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70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칠백 이번째
극단주의가 과연 어떤 현상일까? 어떤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걸까? 극단주의가 불러오는 위험과 관련 사례에 대해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는 "자기 자신이 극단적임"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극단주의자임을 알거나 인정하는 경우는 그리 많치 않고 극단주의를 취사선택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 사실임을 믿는다.
히틀러도 스스로가 광기어린 행동을 했다 여기지 않았다. 스탈린도 인민 모두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 혹은 혁명의 일환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개별 단위로 끊어서 보면 모든 이가 자신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처음부터 전심전력으로 믿지 않았다. 괴벨스도 나치 의회장악 당시 자신의 일기에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지, 승리한 사람으로 남을 지 모른다는 투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는 괴벨스가 알면서도 찔린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도박으로 여긴건지는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괴벨스도 결국 시간이 지나자 자기 자신의 되먹임으로 나치 광신자의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전염시켰다.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그리고 정보가 통제된 아웃풋은 없고 인풋만 들어가는 시공간에 놓인 사람들은 군중심리에 빠지기 쉽고 선전선동에 당하기 훨씬 쉬워진다. 극단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폐쇄성에 있고 선악의 분별이 마치 어린 아이들 판단 같이 아주 분명하게 나뉘어 있단 점이다. 그리고 선악을 나누는 기준은 자신들이 따르는 지도자나 간부들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정치의 현장에서든 사이비종교든 간에 극좌, 극우, 선민사상 등은 솔루션이 있음을 주장하며 머리 아프게 생각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착하고 너는 나쁜 놈.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로 상대방의 주장들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서 불통의 문제가 시작되고, 불통 자체의 폐쇄적인 성향으로 사회적 욕망을 자기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함으로써 해소하며 자기네들끼리 리액션을 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마지막으로 극단주의가 불러오는 위험성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믿는 정보나 사람에 대한 무오류성으로 인해 지도자나 어떤 공유정보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 지에 따라 이들의 집단 행동 또한 극단적인 폭력 행사나 분노표출, 테러, 집단자살등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 체제의 많은 국가들이 사상적 자유를 핵심 권리라 여기고는 있어도 극단적인 조직에 대한 감시나 해산을 명령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상적 자유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는 본연의 체제를 없애버리려는 시도를 꾀함이며 이는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때 충분히 증명되었다.
[매일마다 짧은 글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 벽돌시리즈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