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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Jun 06. 2024

폐허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95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구십 오 번째



스펀지밥 에피소드 "No Weenies Allowed" 장면 中

실례되는 행동이나 어떤 비판을 받게 되면 굉장히 부끄러워진다. 처음에는 크게 당황하며 얼굴이 붉어지는데 나 같은 겁쟁이클럽 VIP 회원은 그런 수치심이란 감정을 자주 느낀다. 누군가와 일을 한다거나 한 뜻으로 모여 시간을 보내다 잔소리를 들으면(물론 내가 안일한 게 크지만) 송구한 마음도 들긴 하나 가끔은 분노의 감정도 드는 건 당연하다. 상대방이 전후 맥락을 파악해 줄 당위성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이런 수동적인 입장에서 대부분 가져올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무 잘라서 나누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외부로부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나는 왜 이모양인지 자책을 하고, 상대방에 대해 증오의 감정을 품는 등의 수많은 감정 사이클을 겪게 되면 마음에 남는 것은 폐허뿐이다. 누가 옳고 잘못했는지를 따져 내가 대부분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비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여기며 도리어 화를 내거나 숨어버리기도 한다.


때론 대단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인데 그는 오히려 명백한 비난의 시선에 대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억울한 흑색선전이든 진실이든 어쩌면 치욕적인 정보에 누군가는 어딘가로 숨어버린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텐데, 반대로 너무 뻔뻔해서 오히려 비난하는 쪽이 벙찐 경우도 있음을 본다면 칭찬의 의미든 비판의 의미 든 간에 그가 얼마나 철판의 두께가 두꺼운지 알 수가 있다. 오히려 그는 비판의 시선 그 자체를 즐긴다. 그가 진정 무서워하는 것은 무관심으로 분석하는 의견도 있는 것만큼 그는 사람들의 이목 그 자체를 즐긴다.


가끔 그가 부럽기도 하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이는 모습에서라도 당당함을 견지하는 것은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 와서 이불을 마구 걷어차며 부끄러워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경우도 있다. 당당하지 못해 계속 움츠러들어서 어느새 스스로의 태도로 더더욱 움츠러드는 경우가 있음을 본다면 이런 악순환의 꼬리를 잘라낼 필요도 있단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그것이 표면적인 당당함이라면, 가장 좋은 것은 역시나 내부에서도 그런 당당함, 건실한 게 당연히 좋다. 이 부분은 제 3자가 보고 판단할 수는 없어 온전히 스스로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용기란 태도가 두려움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닌 두려움이 있음에도 꿋꿋이 용기 내려하는 것이 곧 용기라고 하는 것처럼 수많은 쪽팔림과 후회가 있음에도 어떤 태도를 일관되게 취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 차마 비교할 수도 없이 처참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을 온전히 직면하는 것.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불편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단히 건강한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순간 옷의 가격표를 달듯이 나 자신에게 조건이 하나 둘 붙기 시작하면 나의 존엄성을 느끼는 요구치도 점차 비례해지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상당히 조건적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수치심이라든가 후회라는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실수는 언제든 한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실수라는 것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내리기 앞서 그런 실수를 한 자신에 대해 "너는 부끄러워야 해", "쓸모가 없어"라는 마음속 주장을 강력히 진실이라 외칠만한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그런 주장을 할 권리도 없다. 당신 자신만 주의한다면.


MAKE ME GREAT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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