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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동 김종남 Dec 09. 2022

한겨울 명사십리를 걷는 이유

파도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본 적 있는가

"겨울바다에 가는 것은

 바로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동굴 속에서 머물러 지내다가

푸른 하늘을 보러가는 것이다 

 ---- ---------------  -------------------

시린 바닷바람 가슴 가득히 마셔

나를 씻어내고 싶어 가는 것이다."   

               <겨울 바다에 가는 것은 /  양병우>




겨울 바다, 명사십리 기나긴 백사장을 걷고 싶다. 시 하나 외우며 걸으면 더 좋겠지! 집을 떠나기 전 겨울 바다 시를 골라보았다. '겨울 바다 관련 시 모음' 십여 편 중 양병우의 시 <겨울바다에 가는 것은>이 좋을 것 같다. 10행밖에 안 되는 짧은 시, 그냥 이야기하듯 쉬운 문장이어서 외우기도 쉬었다.     

   

광주에서 두 시간, 청해진 바다를 향해 칼을 높이 뻗쳐 든 장보고 장군이 멀리서 나타난다. 장보고 장군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버스는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신지대교에 올라선다. 신지대교 주차장이 '명사갯길 1코스(10km)' 시작점이다. 오른편에는 출렁이는 바다와 함께 멀찌감치 완도타워가 따라온다. 바다낚시꾼 몇 명이 독차지하고 있는 바위섬들, 절벽 밑 바닷물과 함께 걷는 벼랑 숲길이다. 물하태와 등대를 거쳐 명사십리 입구까지 이십 리, 두 시간 넘게 오솔길이 이어진다. 한 겨울 신지도 바닷바람은 시리지 않고 시원하다.     


외워왔던 <겨울바다에 가는 것은> 시구를 읊어본다. "...... 고독을 만나러...... , 자유를 느끼기 위해...... , 푸른 하늘을 보러...... , 갈매기 따라 날고 싶어...... ", 그런데, 마지막 대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린 바닷바람 가슴 가득히 마셔' 까지 잘 이어가다 꽉 막혀 버린다. 열 줄밖에 안 되는 시구 중 마지막 한 줄 인데---, ’가슴 가득 바닷바람 마시고‘ 무엇을 어쩌겠다는 말일까? 무얼 하겠다는 말일까?     


시간이 가면 자연히 떠오르겠지, 메모 해온 종이를 꺼내고 싶은 생각을 눌렀다. 벼랑길이 끝나자 시야가 확 트인다. 하얗게 빛나는 명사십리가 끝없이 눈부시다. 십리 백사장은 바다를 양쪽팔로 멀찌감치 싸안아 그 한 가운데 정오의 태양을 모셨다. 정남향 태양 아래 바다는 푸른빛이 아니라, 온통 반짝이는 금빛이다. 파도는 출렁이는 금가루 물결이다. 


찬바람 불어치는 백사장은 의외로 한적하지 않다. 방한복을 입은 걷기 꾼들이 줄을 잇는다.  백사장 뒤편 솔숲에는 ’명사 갯길‘ 데크 길이 정성 들여 만들어져 있다. 데크길은 걷지않고 바닷물이 핥아대는 모래톱에 내려선다. 모래톱은 밀어오고 밀려가는 파도물결이 만드는 뭍의 한계선이다. 땅위 길 중에서 가장 낮은 길이다!  발이 바다와 경계를 이루며 걸으니 마음도 바다처럼 너르게 펼쳐진다. 

   

쏴~아 철썩~ 촤악~ 처얼석~ 촤르륵~  바로 옆에서 듣는 파도는 멀리서 듣던 소리가 아니다. 바다가 이야기를 한다. 파도가 백사장 모래와 함께 소근거리는 이야기다. 수만 수십만 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소근거리는 파도이야기를 이렇게 차분히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메모지를 꺼내 마지막 시 구절을 읽어본다. "--- 나를 씻어내고 싶어 가는 것이다.” 나는 나를 씻어냈는가?  백사장이 끝나자 돌아갈 버스가 미리 와 대기하고 있다. 돌아가는길,  버스가 신지대교에 올라서자 장보고 장군이 '잘 돌아가라' 하늘 높이 팔을 뻗친다.               2016.01.28.     


완도 장보고 동상 (사진 출처 :month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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