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 김종남 Dec 08. 2022

<봄 길>읊으며 귀가하는 <축복>

유달산 바라보며 무등산막걸리 마신다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나무가 되어 나란히 서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새들이 되어 나란히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

                                    <축복 / 피천득>  






장시간 버스나 기차를 탈 땐 시가 적힌 카드를 한두 장 들고 탄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계곡과 들판, 숲과 강을 구경하면서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입속으로 암송하는 재미는 각별하다. 옆 사람에게 불편 주지 않으면서 차 타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이다. 


나무들이 나란히 서 있는 강가도 스쳐 지나간다.  “나무가 강가에 서있는 것은 /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축복>”. 이렇게  사람이 되어 차를 타고 날아가니 새가 되어 하늘을 날으는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 이게 바로 여행하는 즐거움이구나! 


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면 허전한 마음이 깊어진다.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왜 여행인가? 지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픈 욕망이다. 여행 칼럼니스트 황희연은 ‘수십 통씩 걸려오는 전화, 마감 임박, 지옥철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잠적, 실종하고픈 욕망’을 이야기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세계여행길에 나선 젊은이도 있다. 그 젊은이는 일상에 지쳐 벌인 일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열정이 넘쳐 감행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일상에서 멀리 오래 떠나는 여행은 돈과 시간을 요구한다. 남다른 열정도 필요하다. 돈, 시간, 열정---. 무엇이 최우선일까? 그러나 꼭 멀리 떠나야만 여행인가, 소시민은 가깝고 짧은 당일치기 여행도 감사하다. 열정만 있으면 된다. 두어 시간 달리던 버스가 바다 위를 날아간다. 몇 년 전만 해도 페리를 타고 갔었던 섬 고하도가 목적지다. 목포대교가 남해바다 푸른 하늘을 하얗게 뚫고 고하도와 목포를 연결한다. 


버스가 멈춘 고하도 주차장이 ‘용오름 둘레숲길’의 시작점이다. 종점인 ‘용머리’까지 2.8km, 그러니까 우리는 배낭을 메고 용꼬리에서 용몸뚱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날개를 펴고 바다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등허리를 타고 걷는 길’,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용오름 오솔길은 단장되지 않은 흙길 그대로 수북한 소나무 낙엽이 푹신푹신하다. 밟는 대로 짙은 솔 향기가 피어오른다. 


길 오른쪽은 내리막 절벽이다. 밑으로 짙푸른 바닷물이 철석거리고 띠 같은 바다 건너 유달산과 목포해양대가 그림처럼 따라온다. 두어 차례 오름과 내림을 거치자 용오름 길의 끝, 용머리다. 더 앞으로 나아갈 데가 없다. 우뚝 선 목포대교의 하얀 주탑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용머리 바위에는 오래 머물 수 없다. 댓 명이 앉을 만큼 넓지도 않다. 용머리에 잠깐 앉아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 


등허리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이번에는 유달산이 왼쪽에서 따라온다. 등허리 중간쯤 전망대 벤치에 앉자, 동행하던 젊은이들이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내놓는다. 바다 건너 유달산을 바라보며 ‘무등산 막걸리’를 마신다. 빈속이라 두 잔에 알딸딸하다. “행복하세요!” 지나치는 사람들이 말을 건넨다. 서로 행복해진다. 왕복 5.6km, 2시간 반 동안 솔 향기 가득한 바닷바람 듬뿍 마셨다. ‘용의 기운’이 승천하듯 솟는다. 


황혼 녁 귀가는 두 시간 버스 길이다.  황혼이 새벽이 되듯 겨울 길도 봄 길로 이어질 것이다. 가슴 가득 ‘용의 기운’을 마시고 '봄길' 시를 읊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  --- /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 / 정호승>”.   2015.12.31. 

이전 23화 한겨울 명사십리를 걷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