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163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백육십 삼 번째
집에서 끙차끙차 신년회 선물을 준비하고 설치할 배너와 플랜카드를 타포린 백에 담아 출발했다. 7시 직전에 도착해서 예약한 식당엔 이미 절반이 와있었다. 식당 대표님이 일면식이 있어 밥 먹을 때 시상식 해도 되냐고 여쭤봤더니 다행히 흔쾌히 자리까지 내주셔서 장사 잘되는 불금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행사를 잘 마쳤다.
오늘 시상식에 앞서 작년에도 그랬지만 열심히 참여한 멤버에게만 돌아가는 나름 1년이나 지난 유구한 "최고의 화두상"을 시상했다.
하루종일 액자사고 상장종이는 떨어져서 다른 곳에 구입하는 등 고생은 했지만 멤버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그런 맛에 혼자서라도 준비하게 된다. 작년에도 3명에게 시상을 했고 울기 일보직전이었던 한 멤버는 광주로 이직을 했지만 인연이라는 것은 특히 모임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치를 쌓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어중간한 사람도 있고 뱀 같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의 진정성이 그래도 닿는 거 같아 만족한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독서모임이나 사교모임에서는 볼 수 없는 그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의견에 대해 얼마나 들어줄 수 있느냐에 대해서다. 독서 모임은 경험상 지정도서를 하게 되면 흥미 있는 사람만 참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작 참여한다고 쳐도 카페 도착하기 30분 전에 줄거리 요약본 읽고 아는 척 떠드는 사람도 많다.
사교모임은 가끔 내가 혐오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많고 거기는 나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정적이다라고 느낄지 모르는 우리 모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남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다른 모임을 찾아 떠나게 된다.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인간관계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들어줄만한 곳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지만 인문학이라는 확장성 홍보 키워드에 눈이 흐려져 자칫 독서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식자랑 잘난 척 모임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물론 흥미로운 주제가 나오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떠들고는 있지만 매번 사회자로서 누구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누구는 조용하면 이것을 조율하기 위해 애쓴다. 남들은 고생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경험의 관점에서 레벨업 중이니 만족한다.
그래서 누군가 말씀하시듯이 이런 모임 어디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말이 나에겐 극찬이다. 뭐 분명 비슷한 포맷을 가지고 있는 모임도 많겠지만 앞서 뒤통수 때리고 도망친 누가 글쓰기나 자기 계발 모임이라 칭하며 개장하지만 최근에 모 인플루언서가 탕후루집을 기존 탕후루집 바로 옆에 개장하려다 욕을 80억 인구수만큼 먹은 것처럼 나에게 "똑같더라도 오리지널은 잡을 수 없다"는 위로가 와닿았다.
어쩌면 대학원에 들어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담사는 들어야 한다"라는 교수님의 말씀. 다들 떠들기 바쁘고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면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하소연하고 푸념을 털어놓거나 아는 것이 나와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모임에서 국룰처럼 자리 잡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라는 슬로건처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내향적이라 확장을 잘못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욕심인지 또 모르지만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고 인기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아니면 뭐 아무 쓸데없는 이야기 들으러 굳이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던 누군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여하튼 그런 사람들은 알바 아니고 나는 내 사람에게만 집중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