이 있었다. 인터넷이 안 될 때니 구글맵이나 네이버 지도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여행지에서 길을 찾으려면 지도책을 봐야 했다. 같이 방을 쓰던 언니가 보험사에서 부록으로 받은 지도책이었는데, 얼마나 많이 찾아보고 들고 다녔는지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짐을 싸던 날 밤, 그 책을 두고 언니와 피 터지게(?) 싸웠던 기억도 난다. 언니는 언니가 받은 책이라 줄 수 없다고 했고, 나는 어떻게든 갖고 가려고 떼를 쓰다가 마지막엔 책을 언니에게 집어던지고 펑펑 울었다. 이후 그 책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그 책에서 가고 싶다고 표시했던 곳들을 이제는 거의 가 보지 않았을까 싶다. 20여 년의 기자생활 동안 일로 다닌 여행과,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다닌 여행으로 우리 땅 곳곳을 참 많이도 밟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내가 다닌 여행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외여행이나 세계일주를 기록한 여행기도 차고 넘치는 세상에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는 평범한 여행기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 여행을 기록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30년 가까이 내가 다닌 여행들이 아까워서다. 내 나름의 주제와 목적으로 남들이 잘 모르는 곳들을 찾아 다니기도 했고, 나만의 느낌과 감상으로 여행지를 특별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또 자연이 건네는 말을 듣기 위해 애를 썼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위로와 안식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누군가도 보고 느끼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바란다. 


사실, 내가 간 많은 곳들은 여행기사로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기사는 여행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과 정보를 버무린 뒤 기자의 감상을 참기름처럼 살짝 두르는 식이라 ‘나를 표현한 글’로 보긴 어렵다. 그 감상이라는 것도 기사라는 형식에 적합한 정도의 감상일 뿐, 내 진심을 담았다고 하기엔 한계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 기사들이 거짓을 담은 건 아니다. 


이제 ‘진짜 나’를 담은 여행기를 써 보고 싶다. 나만의 특별한 경험과 느낌을 담고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는 것을, 그곳들이 외국 못지않게 근사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위치나 맛집 같은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줄줄이 나오지만, 느낌은 그곳에 가 봐야만 알 수 있으니까. 나에게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곳들이 누군가에게도 가 보고 싶은 곳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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