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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Oct 24. 2023

뻔한 교훈을 상기하며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67

벽돌시리즈 육십 칠 번째

날씨가 춥다. 빨간 내.. 아니 내복 꺼내 입어야겠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면 온 세상이 하얀색으로 물들고 다들 패딩으로 온몸을 감싼 채 활동을 한다. 길거리에선 나무들 죽지 마라고 돌돌 천을 씌워 따숩게 해주는 것을 보면 귀엽다. 그 푸르고 풍성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을 보다가 어느새 앙상한 가지와 뼈만 있는 듯한 나무의 모습에 몸도 춥고 마음도 추워진다. 가끔은 모든 사람이 나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의 사진처럼 예전에 이케아에 샀던 나무 관절인형이 보인다. 관절을 요리 저리 꺾어 현진영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댄스머신처럼 만들어보기도 하고 아니면 위풍당당한 모습을 뽐내며 장식해보기도 했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도 모습이지만 문득 내면적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 계발서와 실용서적들이 너무나도 많이 이야기했지만 내가 느낀 점을 토대로 생각 그리고 태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생각, 신념 그리고 태도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거 배우려고 대학원 들어온 학생이다. 생각에 대한 생각, 신념에 대한 신념들이 많이 소개가 되고 삶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제시하는 교훈들이 워낙 넘치다 보니 가끔은 맞는 말 같으면서도 결이 다르거나 혹은 아예 터무니없는 생각을 진리인양 제시하고 있어 나는 관심이 가기에 분별하는 능력이 쬐에끔 있을지 모르나 이걸 모르고 접근하는 초입자들은 신봉하는 경우가 있어 사실 그것에 대해 코멘트하기가 조심스럽다. 그걸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그것이 침해받는다 생각하면 굉장히 불쾌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니까.


다만 누가 누가에게 훈수라고 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말하자면 삶에서 태도라고 말하는 생각들은 일상과 삶 그리고 언행의 관제탑이자 지휘 시스템이다. 많은 현자들이 말하듯 태도나 생각이 우리 삶에서 가져다주는 부분이 엄청나기에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워낙 많은 교훈들이 있다 보니 생각 그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오히려 망각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교훈 챙기느라 정작 자기 생각을 점검 못하는 경우처럼.


간단히 표현하자면 생각 그리고 신념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의 통로다. 통로에 들어가게 되면 그 이상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 나갈 뿐이다. 그래서 신념이 아집이 되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라 보이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만이 진리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틀렸음을 인지해야 할 수도 아니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거나 남의 것을 수용해야 하기에 굉장히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다.


가끔 신념이라 말하면 신앙, 종교를 떠오르기도 하는데 자기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인식하지 못한 채 그게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사실상 신념이라 봐도 무방하다. 무신교라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는 표현도 신념 중의 하나인 것처럼. 철수는 남자다도 어떻게 보면 신념일 수 있다. 철학적으로 들어간다면 어떤 분파는 사실 신념이 곧 진리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여하튼 그렇다.


나는 오늘 나의 글에서 여러분이 생각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셨으면 좋겠거니 싶어 글을 써본다. 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 커피 한잔 들고 새벽까지 이거에 대해 떠들고 싶지만, 어머! 쟤는 뭔데 입만 살아서 저러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 점잖은 척(?) 글로 표현한다. 생각을 관점으로 표현하거나 태도라고 하는 것 다 똑같은 말이니, 생각을 동일하게 반복하여 어느새 습관이 된다면 그것이 곧 신념이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 생각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어려움 혹은 상처를 받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것은 맞다. 예를 들어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 당신을 계속 지켜본다면 어떻게 생각하실 건가? 나는 아무래도 불편할지도 모르고 변태인가 하기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선을 즐기며 "내가 오늘 잘 차려입고 나와서 그러나?" 할지도 모른다. 또 "내가 옷에 아니면 얼굴에 뭐가 묻었나"하고 창피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동일한 상황에서 반응은 각자 다르다. 사실 이 부분이 행동주의 심리학을 논파했던 인지주의 심리학의 골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동일한 인풋, 상황이 부여되면 같은 결과값이 나와야 하는데 왜 누군가는 다르게 반응을 하는 것인가? 그래서 생각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리고 생각에 따라 결괏값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생각에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고 특정생각이나 선호하는 생각을 우리는 키워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그것도 나뉘겠지만 결국 본인이 어떤 의미를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생각의 우선순위는 바뀔 수밖에 없다. 다만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느니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느니 가끔 종교와 영성 혹은 채널링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미국 신사고 운동" 서적들을 독후감 혹은 극찬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 의견에 당해보기도 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다. 가끔 양자역학도 나오는데... 여튼 그걸 생각이라고 한다면 어후..여튼 나는 아니다.


내가 예전글에서 개인주의 혹은 실존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점에서 내 생각이 삶에서 우선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나의 생각이 발현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키워나가야 하는데 이 과정이 힘들기에 우리는 일생에 걸쳐 단련하고 단련해야 한다. 다만 이 또한 정답은 아닌 게 나의 생각이 누군가 해를 끼치거나 아집이 된다면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건 어찌 됐든 과정 중의 이벤트이기 때문에 사실 먼저 해야 할 점은 자기의 기둥인 생각을 점검해야 한다. 생각이 없는 것도 정답이라 말한다면 그렇게 또한 결국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본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생각은 내비게이션이자 방향이며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체험하게 하는 지휘자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수많은 교훈들 중에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자기를 위한 시작은 생각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목표나 꿈에 대한 접근이나 사업이나 투자에 관한 정보나 아니면 운동과 건강에 대한 교훈들도 결국 내 생각에서 비롯되어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나는 가장 원인 중의 원인부터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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