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436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삼십 육 번째
내가 딛고 있는 땅에서, 같은 땅을 밟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무수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거기서 나는 희로애락을 느낀다. 때로는 힘을 얻고 때로는 힘을 잃기도 한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 인간관계란 변수는 내가 잘한다고 될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며 애초에 내가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착각일 뿐이다.
누군가는 남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본다 한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거나 내키지 않는 나만의 부분이 상대에게서 보이는 경우가 있어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갈등이 생긴다. 내가 내키지 않는 나의 모습이 그에게서 드러나면 애써 부정하고자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하다. 외면했던 나의 분신이 나타나 나를 참교육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생길 수 있다.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 생김으로써 한 단계 나를 성숙케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모르던 부분을 남이 그대로 해줌으로 나는 나를 직시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선을 가지고 바깥으로 향하게 되면 반면교사의 참교육세트(?)가 나를 기다린다.
다양한 세상 속 다양한 얼굴 그리고 다양한 성격들의 향연에서 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범주에 벗어나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운명의 원수는 직장에서 만난다"라는 농담이 있듯이. 예를 들어 타협이란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보면서 "나는 저런 인간처럼 되지는 말아야겠다"라며 스스로 마음을 다 잡는 경우가 있다. 혐오와 분노 그리고 회피의 줄타기에서 그런 사람을 보노라면 근처에도 가기 싫은 경우가 있다.
거울치료는 타자를 통해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며 반면교사는 타자를 통해 나의 개선점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굉장히 스스로 객관화를 잘한다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조차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누가 직언을 해주지 않는 이상 그들 자신의 맹점을 놓치고 착각한다. 그래서 외부와의 교류는 차선이자 동시에 차악이다. 어찌 되었든 그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 거울치료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용할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다. 나의 부족한 점을 몸소 체험해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국 또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부정해서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반동적으로 상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막 나가는 경우가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움직이는 거울들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고인 생각도 썩기 마련이다. 가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은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감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가 짚지 않았던 어떤 부분에서 결합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대단히 재미있는 활동이기도 하다. 참 신기하게도 쓸데없다 느끼던 생각이 돌아와서 내 마음에 노크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