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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Oct 23. 2023

완벽주의 전쟁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66

벽돌시리즈 육십 육 번째

들어가기 전 61번째와 65번째 글까지는 오늘 연재 브런치북 공지글을 보고난 후 묶어서 발행하고자 했지만 이미 발행된 글은 안된다고 해서 기존 브런치북처럼 나중에 100번째 글 쓸 때 묶어서 발행해야겠다. 그래서 지금은 66번째부터 연재 브런치북을 시작해 본다.

내 일상의 적은 언제나 완벽주의였다. 100%가 아니면 죽음을! 그런데, 그게 선택적 완벽주의라서 내가 바라거나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은 것만 완벽해야 하고 내가 힘들거나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내 안일하게 하거나 내킬 때만 했다. 20대 초반 정신과를 가보니 강박장애, 불안장애가 있었다. 항상 불안하고 항상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습관이 있어서 진짜 손이 문드러질 때까지 손을 닦는 강박장애 환자까진 아니어도 언제나 재차 확인하려는 증상이 있었다.


지금까지 써온 글들로 비추어볼 때 나의 생각들이 어느 정도 잡히고 스스럼없이 타이핑하다 느낀 점 중 하나가 강박적 증상들이 이제는 "완벽"하진 않더라도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문장에 매달려 쓸데없이 계속 지우고 쓰던 습관들도 사라졌고 화면을 다시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고 이게 맞는지 하는 증상들을 여러분은 과연 이해하실지 모르겠다. 그런 불안한 나의 모습이 몇 년 전만 해도 그랬다는 것과 치료받고 스스로를 셀프케어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를 보노라면 꽤나 내적으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도 이거지만, 최종보스는 미루기였다. 무언가를 하거나 계획한 것이 있으면 매번 미루는 것. 부모님이 어떤 걸 하라고 내게 말하면 잔소리라 생각하고 나중에 하겠다고 미뤘던 점. 종착지를 알면서도 미룰 수밖에 없던 강박적인 모습을 과연 여러분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퍼펙트를 추구하는 자신을 떠올리는가? 미루기와 완벽주의는 쌍둥이다. 완벽을 추구하기에 미루고 미루기 때문에 완벽에 매달린다.


언뜻 이해 안 갈 수 있다. "완벽하려면 얼른 해버리고 점검하고 또 수정해 나가고 그러는 거 아냐?" 아니다. 완벽주의는 사실 굉장히 해롭다. 그런 표현은 사실 개선에 가까운 것이고 완벽의 영역이란 디테일과 거리가 멀다. 연습이나 개선은 완벽을 추구하는 행위로 떠올릴 순 있으나, 현실의 완벽은 강박과 불안의 콜라보다. 그리고 마냥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는 것이 끊임없는 연습과 개선은 어찌 보면 일정 부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에 기초한 것도 맞다.


자의든 타의든 정해놓은 기준, 그리고 계획, 조건, 상태, 목표, 바라는 점, 과제 등등 완벽은 곳곳에 숨어져 있다. 어느새 나도 바라고 너도 바라고 모두가 바라는 완벽의 포장된 모습을 보노라면 기가 막히다. 유토피아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이라면 완벽도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개인적 환경을 말한다. 사회생활하면서 완벽주의적인 사람을 만나보거나 협력할 일이 있었다면 좋은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거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했다면 정말 좋은 사람이거나, 아무렇지 않겠지만 되레 다른 이에게 불가능한 조건 혹은 타협할 수 없는 조건, 아니면 그냥 넘어가도 될 일에 대해 매달리고 집착하는 것을 보면 있던 정도 떨어진다.


20살이 막 들어갔을 무렵, 나는 얼마 안 되는 지인들에게 컴퓨터 다운로드의 퍼센트를 비유로 들며 완벽의 중요성을 어필하기도 했다. 99%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100%가 되어야 설치가 되고 실행이 된다. 아무리 해봤자 100%가 안 되면 의미가 없다 등으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들 공감해 줘서 허세만 든 채 나의 사상을 자랑하고 다녔던 것 같다. 이제는 내 의견에 논박해 보자면 99%를 채우는 그 1%를 중요히 여기지 않으면서 100프로 자시고 떠든다면 완벽은 개나 주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세상만사가 다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대부분이고 우리의 모든 과업은 결국 사람손으로 해내는 일이다. 떠올려보자. 우리의 공부, 과제, 업무 기타 등등 사람이 평가하고 면접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상 대부분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이고 사람이 펼쳐놓은 이 도시에 우리는 일자리를 구하고 공부하며 일을 한다. 대부분의 목표는 결국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일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어쩌면 진실은 자격증 시험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그냥저냥 70점만 넘기면 딸 수 있듯이. 물론 그것조차 힘든 점도 맞지만.


어떤 기준을 마련하고 그것에 따라 서열화하고 구분하고 나누는 작업도 결국 완벽과 거리가 멀다. 기준에 가까운 근사치를 측정하는 것뿐이지 완벽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 경쟁이라는 것도 누군가를 제치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절대적인 조건은 방향을 제시할 뿐 이루어낼수 있는 그 자체 무언가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시험이든 고용시장이든 뭐든 간에. 100%에게는 99.9999999%도 완벽은 아니다.


하지만 또 지금의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예전의 글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어리석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 지금 그 자체로 집중하고 만족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 삶에서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대해 바라며 그것을 열불 나게 달성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을 밀착취재하고 인터뷰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정말 행복하다면 다행이다. 외적으로 남들의 칭찬과 존경 때문에 계속 그러는지 나도 모른다. 그것 나름대로 행복이라면 행복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또한 자기 만족에 속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완벽주의를 싫어하는 완벽주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런 잔상은 가끔씩 비추니까. 완벽한 타이밍과 백설공주 같은 그녀가 나타나고 완벽한 때에 완벽하게 실행하는 나를 오매불망 망부석처럼 기다렸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말라죽었을게 틀림없다. 그래서 작심삼일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는 지금 그나마 효과적인 깨달음은 적어도 시작하려는 시점에선 완벽한 시간과 환경 그리고 태도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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