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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끄적쟁이 Dec 21. 2023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커버사진 출처: 픽사베이


끝나지 않는 역병


검사 결과, 중국 우한시에서 입국한 중국 국적의 35세 여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2020년 1월 20일 이후, 세상은 변했다. '강한 전염성을 지닌 새로운' 질병은 사람들을 모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치사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고 설령 확률이 낮더라도 '죽음의 로또'에 내가 당첨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로에게 거리를 두었다. 팬데믹. 전 세계적인 거리두기 실험. 그때를 경계로 세상은 그전과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높은 벽을 둘러친 개개인들의 도시. 거기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들어가기가 무척 어렵다. 이제 자기 기분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게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 4개월이 흐른 2023년 5월에 '코로나 종식 선언'이 있었지만 역병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영혼이 앓는 진짜 역병은.


현재뿐인 도시


코로나19로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주로 실내에서 지냈다.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하여 외부 공기를 차단하였고, 운동이나 취미 활동도 중단했다. 제한된 환경에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한정된 사람만 만나고, 검증되지 않은 소셜미디어의 정보에 의존했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법한 정보만 지속적으로 보여주니 생각의 벽은 계속 높아져만 간다. 다른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벽 바깥의 세상은 듣던 것과 다르다. 친구들이나 SNS에서 알려주지 않은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우리 뇌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조화로운 상태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대개는 편안한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벽을 더 높이 쌓고 단단하게 만든다. 바깥세상은 거짓으로 치부하고 내가 '진짜라고 믿는 정보'에 더욱 열중한다. 오늘은 어제의 되풀이고, 내일은 오늘의 되풀이가 된다. 오늘만 사는 곳, 그게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지금 세계이다.


성장 없는 사회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 2022년 0.78명(초저출산)"
"고령인구(65세 이상), 전체 인구의 18.4%에 진입(초고령화)"
"2050년 한국의 경제 성장이 멈출 것"
"2055년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바닥날 것"

인구는 줄고 남은 자들은 늙어간다. 사람수가 적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일할 사람은 줄고 돌봐야 하는 사람은 느는 게 문제다. 연금 낼 사람은 없는데 타갈 사람은 늘어만 간다. 인구는 줄고 적립금도 줄고 경제 성장은 멈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요. 이 도시에는 현재뿐입니다. 축적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덮어쓰이고 갱신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계입니다.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중에서


영광의 시대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슬램덩크를 필두로 올해는 '아니메' 전성시대였다.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한국 흥행 1, 2, 7위가 올해 탄생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유가 뭘까. 물론 작품 자체를 잘 만들기도 했겠지만 세 작품은 우리의 향수를 자극했다. 인간은 미래가 암울할수록 '강렬했던 과거'에서 위안을 얻는다. 농구에 열광했던 청춘, 일본 대지진, 제2차 세계대전이란 기억은 강렬하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우리 마음을 뜨거운 빛으로 태워 자국을 남긴다. 

그런 것들이 있다. 그걸 보면,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일단 눈으로 보면... 세상의 웬만한 그 무엇에도 열정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오직 '그 시절'만이 '오래된 꿈'으로 남아 끝없이 되풀이된다. 때로는 추억으로, 때론 판타지로 혹은 대체역사(What if?)란 콘텐츠로 변주되며... 언제까지나.

출처: 나무위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광의 시대, 좋았던 그때'를 반복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추억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게 순수한 사랑이든, 우승의 영광이든 항상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안아준다. 그 안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질서가 있고, 편안하다.

출처: 책 '나의 둔촌아파트'

다른 하나는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지로의 전진은 두려운 예측을 동반한다. 누군가는 나라가 망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모두 뺏어갈 거라고 경고한다. 눈을 가린 채 절벽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절벽에 다가가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게 있다. '가능성'이란 녀석이다. '희망'이라고도 한다. 그 녀석은 혼돈과 무질서와 불확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으로 가려면 진심으로 원해야 한다. 강하고 깊게 믿어야 한다. 그제야 불확실한 벽을 지나 시곗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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