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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Oct 10. 2022

순례자가 되어본 적 있나요?

   순례길은 바다위를 걸으며 모두 순례자가 돠는 길이다

황금계단을 오르면 마치 바다위에서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우주선에 오르는 느낌이다. 8번 기쁨의 집.



 ‘12사도 길(순례의 길)’을 걸어본 적 있는가? 

  스페인 산티아고 길이 아니다.

 ‘천사의 섬, 신안’ 앞바다 작은 섬 5개(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를 갯벌에 

돌을 던져 만든 노두 길로 이어 만든 12km 길이다. 

 제주 올레길이 바다와 함께 걸으며 모두가 올레꾼이 되는 길이라면, 

신안 순례길은 바다 위를 걸으며 모두가 순례자가 되는 길이다.

 12사도의 이름을 딴 12개의 작은 예배당(건축미술작품)이 번호대로 순례자를 맞는다. 




 신안 압해도 송공항에서 오전 9시 반 페리를 타고 한 시간, 대기점도 선착장, 배에서 내리자마자 1번 ‘건강의 집(베드로)’이 등대처럼 하얗게 홀로 서서 기다리고 있다. 좁은 대문을 열면 촛대와 성경이 놓여있는 3평 남짓 작은 공간, 무릎을 꿇고 이렇게 순례길에 오를 수 있게 한 ‘건강’에 감사드린다. 올려다보이는 가느다란 창을 통해 하늘이 빛을 내린다. 예배당 곁 종탑에서 종을 울려 출발을 알리고, 2번 ‘생각의 집’으로 향한다. 


 모든 길은 목적지가 있다. ‘12사도 길’은 목적지가 12개나 된다. 목적지만 많은 게 아니다. 목적지에 닿을 때마다 숨겨놓은 보물처럼 하나씩 키워드를 안겨준다. 길을 걸으며 묵상할 주제다. 3번 집은 ‘그리움’, 4번은 ‘생명 평화’다. 세계인이 해마다 50여만 명씩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찾아 걷는 이유는 무언가. 목적지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한 달여 800km를 걸으면서 삶의 고민을 풀고 새 삶을 이끌어줄 키워드를 찾기 위함이 아닐까. 


 파울로 코엘료는 1986년, 38세 때 대회사 중역 직을 내려놓고,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다음해 <순례자>를 쓰고. 이어 1988년 <연금술사>를 써서 세계적인 대작가가 되었다. 2007년 제주 올레길을 만들어 ‘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서명숙도 그랬다. “나이 쉰에 과감히 기자 생활 때려치우고, 홀로 산티아고 길 순례에 나섰다가 그 길 위에서 문득 고향 제주를 떠올리게 된다.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 만들리라’”  


 오늘 하루, 신안 순례길을 걷는 우리는 무얼 내려놓고 여기에 왔나? 새로운 키워드와 영감을 마음에 받아들이려면 무언가 내려놓는, 마음 비우기가 먼저여야 한다. 대기점도 끝 지점은 5번 ‘행복의 집’이다. 소기점도로 건너가는 노두 길이 바닷물에 잠겨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에 잠기는 길, 세상에 이보다 더 낮은 길이 있을까. 노두길이 물 밖으로 완전히 드러나려면 썰물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목까지 잠기는 바닷물 위를 걸어본다. 맨발이 시원하다. 푸른 바다 기운이 가슴으로 차오른다. 하늘 땅 사람 (天地人), 바다까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바다 가운데 멈춰 서서 방금 떠나온 ‘행복의 집’을 돌아다본다. 신안 바다 건너 두고 온 집안 걱정과 내일에 대한 불안이 씻겨 내려간다. 바다 위를 백여 미터나 걸은 후, 들고 온 신발을 다시 신는다. 나머지 길은 발길이 가볍다. 


 모든 길은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먹고 쉬고 잠자는 집, 무덤은 죽음 후의 집이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순례자의 수호성인’ 야고보의 무덤 위에 지은 기도의 집,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신안 순례길은 호수 위에 지어진 6번 ‘감사의 집’, 노란 유채밭에 지어진 7번 ‘인연의 집’을 거쳐 밥 먹는 집, 게스트하우스에 이른다. 갯벌 위에 황금빛 계단을 올라가는 8번 ‘기쁨의 집’을 지나. 9번 ‘소원의 집’, 10번 ‘칭찬의 집’, 바람길 언덕 위 11번 ‘사랑의 집’, 마지막은 무인도 ‘딴섬’에 홀로 있는 12번 ‘지혜의 집’, 물이 빠진 갯벌을 건너간다. 


 되돌아 나와 소악도 선착장, 순례길 종점이다. 오후 4시, 송공항으로 가는 배편은 한 시간이나 남았다. 쉬어가라는 집 ‘쉬랑께’카페를 만난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곳 특산차 ‘단호박 식혜’를 마신다. 난 오늘 하루, 12사도 길을 완주한 순례자다.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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