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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경 Oct 30. 2022

땅끝에서 벼랑 끝에 서다

해남 땅끝

어딘가의 ‘끝’이라고 하면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 끝엔 뭐가 있을까. 그 끝에 서면 무언가 끝이 날까. 그 끝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될 수 있을까. 땅끝도 그런 곳이다. 땅의 끝이라니, 지구의 끝은 아니지만 이 나라 이 땅의 끝이 있다니, 그 끝에 서 보고 싶었다. 

  

아니, 사실 땅끝을 처음 찾은 이십대 초반엔 인생의 끝까지 가 보고 싶었다. 땅끝에 가면 안개가 낀 것처럼 막막하고 풀리지 않던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끝없는 절망과 방황, 청춘의 열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떠난 몇 번의 여행을 통해 혼행의 근육을 키운 어느 겨울, 2박 3일 일정으로 남도로 떠났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당일에서 1박으로, 1박에서 2박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몸피를 조금씩 키우고 있었다. 일정은 광주의 5.18 묘지를 거쳐 해남의 땅끝마을에 갔다가 영암의 월출산을 오로는 코스로 짰다. 어려서 겁이 없었던 걸까, 젊어서 무모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한 일정이었다.  

            

부산에서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내리니 저녁이었다. 그날의 숙소는 전남대 도서관. 당시엔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이 없어 객지에서 하룻밤 자려면 여관이나 모텔에 가야 했는데, 혼자서 그런 곳에 가기가 부담스러워 1박을 할 때면 밤새 문을 여는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 혼자 여행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여자 혼자 모텔 같은 곳에 드나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 시절엔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때 출입증을 확인하지 않는 곳들이 많아 다른 학교 학생들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또 책을 보다가 엎드려 자면 되니 도서관은 하룻밤을 안전하게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여행 경비도 아낄 수 있었다. 


게다가 전남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산실 아닌가. 당시 손 좀 흔들어본(나는 아주 조금 흔들어봤다) 대학생들에게 광주는 성지 같은 곳이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자취를 보고 싶었고, 대학 시절 내내 나를 옭아매던 죄의식 같은 무언가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전남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일어난 것은 새벽녘. 도서관을 나서 안개 낀 새벽길을 걸어 내려가 버스를 타고 5.18 묘지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묘지엔 아무도 없었고, 사진으로만 보던 그 액자 속의 얼굴들이 묘지 곳곳에 있었다. 이슬이 낀 액자 앞에 한참 서서 묵념을 하고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봤다. 무언지 모를 뭉클하고도 먹먹하고 벅찬 것이 가슴팍에 가득 들어차는 듯했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 드디어 땅끝마을에 도착했다. 땅끝마을은 평범한 어촌이었다. 마을에서도 땅의 끝이라는 곳으로 갔다. 탁 트인 바다 앞에 삼각뿔 모양의 기다란 탑이 서 있었다. 토말탑(土末塔). 지금은 땅끝전망대와 모노레일 등 땅끝을 테마로 한 여러 곳들이 있지만, 당시엔 토말탑이 전부였다. 하지만 탑에 새겨진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어두운 그림자가 일렁였다. 탑에는 손광은 시인의 '땅끝에 서서'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발치로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십수 년 지켜온 땅끝에서     

수만 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 일 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탑 아래쪽에 있는 바위를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가니 정말 땅의 끝이 나왔다. 어느 바위가 바다 쪽으로 가장 멀리까지 뻗어 있을까. 그곳이 진짜 끝이겠지.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 바위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다른 바위와 똑같이 생긴 그 평범한 바위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끝의 의미를 생각했다. 원없이 끝을 보고 나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마음속 어두운 그림자에 생긴 보풀을 털어냈다.  

         

그러다 해안가의 바위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해안 절벽에 바짝 붙어 걷고 있었고, 물이 점점 차올랐다. 더 이상 절벽을 따라 걸을 수 없어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왔던 길에까지 물이 차올라 길은 사라지고 바다 위로 절벽만 길게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절벽의 바위 틈에는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토말탑에서 한참을 왔으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고 물에 빠져도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수영도 할 줄 몰랐고 핸드폰도 없던 시대였다. 이렇게 정말 끝나는 걸까. 땅끝에서 정말 인생의 끝을 보는 건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해 한겨울인데도 진땀이 났다. 극한의 상황에선 자신도 모르는 괴력이 나온다고 했던가. 바위 끄트머리에 한 발짝씩 발을 디디며 절벽에 간신히 붙어 죽을 힘을 다해 돌아 나왔다. 온몸이 땀에 젖었고 바위에서 내려와 땅을 밟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끝'에 대한 매혹은 환상이었던 걸까. 땅끝에서 진짜 벼랑 끝에 서 본 뒤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안개 속에 갇혀 끝을 알 수 없었던 청춘의 열병도 그제서야 좀 가라앉는 듯했고,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자도 조금 옅어진 듯했다. 

             

절벽에서 돌아 나와 해변을 걷는데, 방금까지 내가 갇혀 있었던 절벽과 바다가 멀리 보였다. 절벽의 허리 부분에까지 물이 차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저 곳을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시작과 끝은 이어진다. 땅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시작되고 바다가 끝난 곳에서 땅이 시작된다. 새로운 땅이 시작되는 곳, 그곳은 섬이다. 땅끝에서 새로운 땅을 찾아 섬으로 떠났다. 땅끝마을의 갈두항(지금은 땅끝항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30분이면 도착하는 노화도로. 계획에 없던 여정이었다. 그저 저 섬에 가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아 배를 탔다.   


        

노화도는 그리 유명한 섬이 아니다. 배를 타고 더 가면 나오는 보길도와 달리 별다른 볼거리도 없다. 그래서 더 좋았는지 모른다. 조용하고 아늑해서, 특별한 볼거리를 찾아다니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노화도에 도착해 오래된 골목을 기웃거리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앉아 편지를 썼다.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이 가라앉은 마음을 조금씩 일으켰고, 환해지는 그 마음을 그리운 누군가에게 써내려가면서 나는 새로워졌다. 겨울 속에서 봄을 만나고 섬에서 돌아왔지만, 그 편지는 끝내 부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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