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0
그래서 쓸 게 없다. 인생이 막 안녕하지 않고 불행하다고 여겼던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그냥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뭐라도 좀 생산적이고 갓생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요샌 우영우 때문에 자꾸 말투가,, 나도 모르게 박은빈님 목소리가 떠오른다. 따라하기가 쉽지 않지,, 그렇습니까,, 아 미치겠다.
평창 에세이 본선에 올랐고 에세이라니 작업도 열심히 하고 소개팅도 하고 왔는데 사실 이렇게 나열해서 그렇지 난 한 게 없다. 근데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 08;30에 일어나지만 무언가를 하진 않는다. 한 시간은 누워서 폰을 만지는 듯한데, 이럴 거면 그냥 더 자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저번 달부터 끊었는데 초반 일주일을 제외하곤 영상을 보질 않았다. 우영우는 보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인 걸.
조금 깊이 있는 길을 써볼까 한다. 사실 우영우의 연장선이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이라고 아는가. 아마 모를 거다. 작은 섬이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의 일부분을 아래에 인용하겠다. 35-37 페이지 사이에 있는 내용이다.
"예! 그들은 아주 훌륭한 어부였어요. 정말로 아주 훌륭했어요." 그 노인이 대답했다.
"그들 두 사람은 청각장애인이 아니었던가요?"라고 나는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예, 가만 생각 좀 해봅시다. 그들이 그런 것 같네요"라고 그 노인은 대답했다.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군요."
위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은 장애를 신경 쓰지 않는다. 노인은 "오, 그들은 장애인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단지 듣지 못할 뿐이었지요"라고 강조하면서 말했다. 즉, 장애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는다. 교수님의 말씀을 빌리면 노래를 못 부르는 정도로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거다. 자식이 노래를 잘 불러도 되지만, 못 불러도 살아가는 데 문제 없듯이 장애는 딱 그 정도였던 거다.
우리나라와 비교가 됐다. 학교에는 소위 도움반 등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장애 학우를 모아둔 학급이 있다. 혹은 장애아들을 모아둔 학교가 따로 있다. 일반 학생과 한 학급에 배치하지 못 한다는 것 자체에서 우린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장 괴롭힘 당하기 최적화된 존재라는 걸,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눈에 띄면 안 되는 청소년 사이에서 소위 장애로 지칭되는 아동은 표적이 되기 쉽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장애를 가진 친구가 학급에 있었다. 자폐 쪽인 거 같은데 사실은 어떤 장애인지 정확힌 모른다. 그 아이를 보조하는 선생님이 항상 동행했었고 화장실에도 혼자 가질 못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위의 마서즈 비니어드 섬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우영우는 드라마 속 인물임과 만약 마서즈 비니어드 같은 사회라면 그곳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상대적으로 평등해 보인다. 그 속에 어떤 사정이 있고 어떤 역사가 있고 배경이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장애에 대해선 평등하니까. 나아가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다. 문상훈님(펭수 편)의 자폐 장애 연기가 사실은 우리가 아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모습이고 사실은 그보다 심한 사람도 봤을 수 있다.
우영우 드라마에서도 나왔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장애는 살 가치가 없었던 사람이다. 나치 독일 시절에 자폐를 가진 사람은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서울대 의대생과 자폐아의 생명의 경중을 비교한다.
우리는 언어로 명명함에 따라서 차별이 재생산되는 모습을 봤다. 성소수자에 대한 표현도 그 중 하나였다. 분명 과거에도 동성애자는 존재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용어(게이, 레즈비언 등)는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용어가 없던 시절에 성소수자는 어땠을까. 지칭하지 못 한다고 없는 것이 아닌데.
처음 게이에 대한 용어는 혐오 발언으로 기억한다.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중간에 있었고 지금의 게이라는 단어의 확립까지, 사실 작년에 읽은 책이라 잘 기억나질 않는다. 궁금하다면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으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시골 vs 도시. 이렇게 이분화 시켰을 때
동물 vs 인간
우위가 정해지는 순간을 목격했을 수 있다. 사실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별 관심 없을 거다. 재미도 없고. 인간은 동물에 속하지만 굳이 동물과 인간이라고 이분화하는 순간 인간을 우위에 두려는 이면이 있다. 뭐, 어쨌든 이런 노력에 인간 vs 동물이라는 이분화에서 우위를 차지한 인간은 동물보다 나은 존재라는 이데올로기가,,, 쓰면서도 뭔가 더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애매하다. 확실히 사람 뇌가 빨리 굳는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갈수록 멍청해진다.
장애라는 인식이나 개념 자체가 없다면 사실 덜 차별적일지도 모른다. 전국장애인연합회의 시위 때문에 국민들의 시선이 안 좋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약자끼리의 싸움이다. 소시민끼리 투쟁하는 거고.
상위 10%가 인터넷 기사에 댓글 달면서 싸우겠는가. 지하철 이용도 안 할 텐데. 결국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는 거다. 전장연 시위에 대해서 옹호하진 않는다. 술을 마시는 건 시위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가 조금 더 차분했다면 침착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전장연 회장의 경우는 소시민이 아닌 거 같긴 하지만, 보통적으로 생각하자. 대부분의 장애인과 대부분의 사람은 소시민이고 굳이 약자와 강자를 나누면 약자에 위치한 사람 아니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선 계급이 분명하니까.
아무도 안 싸우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가 매체에 꾸준히 나와, 인식 개선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물론 매체가 악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에서만 말이다.
+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일부 발췌문
현재의 서양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생활방식에 적응하도록 길들여왔다. 그러나 장애의 지각과 그것과 연관된 신체적 사회적 제한성은 그것이 발견된 지역사회에서는 완화될 수 있다. 마서즈 비니어드의 청각장애인에 대한 대우는 한 지역사회의 반응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 비니어드의 청각장애인들은 지역사회의 직업과 오락 등 모든 면에 통합되었다. 그들은 건청인 또는 청각장애인과 결혼하는 데 자유로웠다. 세금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평균 또는 평균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였고, 교회 활동도 활발히 했다. 이러한 상황이 19세기 후반 뿐 아니라 3세기 이상을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기록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태도가 청각장애인들을 완전히 수용했다는 것... 을 함축한다. (127쪽)
비니어드에서 청각장애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섬이 작은 규모였고, 청각장애인이 할 수 없었던 일이 거의 없을 만큼 기술적으로 단순한 사회였다는 것이다. ...
더욱 중요한 것은, 한 사회가 장애인에게 모든 적응을 요구했다기보다는 한 사회가 장애인에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고, 이것이 전체적으로는 미국 사회의 경우이며, 이 사실은 장애인의 권리와 비장애인의 책임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마서즈 비니어드의 경험은 장애라는 것이 하나의 임의의 사회적 범주라는 개념임을 강력하게 제안한다. 그리고 만약 장애가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문제라면, 아마도 장애는 재정의될 수 있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장애인'이라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는 많은 문화적인 선입견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서즈 비니어드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만약 한 지역 사회가 장애인들을 통합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장애인들은 그 지역사회에서 완전하고 유익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회는 모두에게 적응하기 위하여 기꺼이 점차적으로 변화를 수용해야만 한다. (216-218쪽)
(128-130쪽)
"당신은 그들이 듣지 못하고 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아주 익숙해져 있어서 그들에 대해서 어떤 특별한 주목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것은 마치 누구는 갈색 눈이고 누구는 파란색 눈인 것과 같았어요. 마치 누구는 다리를 절고 누구는 그의 손목에 문제가 있었던 것과 같았다고 할 수 있었지요."
"그들은 우리와 같았어요. 나는 그들이 그것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았어요. 나는 내가 그 누구나를 대하듯이 그들을 그냥 대했어요."
나는 "당신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삶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상실되었다고 한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오. 나는 이제껏 유쾌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들을 필요가 없었지요."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