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2월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한파가 닥쳤다.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둘다 영하인 공평한 한파. 바람이 매섭게 불어서 이곳이 한국일까, 시베리아일까 착각도 들었고.
물론 시베리아를 안 가봐서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정도 추위면 좀 혹독한 건 맞는 것 같다. 대만에서도 갑작스러운 한파(?)에 당황했다고 들었다. 겨울에도 따뜻한 나라라 그런가, 대처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온열 기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옷도.
우리의 입장에서 대만의 날씨는 봄과 같을 거다. 아니면 가을이거나. 확실한 건 우리의 겨울과는 다를 거다. 그렇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절대적인 게 아닌 상대적인 거라는 진리가 포함된다.
내가 쌀 10kg을 들어서 옮기는 것이 나에겐 최고의 무게일 수도 있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건 이런 작은 디테일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준점을 다르게 적용시킬 수만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 같다. 사실 아름답다의 기준도 상대적인 게 될 거고. 그냥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 또한 상대적인 거라면 조용히 해야 하는 거니까.
쉿, 조용히 해달라는 말은 어렵지 않다. 닥치라는 말은 강압적인 것 같고. 조용히 해주세요, 이 말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 난 대학원에 들어갈 예정이기에 미쳐있는 상태다. 미쳐서 영화도 찍었고.
영화를 찍고 나니까 뭔가 현실로 돌아와지질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고.
알바를 그만뒀다. 알바를 하다가 깨닫게 된 건 어느 순간 내가 진짜 봉사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돈도 안 되는 걸 내가 왜 하고 있었지 싶었고.
어젠 잠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만두는 것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었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롯데월드몰의 H&M을 갔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바지가 사고 싶어졌다. 와이드한 핏, 벌룬핏도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정확히는 마음에 드는 가격이 없었다. 유니클로에 갔다. 새로 오픈한 탓인지 굉장히 크고 넓었다. 역시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잇세컨즈를 갔다. 여기도.
스파 브랜드에서 마음에 드는 가격을 찾지 못하면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무신사에 들어갔다. 설날 맞이 세일 중이었다. 그런데 바지는 핏이 중요한데.
설 주간에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돈까스 집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고.
한 친구가 무신사 카드로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했다. 현대카드와 무신사. 무신사 카드는 무신사에서 살 때 10퍼센트 할인? 적립이 더 들어간다고 했다.
그 얘기를 시작으로 무신사 누적 금액을 묻게 됐다.
두 친구는 600만원.
이 둘이 무신사에 쓴 게 1200이었다. 각자 5-6년 정도 사용한 듯했고.
1년에 100만원 치 옷을 산다는 통계가 나왔다. 놀라웠다. 옷을 정가 주고 그렇게 살 수 있나? 궁금했지만 묻진 못했다. 나는 집에 가서 몰래 확인해 봤다.
80만원.
빈 박스 구매 알바와 구매평 후기 알바를 빼면 얼마일지 가늠이 안 됐다. 그런 것 빼면 50만원 아래일 것 같았다. 가입한 지는 3년 정도 되었고. 사실 난 무신사에서 화장품을 시키곤 한다. 마스크팩 같은 거 무신사에서 세일할 때면 싸다.
난 내 방에 옷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니 사계절 옷이 한 행거에 다 뭉쳐 있으니 많아 보일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
어느 순간, 같은 옷만 입는 것을 느꼈다. 근데 이건 모두가 그렇지 않나 생각했다. 매일 다른 옷을 어떻게 입어. 주우재도 그렇게는 못 할 텐데.
인스타 돋보기를 누르면 자꾸만 바지가 뜬다. 무신사, 블프, 설맞이, 바지 맛집, 유니클로 등. 다들 와이드한 핏의 바지였다. 바지의 가격은 천차만별. 20부터 3만원까지. 바지, 그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