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1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십 팔 번째
감정의 요동침은 걷잡을 수 없다. 눈물을 휴지로 닦으면 휴지가 번지듯이 감정도 번지고 번진다. 그리고 그런 번짐은 주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누구는 슬퍼할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또 누구는 너만 힘든 게 아니다며 이야기를 하겠지만 누구나 당황을 하고 누구든 슬퍼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표현을 하게 되면 호구 잡힌 듯 약해 보일까 봐 쉽사리 울 수도 없다.
가끔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저 수많은 사람들이 무표정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보면 평소 어떤 감정을 갖고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는 기쁨을 억누른 채 후다닥 달려갈 수도 있고, 누구는 분노를 꾹꾹 담아 터뜨리러 가고 있는 중일수도 있다.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던 그때 나의 뒤에는 이별하는 커플의 대화가 들렸었다. 한쪽은 울먹거리고 한쪽은 뒤로 돌아서 "와 어떤 표정이지?"라고 볼 수는 없어서 알 수가 없었다.
감정표현이 어느새 창피한 것이 되는 것 혹은 너만 일탈하는 듯한 시선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가? 부조리함을 느끼는가? 아니면 약해 빠졌다고 생각하는가? 위선으로 가득 찬 책들은 위로의 메시지를 던져주지만 대중은 이미 간파했고 비판의 메시지를 쏟아 냈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그런 책이 싫어 위로에 "ㅇ"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 혹은 개인사가 생길 수도 있다.
감정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다. 그런데 감정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냉혹하게 이야기하면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는 자해일 수도 있다. SNS에선 오로지 기쁜 감정뿐이고 오락과 웃음뿐이다. 안 좋은 감정을 받아내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보게 되면 감성팔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래도 자기감정을 인정하고 다독이고 한 단계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겨내고 해 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비참하게 죽지만 누군가는 떳떳하게 선 채로 죽는 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든 내가 내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자유가 남아있다라는 프랭클의 가르침처럼 스스로 돌봄은 평생의 과업이며 책임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고 그런 나의 노력들은 어느새 나타나기 마련이다. 나는 내 약함을 알기에 더욱 뻔뻔해지려 노력 중이다. 남들 앞에서 내 의견을 당당히 주장하기에 앞서 당당함은 너무 고상하고 뻔뻔해지고자 한다.
한 가지 깨달은 점은 마음처럼 쉽지 않은 나의 태도를 키우기 위해선 외부의 시선, 평가, 비언어적인 표현이든 뭐든 그들에게 내 감정을 맘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초창기에도 일기에 썼지만 내가 타인으로부터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억울하고 열받아 죽겠는데 그걸 생각한다면 더더욱 뻔뻔해질 수밖에 없다.
속은 열불이 나더라도 인내를 키울 수 있다. 사실 예전에는 속으로 계속 삭히면 썩는다라는 말처럼 그런 경험을 했던 지라 감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떻게 보면 그 이전에 앞서 나는 당신으로부터 자유롭고 나에 대해 친절하지 않는 당신에게 내가 왜 맞춰주고 반응해줘야 하냐라는 결론도 도출해 본다. 그러므로 이불 킥하고 쉽사리 던지는 농담에도 상처를 받던 나는 야유를 보내도 "어쩌라고"할 정도의 뻔뻔함을 기르고자 한다.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링컨이 했던 말처럼 "울지 않기 위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