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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난 내가 되고 싶어

정말로 (3)

by 수호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건 시간이 지나도 어려운 문제일지 모른다.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안 아픈 손가락도 있었고 육손이여도 수술하면 문제가 없고 어른이 일러준 세상은 내가 바라본 세상과 좀 달랐다.

어항에서 키우던 금붕어를 호수에 풀자 덩치가 커진다고 한다. 한정되지 않은 먹이가 한몫했을 거고 수조의 넓이도 상관이 있었을 거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라고 어떤 시인이 그랬는데 시집 제목을 바꿔야할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용은 정해져 있었고 개구리는 이무기도 되지 못 했다.

화차에는 뱀에 대한 구절이 재밌다. 이번에는 나오겠지, 하면서 뱀이 탈피를 하는데 그건 바로 다리다. 뱀은 다리를 원했던 거다. 그리고 이 유명한 문장은 사실 뒷문장이 더 있었는데, 사람들은 뱀에게 다리가 보이는 거울을 판다는 거였다.

어떤 사람보다 나는 댕댕이가 되고 싶었다. 단순한 게 좋았다. 악의든 배신이든 관심 없는 순수한 댕댕이. 이용당해도 그 사실을 모르고. 한 평생 충성만을 하는 댕댕이처럼 산다면 생각보다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다리가 보이는 거울을 보고 사는 게 생각보다 나쁜 인생 같지 않아 보였다. 어떤 날벌레는 가로등 불빛을 달인줄 알고 하룻밤을 태운다고 했다. 달에 닿는 게 그 벌레의 평생 목표였으니까. 가로등 불빛에 타죽는다고 불쌍하게 여길 게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평생의 목표를 이룬, 행복일지 모르는 건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사실 착하다=호구로 지칭되는 게 요즘 아닌가. 사실 좀 호구 같았다. 거절도 잘 못 했던 시절이 있었고 싫은 소리를 못 하기도 했었다. 화를 내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고 지금도 화를 내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피한다. 언성을 높이는 건 너무 야만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랬다. 경상도 사람이었던 탓인지 툭, 하면 악, 소리 질렀다. 어째서인지 우리 집은 자꾸만 싸우고 화내는 것처럼만 보였다. 집이 싫었고 아빠를 닮은 형이 싫었다. 군 전역 후 집에 있기 싫어 한 달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빨리 복학하길 바랐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다. 낮엔 병원 사람이 지랄하고 밤엔 집에서 싸우는 소릴 듣고. 주말엔 쉴까 하면 집에서 택배 작업해야 했고.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읽었던 만화가 <강철의 연금술사>다. 세상이 만화 같진 않지만 만화를 읽는 동안 세상은 만화 같았다. 늦게 온 사춘기가 가장 무서운 법일까. 요즘엔 <슬램덩크>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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