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0화

1장 불씨 운반자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화 / 1장 불씨 운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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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즈와 일행은 여명이 밝아오자 다시 말 안장 위로 올랐다. 어젯 밤의 소동은 여기저기 찢긴 마차의 덮개 천과 입고 있는 손상된 갑옷들이 그 흔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충격적일만큼 입에서 피를 끓이며 으르렁 거리다 도망친 핏빛 늑대의 모습도 모두에게 선명한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이제 남은 하룻 동안 달리고 달리면 얼추 다음 날 점심 전에 시간 맞춰 도착할 듯 싶었다. 중간 중간 쉬면서 네이즈는 임무에 비워지게 된 6명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했다. 본부를 거치자마자 6명을 잃은 사건은 분명 책임을 물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핏빛 늑대가 공격 해온 사실은 모두가 증언하면 그나마 일단락 될 일이긴 하다. 호위대장도 이런 일은 흔치 않다며 네이즈 옆에 말을 붙이며 마치 적어도 자신만은 무고한 사람이라고 변호하는 것 마냥 주절거리고 있었다.


혹시나 돌아가는 길에 또 다시 야습을 당한다면 그때는 모두가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수여식을 마치고 나면 크리넬이 준비한 공물을 실은 마차와 목적지까지 보호할 그들의 경비병들이 합류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선두에는 네이즈의 일행 중 호위 부대장과 몇 사람이 따로 떨어져 나와 그들을 인도할 예정이었다. 예전부터 돌아오는 길에는 연이은 마차행렬이 본부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시간도 너무 걸리고 느리다 보니 불씨 운반자 일행이 먼저 따로 이동을 하곤 했다. 그들이 보고하고 잠시 휴식을 취할 때쯤에 공물 마차들이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였으나 지금 처한 상황으로 보기엔 6명을 잃은 상태에서 분리 시키면 네이즈를 보호할 인원이 더욱 줄어 들게 된다.


그래서 공물 마차의 경비병들 중에 몇 명을 잠시 빌려와서 이동하자는 게 호위대장이 생각한 방안이다. 하지만 문제는 네이즈가 본부를 먼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빌려온 경비병들은 남의 나라 병사들인데 그들에게 행선지가 유출될 게 뻔했고 함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원이 적은 네이즈 일행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할 지 몰라 고민이었다. 결국 위험하더라도 시야를 내줄 순 없었다. 경비병을 빌려 오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고민을 어느 정도 봉합 하고 목을 축인 후에 다시 말을 이끌었다.


반면 크리네스 마을은 또 다른 하루가 닥쳐오면서 손님을 맞이 할 마지막 준비를 끝마쳤다. 곧 당도할 네이즈라는 불씨 운반자 일행이 크리넬을 대표할 크리네스 마을에 얼굴을 비추면 성대한 만찬을 함께 할 것이다. 삐쩍 마른 동토에서 간신히 찾아 사냥한 멧돼지 한 마리, 겨울에도 자라는 겨울 수수와 극히 희귀한 꿀 몇 스푼을 넣은 스프. 남부 사유타에서 잡아 올린 훈제 연어 등이 그들의 배를 채울 것이다. 이그네움이라는 고체 기름 하나 때문에 모두의 등골이 빠지고 있었다.


저녁의 화로에서 장작불이 불타고 있었다. 로이딘과 나무꾼 동료들도 행사의 설렘인지 긴장인지 쉽게 잠을 청하고 있지 않았다. 숙소에는 로이딘과 3명의 동료가 살고 있었다. 영원한 추위가 오기전에는 모두 다 각자의 집이 있었고 각자의 집기와 가구들이 있었다. 허나 그건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고 한 순간에 누군가의 장작불을 위해 부수어지고 해체되었다. 처음에는 로이딘이 항의도 하고 울먹이기도 했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서 쌩판 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도 같은 일 혹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묶여 지내게 되었는데 이는 장로가 마을 전체에 내린 지시였다. 고집은 세지만 귀족이든 하층민이든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했던 장로가 한 순간에 잔인 할 정도로 돌변한 것은 언제나 공동체의 존속 때문이었다. 이유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로이딘은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처음 같이 살게되었던 나무꾼 동료들과는 어색했고 시간이 갈 수록 사이도 좋지 않음을 느껴서 그 무리에 끼기에 대단히 난감했다. 내성적인 성향을 가진 로이딘에게 처음 마주친, 자기들끼리 뭉쳐다니던 사람들과 몇 개월 동안 살아본 경험은 참으로 끔찍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동료들로 바뀌면서 무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시테온과 루네도 각각 다른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거주지 구역은 남녀가 분리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남녀 혼숙은 독립된 가정을 꾸려갈 때나 가능했다. 수여식 하루 전의 마지막 밤에 로이딘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 둘씩 나무꾼 동료들을 먼저 재우고 장작을 넣고 불을 되살린 후에야 눈을 붙였다. 자기 자신은 손에 아무것도 쥔 게 없이 내려온 피난민 가정 중 하나였다.


그때 당시는 빛만이 떨어지던 백야의 시간대였으므로 피난민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달리 상대적으로 좋았고 이웃들의 나눔과 배려도 느낄 수가 있었다. 차별없이 대해주는 크리네스 4세에게 감사함을 느꼈으나 가끔은 냉혹할 정도로 결정을 내리는 그에게 차가운 모습을 과거에도 보곤 했다. 부모님은 장로의 결정에 상처를 자주 받았고 없는 살림에 무엇이든 해나가면서 마을에 기여해야 했다. 아버지는 유일하게 남은 도끼 한 자루를 가지고 나무를 베러 다녔다. 도끼 한 자루에 달린 가장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고 어머니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신심이 깊어 집 한켠에서 혼자 조용히 기도를 드리곤 했다. 어린 시절 그런 행동이 궁금한 로이딘에게 어머니는 네 마음의 문이 열릴 때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그 마음의 문이란 로이딘에게 낯선 것이였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영원한 추위란 비극이 찾아오고 일말의 따스함은 마을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피난민 행렬이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며 자신의 집과 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무력사태도 일어났고, 피난민들은 아쉬울 땐 약자의 모습을 보이다가 공격적으로 원주민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두 집단간에 물과 기름처럼 갈등이 계속 되어갔으나 그럼에도 장로의 현명한 결정으로 봉합되거나 강제적으로 사건들이 일단락 되기도 했다.


로이딘의 부모님이 기력이 약해져 차례대로 세상을 떠나면서 20대의 중반의 홀로 남은 빅혼은 냉정하고도 따뜻한 양가적인 모습을 가진 크리네스 마을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다. 다른 곳은 더욱 혹독할 것이란 부모님의 말을 새겨 들었던 것도 컸다. 10대 초반에 글자를 배웠던 로이딘은 정착한 크리네스 마을에서도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장로의 결정과 마을의 수요는 그렇지 아니했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해온 벌목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었다. 잠깐의 어린 시절이 감긴 눈에서 스쳐 지나가며 마음에 고리가 걸린 듯한 시린 감정이 생기다가 잦아들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장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좋았다. 그 따스함으로 몸도 생각도 절로 녹아내렸다.



11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토요일 연재. 소설의 진도와 열정(?)때문에 추가 연재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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