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181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백팔십 일 번째
운전하면서 문득 선거철이 되었구나 싶다. 사거리에서 자기만 한 피켓을 앞에 두고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계속 인사하는 후보를 보았다. 자기의 스펙이 나열된 커다란 현수막이 앞 건물에 걸려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저런 사람들이 뽑히기 위해서 선거 끝나면 태도가 변하는 국회의원들이라 욕은 해도 날씨를 막론하고 나와서 남녀노소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본다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가져본다.
하향 평준화라는 말이 있듯이 시사 콘텐츠나 책들을 읽어보면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 국민은 여전히 사회 개선을 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는데, 국뽕이 차오르는 게 아니라 그나마 우리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 반열에 든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가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랑 대만, 일본을 제외하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 아프게 서로 싸운다고 생각을 해도 그렇게 공론화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이 많지가 않다.
우리가 노골적으로 몇십만 명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을 욕한다거나 상대진영을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적어도 법적 제재를 당하거나 물리적 폭력의 위협 앞에 시달려야만 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 필리핀도 선거를 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지만 당장 두테르테는 친위대처럼 사병을 부리며 마약사범을 현장사살하는 것을 보노라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굉장히 위험이 많은 퍼포먼스다.
한 두명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행보는 제도하에 법적 절차하에 진행되어야 하지만 어느 누가 나서서 날뛰고 폭주해서 그게 대중의 선호를 받는다고 해도 그게 과연 제대로 된 민주주의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마치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히틀러 탄생직전을 보는 것 같은 비약도 느껴본다. 많은 국가에서 극단정치의 스텝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아주 강경노선의 경제학자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보고, 트럼프의 인기와 의회난입사건을 보고 상대적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싱가포르가 누가 이야기했듯 잘 사는 북한이란 표현이 있는데 겉은 멀쩡하고 시민 구성원이 나름 합리적이고 부유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밖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형벌이 존재하고 리콴유와 뒤이은 리셴룽 일가가 다 해 먹는 상류사회가 위의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싱가포르 사람들도 리콴유가 난세 속 영웅처럼 작디작은 싱가포르를 살린 국부이긴 하지만 잘못된 점도 서서히 인식하고 있으며 비판의 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듯해 보인다.
태국은 마치 일본보다 한술 더 뜬 국왕의 권위가 불가침의 영역이라 군부의 집권을 통제하려고 시민들이 나선다 해도 적재적소에 이용해 먹는 입헌군주제의 국왕이 사실상 그 이상의 통치를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중국과 맞짱뜰만 한 인도는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제도의 병폐가 아니라 각 지역이 워낙 사람도 많고 각자도생 하는 편인지라 일본처럼 지방분권적인 측면이 강하다.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러 측면과 장단점을 보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서울공화국이라는 오명아래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를 펼치고 있다. 가끔 제왕적 대통령이니 뭐니 하면서 내각제를 지지하는 의원들도 많지만 여론조사는 여전히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야 직성이 풀린다"라는 민주화를 성공한 시민들의 열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도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자민당 장기집권이라 고인 물이 썩을 지경이며 시민들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큰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 그리 관심이 크지 않아 정치적 무관심이라 매번 자민당 참의원, 중의원들 모두 해맑게 웃고 있다. 최근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 내 결론은 아무래도 교육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벨평화상 말고 받지 못한 나라이긴 하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게끔 하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그나마 잘 돌아가고 있는 우리의 시대를 지탱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다른 나라는 무식하다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문학이니 이공계니 특정학문의 수준이 아니라 보편상식선에서 갖춰진 공교육 체계가 말이 많아도 객관식 수준의 시민소양을 갖춘 게 어디냐라는 차원에서 볼 때 적지 않은 굉장히 큰 요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