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끄적쟁이 Feb 18. 2024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고민: 공에 눈을 맞았어요

Q: 친구랑 배드민턴 치다가 친구가 아래로 내리꽃은 공에 눈을 맞았어요 맞고 나서부터 눈이 뿌옇게 보이더라고요. 맞은 직후에는 아팠는데 지금은 안 아파요. 맞은 지 2시간이 지났는데요. 눈이 계속 뿌옇고 무슨 김 서린 것처럼 그래요. 맞은 눈과 안 맞은 눈 차이가 심한데 걱정됩니다ㅜㅜ 왜 뿌연 걸까요? 얼음찜질도 해봤는데 소용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아님 안과를 다시 가봐야 할까요?


A: 책 '의학의 대가들' 한번 읽어보실까요?


최악의 악몽


"퍽"

충격과 함께 풍경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가가 오른쪽 눈을 때렸다. 골프공이었다.

2017년 11월 29일 17시경, 세상의 절반이 내게서 멀어져 갔다.




몇십 분이 지나 조심스레 눈을 떴다. 오른편 세상은 붉은 렌즈 망원경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온통 빨갰고 오십 원짜리 동전 크기마냥 시야가 좁아져 있었으며, 그마저도 흐릿했다. 응급실에서 여러 처치를 받고 올라온 입원실에서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눈에 차있는 피가 빠질 때까지 앉아서 잠을 자야 한다"고 했다. 그런 생활을 하루, 일주일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해야 될지도 몰랐다. 눈이 회복될 수 있다거나 영원히 이 상태로 있어야 하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끔찍했다. 당황, 슬픔, 공포, 무력감, 분노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그렇게 14일이 지나서야 예전처럼 누워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남은 평생 한쪽 눈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시절...


있을 땐 모르는 것들


2주 정도 지난 후, 퇴원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오른쪽 시야는 안개 낀 듯 흐리고 물체가 2개로 보였다. 단지 붉은색 배경만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

한 물체에 대해 두 가지 영상을 보는 현상을 '복시'라고 한다. 출처: 닥터나우


멀쩡할 땐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런데 당연한 걸 잃어버리고 나니 원하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극히 제한되고, 삶의 모든 면에서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는 성격이었음에도 참 우울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지냈다. 눈을 다치니 눈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더 하고 싶어 졌다. 책을 펼쳤다. 오른눈을 가리면 잘 보였다. 이전과 별차이 없었다. 왼눈을 가리자 글자가 분신술을 썼다. 1~2분 지났을 뿐인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별 수없어 책을 다시 덮었다. 30분쯤 흐르니 책이 다시 읽고 싶어 졌다. 내가 독서를 이렇게 애정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발전은 발작처럼 일어나고, 때로는 후퇴하기도 한다


퇴원 후 1주일에 1~2회 정도 외래진료를 다녔다. 상태를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골프공에 맞고 이 정도면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겁니다."


선생님 얘기가 맞다. 골프공에 정통으로 맞았으면 눈알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행히 내가 맞은 공은 동반자가 '쌩크'를 낸 볼이었다. 빚 맞은 공이란 소리다. 공에 맞은 건 불운, 쌩크난 볼에 맞은 건 행운, 눈에 맞은 건 불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감사할 일이기도 하고, 억울할 일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짝눈이란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우울감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그러자 상처 난 오른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보이는 왼쪽눈만 쓰다간 오른눈의 시력이 더 나빠질 것 같았다. 그날부터 하루 일정시간 동안 멀쩡한 왼쪽눈에 안대를 끼고 생활했다. 처음엔 5분, 다음날엔 10분, 이런 식으로 점차 시간을 늘려나갔다. 실내에 어느 정도 적응한 후에는 밖으로 나갔다. 매일매일 같은 간판을 보면서 얼마나 더 잘 보이는지 체크했다. 기분 탓일까. 날이 갈수록 글자가 또렷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점차 활력이 생겨났다.


0.4

0.6

0.8

0.9

1.0


매번은 아니었지만 약 한 달 간격으로 시력도 차츰 회복되었다. 2개였던 물체도 다시 하나가 되어갔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의욕이 앞선 탓에 오른쪽 눈으로 생활하는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으로 급격히 늘린 게 화근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빨대구멍 크기로 좁아지는 일이 벌어졌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너무 놀랐다. 안대를 벗고 주저앉아 1분 정도 있으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런 일이 며칠마다 한 번씩 반복되었다. 너무 무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다시 30분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3~4일 간격으로 10분씩 늘렸더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약해진 오른눈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건강한 눈 대신 얻은 것들


사고 후 1년 뒤부터 지금까지 내 오른눈의 시력은 1.0이다. 사고 전 1.5였으니, 0.5 정도 시력저하가 발생한 셈이다.(내 소식을 듣고 애꾸가 될까 걱정했던 친구들이 이젠 공 맞은 놈이 자기들보다 눈이 좋다고 핀잔을 준다.) 조리개 역할을 하는 홍채가 공에 맞은 후 빛조절이 잘 안돼 눈부심 현상이 좀 있다. 그리고 평생 달고 살게 된 3가지가 있다. 보호안경, 빌베리(눈영양제), 인공눈물.

나의 평생의 동반자


맞다. 이전 삶에 비하면 많이 불편하다. 1년마다 받아야 하는 안과검진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부담도 크다. 하지만 그 대신 얻은 것들이 있다. 건강한 생활습관이다. 우선 눈 핑계로 술을 끊었다. 코로나 전만 해도 회식도 잦고 술을 안 먹기가 힘든 분위기였는데, 부상 이후 나는 당당하게(?) 술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술이 비워진 시간엔 운동과 독서가 자리 잡았다. 다시 책을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씽큐베이션도 참여할 수 있었다. 운동을 꾸준히 한 덕분에 심장질환과 당뇨병 예방 효과도 확실히 올라간 것 같다. 또 안과검진뿐만 아니라 건강검진, 치과검진도 꼬박꼬박 챙기게 되었다. 이건 어쩌면 암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대비책으로 돌아올 것이다.


의학의 대가들이 주는 기시감


'의학의 대가'들을 읽는데 여러 에피소드에서 묘한 기시감(데자뷔)이 들었다.


총격을 당한 가필드에게선, 골프공에 맞은 내 모습이,

척수성소아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슈워츠에게선, 침대에 앉아 14일간 지내야 했던 내 모습이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비커리지에게선, 다친 부위를 안대와 선글라스로 가려야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고의 기억을 글감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 트라우마로 남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회복했기에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건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좀 더 '안티프레질'한 내가 되었다.



*고민 해결책(冊)이 필요하시면?

leonard0222@naver.com

으로 고민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고민에 적합한 해결책(冊)을 드립니다.

이전 01화 나는 오늘 인류 행복 총량을 올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