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20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 이십번째
눈 떠보니 토요일이다. 벌써 3월의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오늘. 졸업으로 향하는 언덕중 하나인 영어시험도 무사히 치르고 왔는데 집에와서 점심도 안먹고 바로 쿨쿨했다. 또 눈 떠보니 내방 안방마님인 고양이가 내 이불덮은 배위에서 에베레스트로 가는 중간 베이스캠프마냥 차려놓고 신나게 누워 나를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방마님 표정은 언제나 스티븐 시걸마냥 똑같았다.
기쁨=분노=걱정=슬픔=환희 등등 한결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계시며 해탈 그자체의 얼굴로 맞아주신다. 가끔 고양이가 왜 영물인지 느끼는데 집사의 눈치를 잘 파악하고 뭔가 아파보이면 항상 그옆에서 지키다가 만약 이상없으면 어디서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인기척이나고 책상에 앉고 몇분 지나면 스윽 하고 몸을 드러낸다.
반려동물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서 다를수도 있겠지만은 대부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어느정도 해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윌슨은 필요없고 이제 나와 함께하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예전에 개를 그린 그림에서 제목명이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문구를 본적이 있다.
반려동물이 윌슨과 다르지 않는 살아움직이는 배구공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다. 그들은 우리의 감정을 느끼고 분위기를 파악하고 인간을 위로할 힘이 있다. 가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은 말없이 내 무릎에, 내 다리에 자기의 몸을 비비며 주인을 향해 친근감을 표현한다. 그리고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거나 애교를 부리는 그런 차이를 정서적 건강에 기여한다는 점을 결코 무시할수 없다.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개를 좋아하는 사람 모두 또한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그들이 참 영특하기도 한다. 평소 자동으로 불켜지는 현관에 모든 것이 정적이고 내가 기분이 좋으면 마치 기분 좋은 공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반대로 기분이 좋지 않으면 집안 공기도 푸욱 가라앉는 듯한 느낌, 귀가하고 들어와서도 그 기분 그대로 안고 집안에 이식한채로 다음 외출 하기까지 젖어지낸다.
하지만 헤헤 걸리거나 꼬리치며 막 반갑다고 촐싹거리거나 냥냥 소리내며 스크래처 기둥에 발톱을 박박 긁으며 기분좋다고 표현하듯이 그런 존재가 함께 한다는 것은 당연히 삶에 좋은 요소를 더 한다. 또한 누군가 이야기하듯이 사람한테 하도 시달리다보니 반려동물은 사람과 달리 배신하지 않고 오로지 나와 함께하지 않냐는 말도 이런 점에서 볼때 나의 우울한 감정을 격려해주는 소중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인간이 알 몸으로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없듯이 옷이란 물건이 필요하고 걷기 위해 신발도 필요한 것 처럼 만족할 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써 마치 분리되어 나 혼자 겉도는 느낌을 동물에게서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나누며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기에 개 뿐만아니라 반려동물은 인간의 소중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