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사진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세계화의 역사는 여러모로 한국의 역사 그 자체다.
- 피터 자이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
한반도와 북미를 비교해 보면 한 나라의 성공에 '지리적 여건'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이 난다. 세계 다른 지역들로부터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북미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롭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는 국력차이가 현격한 캐나다와 멕시코뿐이다. 내전(남북전쟁)이 벌어져도 스스로 극복하고 번성할 여유가 있다. 반면 다른 국가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늘 외세의 침략에 노출되어 있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으로 손꼽히는 중국, 일본, 러시아다. 내전(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주변국들이 싹 다 개입하여 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졸지에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가 되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한국에게 세계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미국의 독보적인 해군력은 태평양을 삭제시키고 두 나라를 이웃국가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전초기지'라는 지리적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안보는 큰 형님 미국에 맡긴 채 모든 역량을 경제에 집중해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세계화 시대를 구축한 것이 미국이라면, 그 최대 수혜자는 한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부르는 지리적 여건은 영구불변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진화하면 승자와 패자도 바뀐다. 이건 문명이 태동할 때부터 늘 있어왔던 일이다.
이사 가기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바람직한 영양 상태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렵채집 시대에는 산기슭과 같이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이 인기가 있었다. 멀리까지 가지 않고도 서로 다른 몇 가지 기후대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건기와 우기의 변화에 따라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는 열대기후, 사바나 기후도 선호지역이었다.
사람의 똥으로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선호지역이 바뀌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정착 시대로의 전환이 가져온 나비효과다. 이제 계절 변화가 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이 공급되어서 연중 내내 수확이 보장되는 기후가 필요했다. 또 도적들이 무단침입해 노동의 결과물을 가로채지 않을 지리적 여건도 중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위도이자 저고도에 있는 사막을 관통하는 강 주변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남는 게 있어야 한다.
수렵채집 시절 인간의 근육은 생존을 위해 모두 쓰였기 때문에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강 주변에 살게 되면서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인류에게 2가지 중요한 이점이 생겼다. 첫째는 운송이다. 물건을 옮기는 데 수로를 이용하니 육로의 1/10의 에너지로 충분했다. 둘째는 음식물 소화다. 밀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곱게 갈아야 하는데 이게 엄청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강의 운동에너지(물레방아)는 필요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남는 노동력은 농기구 개발 등 삶을 개선하는 새로운 산업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점차 인구수가 늘면서 마을은 도시국가가 되고, 왕국, 제국으로 성장했다. 4대 문명 앞에 당당히 이름을 붙인 강의 힘이었다.
물이 문명의 원동력이라면 문명의 확대에는 바람의 역할이 컸다. 강력한 제분기계 풍차말이다. 풍차의 등장이 후 꼭 큰 강 근처가 아니라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든 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다. 강의 힘만 이용하던 시절에 비해 인간이 모여살 수 있는 지역이 100배나 확장된 것이다.
물과 바람이 노동력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깨닫게 된 인류가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어디였을까. 가장 강력한 물과 바람이 존재하는 장소, 바다다. 바야흐로 대항해 시대에 적합한 지리적 여건은 2가지였다.
첫째, 육로를 통해 외세의 침략을 받을 걱정이 덜한 지역
둘째, 지평선 너머 늘 바다를 바라보며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지역
이때부턴 반도의 시대다.
시작은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드디어 인류가 지구별의 70%를 차지한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