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2화

12화 / 1장 불씨 운반자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2화 / 1장 불씨 운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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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운반자인 네이즈는 처음 찾아와보는 크리네스 4세의 거처를 이리저리 살피며 따라 걷고 있었다.

뒤따라 오며 자기 집 실내를 구경하는 것에 눈치 챈 크리네스 4세가 말했다.

"아보테에서는 여기를 궁전이라 지칭하는 모양인데, 여긴 왕국이 아니고 자유민이 사는 곳일뿐이지요"

그게 그거라며 대꾸하고 싶었던 네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풍스러운 목조 저택 안을 걷고 있었다.

응접실 입구에는 경비병 두 명이 나란히 좌우로 서 있었다.


네이즈와 일행들이 착용한 갑주 및 무기들과 비교해서 이들 크리네스 경비병들의 무장은 나사가 하나씩 빠진 모양새였다. 이들은 원시적인 수준의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내색하지 않은 채 그들을 지나간 네이즈와 호위대장은 족장의 응접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화로에서는 불이 환히 타고 있었다. 상쾌한 향내가 실내 공기에 떠도는 것 같았다. 한 번 피우면 말 한 마리 값은 그냥 나간다는 향초인지 뭔지, 척박하고 삭막한 환경의 크리넬에게서는 흔치 않은 사치스러움이었다.


매끈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앉았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크리네스 4세는 으레 그랬듯 그들의 노고에 감사해 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보테의 하염없는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네이즈는 크리네스 4세 옆에 앉은 아르한을 언급하면서 이에 화답했다.

"아드님께서도 크리넬을 이끄시며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데 큰 일을 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네이즈의 언급에 아르한은 입을 지켰다. 대신 장로가 답했다.

"아들과 저, 그리고 우리 부족은 각자 맡은 바를 다 하고 있을 뿐입니다."

호위대장의 갑옷과 투구에 치열한 상흔이 남겨진 것을 곁눈질 하는 아르한을 네이즈가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담소를 나누다가 그는 핏빛 늑대의 야습으로 병사들을 잃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앞에 앉아있는 호위대장의 갑옷의 상처를 대놓고 손으로 짚으며 당시 상황을 자조섞인 한탄을 섞어가며 표현했다. 크리네스 4세는 여기까지 오게 되면서 부하들을 잃은 이야기를 꺼낸 의도에 대해 머릿 속 한 켠에서 의심하고 있었다. 자기들의 허름한 복장을 변명하려는 모양새인가? 아니면 규모가 작아보이는 것을 미리 말해주고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양새인가?


네이즈의 지나간 소동 이야기가 끝나자 장로가 쥐어짠 위로의 표현을 꺼냈다.

"아보께서 도우셨군요. 큰일 날 뻔 하셨습니다. 사망한 전우들에 대해선 유감입니다. 아보께서 돌보실 겁니다."

네이즈는 답을 듣고 난 후 만족 한 모양인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자! 어쨋든 오늘 이곳에 요청하신 이그네움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랫동안 따스히 족장님의 나라가 보호되었으면 합니다. 광장에 들어오기 까지 많은 백성들이 저희를 환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국왕께 바칠 소중한 공물들도 보았구요"

이제 청구서를 들이밀 때가 왔음을 예감한 크리네스 4세는 항상 이때 만큼은 긴장감이 표정에서 보였고 이전의 불씨 운반자들처럼 네이즈도 이 순간 만큼은 즐기면서 시간을 끄는 것만 같았다.


한편 북적이는 광장에선 로이딘과 시테온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수여식이 시작되면 모두가 일어서서 저 높은 연단위에 불을 수여받는 족장과 불씨 운반자를 보게 될 것이며 불씨 운반자의 연설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그네움의 축복을 배분 받게 될 것이였다. 뿐만 아니라 로이딘은 기대하고 있었다.

불씨 운반자가 연설을 하면서 도중에 열광을 하는 사람들 중 몇 사람을 즉흥으로 지목해서 이그네움 조각을 선물로 주는 막간의 이벤트가 있었다. 받는 이는 당분간 등 따숩게 잘 수 있게 되는, 불씨 운반자의 넓은 아량이자 한편의 쇼였다. 목청 터지게 외치면 조각을 받게 된다. 시테온도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는 불씨 운반자가 입성했을 때부터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로이딘을 말리며 조언했다.

"야야 힘 아껴. 질러야 할 때는 따로 있는데 벌써 부터 흥분하지 말자고"

머쓱한 로이딘과 끌고가는 시테온은 같은 목표를 노리고 있는 루네를 보게 되었고 이제 루네는 그들을 향해 바라보면서 자신의 손으로 목을 쓰다듬으며 자신감을 표했다. 그들은 그녀의 당당함에 웃음이 절로 낫다.


"쟤는 언제 벌써 저기 도착했대?"

"하긴 저러니 숲에서 날아다니지"

루네에 대한 경이로운 뒷담화를 하고 있는 도중 저 너머로 군중의 소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환호소리가 다시 터져나왔다. 네이즈가 족장의 거처에서 나오며 뒤이어 호위대장과 크리네스 부자도 나왔다.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서 감각이 잠시 상실되었지만 크리네스 부자의 어두운 표정이 눈에 띄게 잘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평소에는 억지 미소라도 잘 짓는 크리네스 장로가 왜 그렇지? 로이딘은 궁금했다.


반면 네이즈의 표정은 미소로 가득했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선한 표정의 불씨 운반자에 다들 환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걸음을 잠시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 정중앙, 사람 높이만한 나무로 만든 연단에 올라섰다. 주변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몰려와 일어선 채 신성한 의식을 생생한 두 눈으로 목격할 참이었다. 호위대장은 연단 아래에서 대기하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그는 부하 몇 명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양새였다. 한편 크리네스 부자와 불씨 운반자 3명만이 연단 위에 올라간 채 사람들을 보며 손을 들고 호응했다. 그제서야 크리네스 부자는 억지미소를 지어가며 의식을 축하하는 박수를 쳤다.


고귀한 불, 영원한 불. 마침내 이그네움을 묻힌 불씨 운반자의 횃불이 맹렬히 타올랐다. 일행 중 한명인 아보의 사제가 조심스레 횃불을 붙잡아 올라오고 있었다. 그 또한 갑옷을 입었다가 벗은 채로 사제의 복장으로 네이즈에게 다가갔다. 네이즈는 두 손을 치켜 들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기도를 하고 사제가 든 자신의 횃불을 공손히 넘겨 받았다. 이제 크리네스의 차례였다. 흰 옷을 입은 부자는 공손히 두손을 모은 채 횃불을 기다렸고 네이즈는 큰 소리로 선포했다.

"아보의 축복으로 그대들에게 고귀한 불을 선사하노니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아보를 찬양할지어다!"

이때 마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외치는 소리에 놀란 모양인지 지붕에 앉아있는 새들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아보를 찬양할지어다!"

네이즈는 족장에게 횃불을 넘겼고 족장은 두 손으로 받들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박수를 쳤다. 우레와 같은 소리와 상관없이 족장은 무표정으로 앞에 놓인 장식용 화로에 불을 붙였다. 아르한은 지근거리에서 불씨를 옮겨받는 과정 중에 일어난 실수나 불씨가 제대로 옮겨 붙질 않는 것을 대처하는 역할이였다. 그는 아무런 문제없이 수여식이 진행됨에 안도의 큰 숨을 들이 마쉬며 다시 내쉬었다. 찰나의 순간, 커다란 불길이 솟으며 이그네움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의 수여식은 끝났지만 열광은 계속되고 있었다. 뜨거운 불을 곁에 두고 네이즈가 마무리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아보의 자식들이요! 축복받은 신민들이요. 멀리서도 그대들의 성실함이 눈에 보이니 아보께서 오늘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심이 분명합니다!"

본격적으로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는 그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네이즈의 눈에 띄기 위해서.

"여기 크리넬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지만 정말 놀랍고도 친근한 곳인 것 같습니다. 이 풍성하고 아름다웠던 대지가 어느새 추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하지만 우리 왕국을 향한 지지와 사랑에 대한 여러분들의 마음만큼은 변치 않는 듯 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강인함은 어딜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와 일행을 환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을 대표하신 족장님과 아드님을 만나면서 방금 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의식도 오늘 성황리에 무사히 마무리 된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아마도 로이딘과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며 박수치고 있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바친 소중한 공물들, 뿐 만 아니라 크리네스 마을과 대표로 참석한 각 부족의 사람들이 오늘 한 데 모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 부족이 바친 공물들은 아마 피와 땀으로 바쳐진 것이겠지요! 그래서 그런 정성을 마음으로만 간직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애정과 충성은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방문에선, 우리 불씨 운반자 일행은 바쳐진 공물의 반만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 소릴 듣자 갑자기 군데 군데에서 다른 부족에서 대표로 찾아온 사람들이 로이딘 못지않게 환호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질 수는 없었다. 경쟁자들이 계속 많아지고 있었지만 목이 쉬더라도 이그네움 조각을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서라면!


"다만!"

외침과 함께 순간 침묵을 지키는 네이즈 때문에 갑자기 환호성이 점차 잦아들었다. 네이즈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때 크리네스 4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곧 이어질 발언을 기다렸다. 아르한은 입을 꾹 다물고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위해 잠시 같이 동행 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 일은 아보의 영광을 위해서요, 영원한 추위에 맞서 고귀한 결과를 내기 위한 사업의 일환입니다!"

사람들? 갑자기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이 얼어 붙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던 대중들도 당황하기 시작했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네이즈는 그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바로 말을 이어 붙였다.

"그래서 나는 방금 전 열광하던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분명 아보께 헌신할 사람들이 분명하겠지요! 그래서 당신들이 필요합니다! 당신! 그리고 당신!..." 네이즈는 방금 전 누구보다 열렬히 환호성을 외치던 사람들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로이딘을 지목했다. 그리고 시테온과 루네도 함께.


13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목요일도 연재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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