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63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육십 삼번째
8월 15일 광복절. 오늘 뉴스만 보면 고구마 10개는 집어 먹은 소식들로만 가득해서 참으로 힘든 하루였던 것 같다. 건국절 논란과 함께 불이 붙었고 결국 두개로 쪼개진 사상 초유의 광복행사가 열렸다. 같은 날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기시다 총리를 비롯한 기하라 방위대신 등 지도층의 참배로 이어졌는데 다른 날에는 역사이야기를 줄 곧 잘 했지만 오늘 같은 기념일에 이런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시정부" 임시정부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나? 단어 자체의 뉘앙스가 아무런 힘이 없거나 기능이 소실된 잠시나마 역할을 하는 정부로만 생각을 할수가 있겠지만 당시의 임시정부 파워는 생각보다 강했다. 한국사 책을 들여다보면 외교적 입지가 확실하지 않았지만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정부의 역할은 조직력과 정체성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다져갔던 것으로 단순히 "일개의" 독립 주장 단체로만 볼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19년인지 48년인지 건국절의 논란은 임시정부를 계승하느냐 이승만 정부 제 1공화국 시기로 판단하느냐인데 일단 이승만 자체도 다른 국가에게 외교 서한을 보낼 때 그리고 본인이 광복후 대통령 재임시 제헌 헌법에서 명시토록 지도했다는 차원에서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이 있다. 이승만 자체도 만일 48년을 주장했더라면 지금의 불씨는 더 가열 되었을지도 모르며 그런 주장을 그때 당시 했더라면 본인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정치적 지위를 상당수 잃게되는 경우도 초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의 3요소 흔히 영토,국민,주권이 없어 48년 제헌 헌법이 들어서야 건국이 되었다는 주장은 자칫하면 이승만이 몸담고 있던 임시정부 이력과 광복후 임시정부 지도층 활동부터 제 1공화국 정부 수립일까지의 역사를 부정할수 있다는 점이다. 사상적,전통적으로 인정하겠지만 국가라는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은 결국 빈껍데기로만 남을 수 있다.
제 1공화국 설립까지 움직였던 모든 유의미한 행동이 단지 법적으로 국가라는 조직체로 보이지 않았다한다면 극단적으로 그럼 한민족의 정의까지 의문을 표할수가 있다. 한민족은 흰옷만 입고 돌아다녀야 한민족으로 인정받나?라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독립활동 근간은 한민족이란 민족주의 정체성으로 무장한 일련의 활동들의 총합인데 이는 정파를 초월한 구심점 역할을 하던 장치다. 이를 부정하는 논거를 펼친다면 향후에 있을 통일과 북한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금이 갈수 있는 성대한 자폭이 될수도 있다(오늘만 보더라도 두개로 갈라진 것을 보면...)
건"국"이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어쩌면 그거 하나만을 줄곧 주장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가 해방되고 드골이 대통령에 오르기 까지 드골이 괜히 대통령이 되었는지, 현 프랑스 공화국 체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묻는 다면 당연히 자유프랑스 망명정부를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과정은 깡그리 무시한채 결과만으로 인정하려고 한다면 뿌리를 과연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 연신 터진 뉴스들을 보면서 어쩌면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들이 공론화되어서 극복하는 차원의 과정중 하나이지 않을 까 애써 위로하면서(덕분에 관련 역사를 더욱 찾아보게 되었다.) 보지만 안타까운 점이 눈에 밟힌다. 이경규 아저씨가 말했나?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그 명언(?)이 하루종일 떠올랐다. 건국절은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이라는 주연이 이야기를 그려내는 과정 중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 과정이 있기 까지 일련의 활동들을 축하하는 자리임이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개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정신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큼은 남아 존재하고 있으니..." -박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