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사백 오십 칠 번째
시사 이슈를 살펴보다가, 당선된 트럼프를 임기 동안 안 볼 생각으로 마련된 크루즈 여행 패키지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반대쪽을 지지했던 열성 지지자들은 억장이 무너지다 못해 벌써부터 인사 영역에 오르내리는 명단이 살벌해서 듣기만 해도 피로해 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트럼프 세상에서 벗어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속세를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자들은 언제나 지옥을 선사한다라는 문구를 우연히 보았다. 상당히 공감 가는 문구였다. 시간 속 사건들의 사이클을 보노라면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힘 빡주고 들어갔다 난장판이 되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거기서 기대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온갖 변수를 무릎쓰다 못해 어느새 통제 불가능의 그 무엇이 되어버리고 여기저기 상처를 주게 되고 받게 된다.
최선을 주장하는 자들은 최악을 선사한다. 극과 극은 통할 수 있다는 말도 되고, 역사를 보노라면 정과 반의 대치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열릴리라 희망들을 선사하지만 막상 권좌에 앉고 보니 예전은 천국이었을 정도로 최악을 만드는 경우를 보면 최선은 곧 최악일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중도라는 개념이 더욱 중요한 것일 지도 모르고 뭐든 적당히라는 게 제일 힘든 영역인 것 같다.
항상 보다 더 나은 것을 보장하는(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이 대중을 움직이고 대중은 그에게 힘을 수여한다. 하지만 더 나은 것을 보장하는 것은 그 전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다시 예전 것으로 회귀하거나 그 전전의 무언가를 되돌리는 경우가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그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누군가는 이를 "선동한다" 여기지만 오히려 "선동한다" 주장하는 사람이 더 최악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피로감은 더더욱 상당해지고 판단력도 흐려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시사 평론가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과 차악에서 골라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에 스스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아마 이런 흐름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어떤 정치 혹은 사회분야를 떠나서 인간사의 모든 것이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며 그 안에서 서로 간의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이익의 충돌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과 같은 방법이 없음에도 누군가는 그런 주장을 하곤 한다.
작금의 문제해결을 깔끔히 해결해 준다는데 당연히 눈과 귀가 쏠리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너무 이상적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현실성이 없는 약속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대인간의 관계에서도 여행을 간다는 공동의 목표아래 모였지만 어떤 것을 이야기하다 잠깐이라도 차이가 발생하는 순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가는 내내 입이 삐죽 나온 채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현실은 차선이고 차악이다. 차선과 차악 중에 이 둘을 배제하고 최선만을 도출하려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침묵하는 다수 중 하나로써 생각해보건대 "나는 그렇지 않다" 혹은 "나는 최선이다"라고 대놓고 말만 안 하지 어느 분야에서든 드러나는 것 같고, 거기에 따르는 결과물들이 항상 신통치 않다는 점에서 이런 아무 말 대잔치를 써본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15권이 끝났습니다 16권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