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69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4권을 시작합니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육백 구십 팔번째
비가 쏟아지는 날씨, 차 안에서 문득 왜구들이 생각이 났다. 고려나 조선이 왜 그렇게 시달렸을까? 이런 물음표가 이어지면서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봤던 국사책도 기억이 났다. 왜구 침입로가 화살표로 그려져있는데 휘날리는 깃발마냥 이리갔다 저리갔다 명나라까지 뻗어져 있었다. 그런 걸 보면서 그때 당시에도 해적 하나 못 막는 게 말이 되나? 그냥 본진 때리면 되는 거 아냐?라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왜구라는 해적 출몰 시기가 아주 적절했는지 타이밍의 문제도 합쳐졌다. 왜구 침입 붐이 일어난 것은 일본 내부적인 문제와 함께 조선과 명나라의 실책도 포함되어 있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 내부적으로 남북조 세력이 갈라져 한참 싸우고 있었고 북조에 밀리던 남조 세력 중 일부가 왜구로 업종을 변경한 것이다. 한마디로 섬에서 한참 싸우다가 밀리고 밀리다 탈출구를 찾아야 했던 왜구들은 조선과 명나라로 진출하게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해상무역에 대한 과도한 통제가 마치 금주령의 부작용처럼 밀매와 밀수가 극에 달했고, 해안선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21세기 현대에도 해안선을 접근해 특정 지점에 상륙해서 침입하거나 혹은 막는 입장 양쪽 모두 어려운 작업임을 생각하면 기나긴 해안 방어선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기란 명나라 내부적으로도 힘이 들었다. 부정부패와 왜구와 암묵적인 동맹을 맺은 중국의 군벌들도 존재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고려말과 조선초기까지의 왜구침입도 마찬가지로 전근대적인 시기에 대대적인, 빈번한 해안상륙을 막아내기란 아무리 중앙집권체제의 왕국이라하여도 막기 힘들었다. 고려는 원나라에 시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창기 내부 안정화가 시급한 조선에게 밖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아직 부족했다(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세계사만 보더라도 바다민족의 이집트와 레반트 지역의 대침공, 브리튼 섬의 이교도 대군세나 노르만족의 지중해 항해등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해안 침공으로 고생했음을 알수 있다.
본진을 쳐서 아예 기세를 꺾어놓으면 되지 않냐는 의문에는 정치적, 전략적인 판단이 들어간다. 당시 남북조 시대의 일본 그리고 일본통일 전의 열도는 중국의 군벌과 같이 각자도생의 시절이었기때문에 출처를 모르는 왜구의 침입에 어느 한 곳을 공격한다해도 완전히 해결될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책임자가 분명한 중앙집권적인 통치구조를 가진 나라에게 항의서한이나 외교적 카드 내지는 침공으로 기강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때 당시 일본은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혼란한 상황이었고 그 불똥이 옆나라들에도 튀었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