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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Dec 14. 2022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은?

<푸르른 날>은 내가 꼽은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푸르른 날 / 서정주 >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시인 친구가 ‘시인들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이라면서 <봄날은 간다> 가사를 단톡방에 올렸다. 노랫가락이 금방 떠오른다. 막상 가사는 낯설다. ‘연분홍 치마, 옷고름, 성황당--’ 언제 적 노래더라! 검색해보니, 계간지 ‘시인세계(2004년 봄호)’가 현역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3편씩 써 달라’고 설문을 보내 종합한 결과다. 그러니까 벌서 십수 년 전 얘기였다. 시인 친구는 옛날 뉴스를 최근 뉴스로 잘못 알고 보낸 것 같다. 


<봄날은 간다>는 압도적 1위로 선정되었다. 작사가는 <비 내리는 호남선>, <물레방아 도는 내력>으로 유명한 손로원이고, 작곡가는 박시춘, 1950년 한국전쟁 때 백설희가 불렀으니 <봄날은 간다>는 나이로 치면 70세가 넘는다. 당시 60대 초반이던 시인 천양희(千良姬; 1942년 1월 21일 생)는 이런 소감을 올린다. “귀동냥으로 배운, 태어나서 처음 부른 첫 유행가---, 친정집에 올 때마다 성황당에 들러 돌탑에 돌 몇 개 올리며 눈물을 보이던 언니가 좋아부르던 노래,--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이 대목만 부르고 나면 왠지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최근 광화문 글판에 올라온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다 / 천양희>”라는 구절이 연상되는 소감이다. 


2위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2000년대 초반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랫말이다. 드라마작가 양인자가 작사를 하고 그의 부군인 김희갑이 곡을 붙여, 조용필이 노래한다. “굶어서 얼어 죽은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있는 것은 21세기가 나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 ---” 절절하게 가슴을 울리는 랩은 헤밍웨이 작품 <킬리만자로의 눈> 첫 대목(아프리카 최고봉 '신의 집'이라 불리는 서쪽봉우리에 얼어붙은 한 마리 표범 시체, 도대체 그 높은 곳에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을 생각나게 만든다. 

만년설 킬리만자로를 찾는 한국관광객들은 '얼어죽은 한 마리 표범'을 보았을까 (이미지 출처 istockphoto.com)

대사가 너무 길어 노래방에서도 화면을 보고 따라 불러야 한다. 작곡가 김희갑도 2008년 어느 인터뷰에서 “가왕 조용필도 처음 4년여 동안 가사를 못 외워 커다란 스크린을 보고서 불렀다”라고” 회상했었다. 나로선 산문처럼 읽어 내리는 긴 대사가 노랫가락보다 더 좋았으나, 역시 외우기는 힘들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덕분에 더 외우지 않게 된다. 폰 도움 없이 끝까지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몇 개나 될까, 한두 개, 서너 개? 좋아하는 시를 첫 단어부터 끝 단어까지 그치지 않고 줄줄 낭송하는 일만큼 어렵다. 


좋아하는 노래는 참 많다. <박연폭포>, <칠갑산>, <희망가>, <고래사냥>, <푸르른 날>, <선운사>, <떠나가는 배>, <우리는>, <북한강에서>, <5.18>, <사랑은>, <없는 노래> ---.  그중 <푸르른 날>은 광주 도심 ‘푸른 길’을 걸을 때마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따라 부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 단풍 드는데 /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부른 송창식은 ‘당초 클래식 가수에게 노래를 부탁하려 했으나 여의치 못해 직접 부르게 되었다. 내가 부르길 진짜 잘한 일’이라고 회상한다. 대중 입장에서 보자면 ‘진짜 잘된 일’이다. 2016년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은 처음이다. ‘대중음악을 시로 승화시킨 공로’였다. 송창식은 시를 대중음악으로 승화시킨 한국판 밥 딜런이다. 


시에 가락이 붙으니 외우기 힘든 시 <푸르른 날>이 술술 잘 외워진다. 올해 시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을 꼽는다면 어떤 노랫말을 1위로 꼽을까?   202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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