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
커버사진 출처: 효리네 민박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 '무릎' (아이유 작사)
아이유의 노래에는 생생한 감정이 느껴진다. 가사 전달력이 좋은 가수여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곡들이 그녀의 경험과 고민을 담아 직접 작사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작사의 출발점은 자신의 일기다. 생각나는 글을 쭉쭉 쓰다가 곡에 맞는 게 떠오르면, 깎아내고 붙여서 만든다고 한다. 멜로디와 문장의 길이가 다른 경우는 100% 멜로디를 수정할 정도로 글은 그녀에게 1순위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이런 부러운 글솜씨를 가지게 된 걸까? 실마리를 찾으려면 그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늘은 잘못했으니 이 책을 읽어라!"
다른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회초리(?)를 맞던 시절, 아이유는 부모님으로부터 '독서 벌칙'을 받았다. 그녀는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했다. 어린 시절 강제적으로(?) 형성된 독서습관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문학, 인문학, 자기 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녀가 써내려 간 아름다운 가사의 원천은 '책 읽기'인 것이다.
한 줄의 가사 속에서 책의 힘을 느끼게 하는 '책순이' 아이유. 지금부터 그녀가 사랑한 책 10권을 알아보자.
1. 최선의 삶 - 임솔아
2. 낙하하는 저녁 - 에쿠니 가오리
3.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4.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5. 데미안 - 헤르만 헤세
6.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기욤 뮈소
7.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8.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9. 니체의 말 - 시라토리 하루히코
1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 읽은 책, 읽지 못한 책
*책에 표시된 독서 난이도
읽기 쉬움: *
약간 쉬움: **
보통: ***
약간 어려움: ****
읽기 어려움: *****
1. 최선의 삶 - 임솔아
*아이유가 사랑한 책 속 한 구절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아이유가 꼽은 인생책.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열여섯 살 이후로 끈질기게 작가를 괴롭혔던 악몽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과 학교에 대한 불신, 친구를 향한 배신감을 먹고 자란 소녀가 그 친구를 찾아가 죽이려는 꿈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져 버린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좋은 학군에 위장 전입한 열여섯 살 여중생 강이는 동네와 학교, 양쪽 모두에서 이방인이다. 이방인이 겪어야 할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하지 못한 대다수의 독자들은 ‘병신’이 되지 않으려는 강이의 안간힘이 생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지점이 바로 이 소설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2. 낙하하는 저녁 - 에쿠니 가오리
한국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두권 중 여자의 이야기인 'Rosso'를 쓴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작가는 가벼운 산문 같은 소설을 주로 써 '여자 하루키'라고도 불린다.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 소설보다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책을 좋아하는 '아이유 취향'의 소설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리카. 어느 날, 하나코가 불쑥 나타나 함께 살겠다고 선언한다. 이 관계가 기묘한 이유는 리카가 8년을 동거한 남자친구와 헤어진 계기가 하나코이기 때문이다. ‘곱지 못한 것’들로 가득한 애정이 사그라지고, 고요하게 내려앉은 저녁을 되찾기까지의 15개월을 그리고 있다. 아담한 사이즈, 넉넉한 여백의 페이지 구성으로 부담 없이 읽기 딱 좋은 책이다.
독서 난이도: *
3.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가장 먼저 손에 잡은 책.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평범한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그 인간 세계에 스스로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해 가며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한다. 그리곤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르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왠지 영화 '조커'가 연상되기도 하는 이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에서 섬뜩한 면이 있다. 실제로 작가는 다섯 번의 자살 시도를 하는 등 평생을 자살을 꿈꾸다 마침내 성공(?)하여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패전 후 시대상황과 공산주의를 흠모하는 대지주라는 모순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4.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스토옙스키
고전이라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책을 펼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둘째 이반에게 마음이 간다. - 아이유
역시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읽었던 책.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평생 고민해 온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대한 모든 문학적 고민이 녹아든 대작이다.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합치면 2,000쪽이라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간의 재산 다툼, 한 여자를 둘러싼 갈등, 이런 반목에서 이어지는 친부 살해라는, '마라맛 막장드리마' 같은 소재와 긴장감 넘치는 구성으로 인해 한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벽돌책 중에 제일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서적, 특히 문학 서적은 나 자신의 것을 포함해서 모두 불살라 버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만은 예외이다. 그의 작품은 남겨 두어야 한다.' - 톨스토이
5. 데미안 - 헤르만 헤세
Q. 불면증이 생긴 건 언제부터인가요?
A. 딱 스무 살 때부터였는데, 단순하게 제가 생각하기엔 확 바빠지면서 수면 패턴이 꼬인 거예요. 자다가도 깨우면 바로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늘 스탠바이가 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깊은 잠에 들면 깨는 데 오래 걸리잖아요. 그래서 자는 걸 경계하게 된 것 같아요. - 2020년 10월 인터뷰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아이돌로서 불면증을 앓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곡인 '무릎'의 가사를 지을 때 참고한 책. 또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각종 논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아역출신 스타 '신디(아이유)'에게 신입 PD '백승찬(김수현)'이 건네준 책이기도 하다. 데미안을 통해 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 읽어도, 후에 읽어도 늘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 주는 고전이다.
독서 난이도: ***
6.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기욤 뮈소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까?”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여인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 공지영과 함께 아이유가 좋아하는 기욤 뮈소의 책. 인생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떠나는 사랑의 시간여행을 다루고 있다. 누구나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볼 때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아쉽고 안타까웠던 일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선택으로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 일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문제를 바로 잡고 나면, 이번엔 너무 당연해서 인식조차 못하던 다른 소중한 무언가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인생에서 이룰 수 없었던 꿈,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7.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책이라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5, 6번씩 읽다 보면 '이게 그 뜻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 거기서 오는 충격이 있다. - 아이유
30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 사랑에 관한 철학적 명상으로 가득 차 있다. 역사, 종교, 문학을 끌어들여, 첫 키스부터 말다툼, 그리고 화해에 이르기까지, 또 친밀함과 부드러움부터 불안과 상심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다양한 진전을 그려낸다. 작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지극히 평범하고 뻔한 연애와 사랑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의미들을 세심하게 건져낸다. 최근 사랑에 빠졌거나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다.
8.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아이유가 2011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추천책 질문을 받은 순간 떠오른 책이란다. 진짜 기억에 남는 책이란 그런 게 아닐까. 이 책에는 작가가 위기의 날들을 견디며 단단한 마음근육을 키워낸 비밀이 담겨 있다. 그건 젊은 시절 집착했던 거대하고, 뽀대 나고, 화려한 것들이, 사실은 아주 사소한, 가벼운 깃털 같은 일상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풀잎, 반찬, 라디오 프로그램, 공과금 등의 작은 것들이 하루하루 모여 삶을 이루고, 우리를 살게 만든다. 책은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들이 엄숙해 보이는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라는 걸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알려준다.
9. 니체의 말 - 시라토리 하루히코
밑줄 친 일부 구절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해 화제가 된 책.
일본 최고의 '니체 전문가'가 니체의 말 중에 엄선한 232편의 명언을 담은 책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나’, ‘사회에서 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한 나’를 만드는 충고가 아닌, 오로지 제대로 된 ‘나’ 자체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목표, 치열, 본질을 상실한 지금 공허의 시대, 니체의 말은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진짜 나'를 되돌아볼 여유와 온기 어린 위로를 가져다준다.
1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인터넷에 '아이유가 추천하는 책' 목록을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작가가 있다. 박민규. 그가 쓴 책들 중 아이유가 추천하는 게 무려 3권이다. '카스테라', '아침의 문'과 더불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배경으로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가 상징하는 것은 비단 주인공의 못생긴 연인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마이너리티들의 영원한 히어로'라는 별명답게 작가는 절대다수가 신봉해 온 '부와 아름다움이라는 꽃'이 사실은 소수의 권력자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설정해 놓은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함을 통렬하게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