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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Dec 16. 2022

'금발 휘날리는 어린왕자' 만난 적 있나요?

시뻘건 신사는 하루종일 죽어라하고 덧셈만 하고 있다

  “이렇게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  "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 신경림>  


 우리도 발이 부르틀 때까지 걷다보면 ‘금발 휘날리는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겠지.           

                    


문학 평론가 김현(1942~1990)이 1973년 서울대 전임강사 시절 번역한 126페이지짜리 초판본, <어린왕자 ; 문예출판사 발행>를 다시 읽는다. '철학자 최진석과 함께 한 달 한 권 읽기'가 선정한 '8월의 책'이다. “비행기 조종사 쌩 떽쥐뻬리는 35세이던 1935년, 파리에서 이집트까지 날아가다 카이로를 2백km 남겨놓고 사막에 불시착, 5일 동안 식량 식수도 없이 헤매다 베두인사람에게 구조되었다. (114쪽 ; 쌩 떽쥐뻬리 약연보).”   

   

김현은 책 뒤편 해설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쌩 떽쥐뻬리가 ‘어린 왕자’를 죽음의 위협 속에서 만났듯이, 나도 나의 ‘어린 왕자’와, 삶의 무의미가 주는 위협을 버티어내다가 만났다.--- 20대 후반, 영천 잔마루 턱, 4~5m도 되지 않는 짧은 골목을 아홉 개나 돌아서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자취를 하면서 생존의 어려움, 삶의 무의미함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어린 왕자를 만나 삶의 상당 부분을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바꿔 놀 수 있었다. (119쪽)”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겨울, 미국에 있던 쌩 떽쥐뻬리는 독일 점령 아래 고통을 받고 있는 고국 프랑스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어린왕자>를 쓴다. “--- 지금 추위와 굶주림을 겪으며 프랑스에 살고있는, 그 어른을 달래줄 필요가 있다. --- 나는 이 책을 그 어른의 어린 시절에 바치고 싶다. 어른들이란 다 한때는 어린애들이었던 것이 아닌가. (9쪽 ; 헌사)”      


 다 한때 어린애였었던 어른들은 어른이 되면서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다. 어린왕자를 만나고도 어린 마음을 찾지 못한다. 첫 번째 별에서 만난 왕은 명령만 내리느라 정신이 없다. 두 번째 별, 허영꾼은 억지박수를 요구하며 그때마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다. 세 번째 별, 술꾼은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또 그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만 마신다. 네 번째 별, 상인은 별을 세고 세느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내가 만난 어떤 별에는 시뻘건 신사 한 사람이 있어.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굴 사랑해 본 적도 없지, 그리곤 죽어라 하고 덧셈만 하고 있는 거야, 하루종일 아저씨처럼 난 진실한 사람이다. 난 진실한 사람이다, 라고 되풀이하고 있어,--- (34쪽)” 고장 난 비행기를 고치려고 기름때 묻은 손에 망치를 들고 죽을 애를 쓰고 있는 쌩 떽쥐뻬리가 ‘중요한 일이 있다’며 자기 말을 건성으로 듣자, “어린왕자는 정말 대단히 화가 났었다. 그의 금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아저씨’인 우리는 바람에 금발을 휘날리는 어린왕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시뻘건 신사’인 우리는 누굴 사랑해본 적이 있나, 별을 바라본 적이 있나? 어린왕자를 만나고도 ‘중요한 일이 있다’며 또 ‘죽어라 덧셈만 하느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니, 죽음의 위협을 받아본 적은 있었는가, 생존의 어려움, 삶의 무의미함에 빠져 본 적은 있었는가. 


“사람들이란, 특급 열차를 집어타지만, 무얼 찾아가는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초조해 가지고 빙글빙글 도는 거야 --- 하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장미꽃 하나에서도 물 조금에서도 찾아지는 건데 ---” 사막에서 찾은 우물에서 도르래로 길어 올린 물을 마시며 어린왕자는 쌩 떽쥐뻬리(1900~1944)에게 말한다. 


 사막에 떨어져 죽도록 목말라 보지 않은 사람은 숨어있는 우물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없다. 우리는 ‘무얼 찾아가는지도 모르고 특급열차를 집어타고 초조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 쉽다. 2020.08.16.

1973년 3월20일 초판본 정가 400원 <어린 왕자> ; 1973년 5월16일, 1987년3월1일, 2020년8월8일 다 읽은 날이 씌여있다. 30년 동안 3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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