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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Oct 27. 2023

비관을 비관하다.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70

벽돌시리즈 칠십 번째

어머머 세상에... 이전 글들이 하도 무거워서 누가 보면 내가 침울하고 책상에서 주야장천 생각만 하는 외톨이인줄 알겠다. 분위기를 환기해야겠다. 내가 실존주의자니 뭐니 모임에서도 이야기를 하며, 내게 희망을 안겨준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내용의 무거운 분위기와 부정적인 시선이 때론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침울하거나 혹은 현실적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 그 자체를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역시 관점의 차이들이 다양하다.


그런데 나만큼 텐션 높은 사람은 없을 거다. 가끔 누군가 술도 안 좋아하고 안 먹으면서 무슨 놈의 텐션이 그리 높냐고 하시기도 하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웃기고 재밌는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세미나에서 내 의견을 개진할 때 나는 익살스럽게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글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지나가다 읽으시는 누군가는 내가 굉장히 음울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 수 있고 그리고 내 의도는 완전히 반대이기에 지금의 글을 한 번 써본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하도 역경을 많이 겪다 보니 우울증에 걸렸던 것으로 유추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그가 울지 않으려고 웃는다는 식으로 말했던 글을 보았는데 나 역시도 비슷한 맥락이다. 힘들지만 현실을 직시하려 하고 희망을 추구한다. 그리고 현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다들 다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느껴지긴 하다. 하지만 또한 일부이며 현실의 또 다른 부분들은 다채롭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리고 희망적이다. 그래서 롤러코스터처럼 스펙터클하다.


마냥 근거가 부실한 긍정적인 교훈을 주는, 노력을 강조하는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찡찡 울고 현실이 개차반이라고 피곤에 찌든듯한 글도 싫어한다. 실존주의적 관점은 불편하고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극복하고 나의 행복을 찾고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상인 듯하다. 긍정심리학도 긍정적인 사고관이나 감정에 대해 연구하며 거기에 중요성을 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어왔고, 그들의 도전은 훌륭하다. 다만 긍정심리 자체도 통합적인 감정과 사고의 장단점 혹은 필요성을 간과하는 경우도 있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확실함을 좋아하기에, 결국 여러 관점 중 하나를 택한다.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로 중립인 사람들에게 회색분자 혹은 박쥐라고 욕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현실의 진실은 단편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는 것 같으며 나는 최소한 내 삶에서의 현실은 결국 여러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고 다채롭다 생각하기에 관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때론 낙관을 주장하며 비관하기도 하고 비관을 주장하며 낙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불쾌를 싫어하고 쾌를 원하기에 낙관적인 방향으로 나가려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행복을 추구하고 기쁨을 원하고 희망도 바란다. 그리고 관점을 나도 모르게 선택한다면 그것을 따르려는 편향성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에 보이는 것만 보인다. 일상에서 다들 경험할 것이다. 한 생각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한번 우울하면 계속 우울하고, 한번 기쁘면 계속 기쁘려고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속에 퍼진 과도한 긍정주의와 노력찬가를 비판하는 책들도 많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도 타당하다.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하는 새로운 노예시스템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교묘히 포장한 제국주의적 프로파간다라는 점도 이해가 간다. 다만 노력이나 개인의 의지에 대한 끝없는 비판은 어느 정도 피드백으로서 균형을 맞추기에만 필요하며 비관적인 전망 또한 개선을 위해 반영한 것, 딱 거기까지만 용납해야 한다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자기 계발서들이 떠드는 긍정적 사고, 근거 없는 희망과 낙관 등을 진리로 포장하는 주장 또한 경계해야 하는 참 여러모로 골치 아픈 저울 맞추기지만 어떡하나. 현실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속해있는 걸.

그래서 심리학은 슬프거나 기쁘거나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생각과 감정들 모두 인간이 환경에 속한 동물로써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마련된 것이라 양자 모두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기쁨과 재미만을 생각하고 항상 밝으려는, 자기가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는 "쟤는 항상 밝고 건강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속은 썩어있을 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 또한 본인 기준대로 세워놓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이기에 분명 수많은 세상의 변수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비판과 피드백을 용납하지 않는 또 다른 옹졸한 관점이 될 수 있기에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도 어떤 부분을 외면하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다 불완전하다.


그냥 뭐 슬플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는 거지. 그래서 표현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취미나 행위적으로 승화하는 것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극복이자 성장의 발판이 되기 때문에 아픈 감정을 담아두지 말고 내뱉고 충분히 울고, 웃고 떠들며 춤도 추고 한바탕 놀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다운 맛이 느껴진다. 기쁨을 알기에 슬픔에 공감하고 슬픔을 알기에 기쁨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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