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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Feb 24. 2024

선교와 전파의 교훈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19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백구십 이 번째



부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개신교인. 나다. 오늘도 여기저기 시장 장날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인터넷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불교 사상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예전에 "공"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고타마 싯다르타(이하 석가모니)가 남긴 가르침이 몇 천년이 지나도 인간 본성에 대한 뛰어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서구권이 불교를 굳이 종교로 들어가서 믿어야 할 정도가 아닌 이성 차원의 매력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실제로 석가모니는 자기는 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사후 어떤 종교적 지도자도 세우지 않으려는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가 구제하고자 하는 중생들에게 생전엔 많은 감동을 주었지만 그의 존재가 이 세상에 사라진 후의 그가 했던 가르침도 당연히 사라지는 것이기에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현실적인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 때의 니케아 공의회처럼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억"했던 제자들이 모여 그의 가르침을 통일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지 사후 지도자가 선출되지 않아서 사실 누군가가 나서서 어떤 지배적인 여론 혹은 방향성을 함부로 제시할 수 없었다. "난 리더 안 세울 거야"라는 석가모니의 방침에 생전 뵙던 제자들 중 어느 누가 제자들 위에 군림하려 하겠는가? 다만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전수받거나 지근거리에서 가까이하던 제자들이 그나마 그런 이야기를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으나 여러 번 회의를 시대에 걸쳐 열었지만 이론, 가르침의 방향이 가르마를 탔을 뿐 각자의 헤게모니는 서서히 갈라지고 있었다. 


역사시간에 흔히 들어보던 소승 불교니 대승불교니 하는 것, 상좌부 불교 등등 가뜩이나 인도지역도 넓은데 그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에 부처의 가르침이 이리저리 전해지노라면 구심점 없는 지도자 없이 교단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르침에 대한 해석이 서서히 엇갈리면서 일반적으로 불교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적용등 일상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규율들이 해석으로만 따지기엔 너무 복잡한 지역마다 민족의 특성이 또 있었다.


아무튼 불교의 전파는 이미 인도 내륙에선 다신교였던 힌두교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많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솔직히 지금도 뭐라고 하는지 모르는데 가르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던 백성들에게는 석가모니를 신격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설정들에 대해 차용할 수밖에 없었고 불교에서는 다시 제석천이나 지장보살, 야차등 불교를 수호하는 정령등이 정립되고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기존 힌두교를 믿든 믿지 않던 생활 곳곳에 문화처럼 퍼져있어서 일반인들에게 불교 전파도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좀 더 깊이 파보다 보니 부처의 가르침이 워낙 뛰어나기에 감화되어 평생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볼 때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관점의 변화도 메이저 종교가 남겼던 행적을 보노라면 어떻게 사람들이 관념을 변화시키고 적용하는지를 볼 수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 현재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톨릭 문화 그리고 신도들의 생활 방식을 보면 각자만의 풍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경우가 많고 어떻게 보면 이게 가톨릭인지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가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가톨릭에서는 그리 반대하지 않거나 묵인하지만 개신교인들은 반대한다. 서로마 동로마제국 당시에도 성상파괴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며 이게 무슨 우상숭배냐 운운할 수 있었겠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물리적 상징이나 표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현실적인 면을 간과한 경우가 있다 생각한다.


천 년 전의 사람들도 "아니 저 무식한 야만인들이 글도 모르는데 돌이든 나무로 깎든 간에 예수님과 하나님을 표현하는 물건이 있어야 믿는다."라는 주장을 했던 것을 보면 만약 지금도 성상파괴운동 비슷하게 의견이 갈라진다면 메이저 종교가 살아남고 성장했던, 기존의 전통 혹은 문화와 충돌하지 않은 채 서서히 점진적으로 접근했던 방법에 대해 나는 기꺼이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무리 개혁적인 교회라도 특히 네덜란드나 위로 올라가 북유럽권 개신교 교회를 보노라면 그래도 실내에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경우가 있고 그것을 통해 다시 한번 예수의 고난에 대해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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