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듯' 한 알의 대추에서 인생을 본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 ”
< 대추 한 알 / 장석주 >
아침, 아파트 앞길을 산책하다 대추 8알을 만났다. 초록빛 잔가지 하나에 구슬방울 같은 대추 열매가 8개나 달려있다. 간밤 소나기 돌풍에 작은 가지가 꺾인 모양이다. 아니, 여기에 대추나무가 있었나! 올려다보니 바로 머리 위에 키 큰 대추나무가 하늘 높이 가지들을 펼치고 있다. 잎사귀 사이사이에 초록빛 대추 알들이 송알송알 붙어있다.
하루 몇 번씩 지나다니면서도 이곳에 대추나무가 있는 줄 몰랐다. 머리를 들어 잠깐 올려다보았으면 알았을 터인데, 맨날 느티나무, 소나무, 수국, 철쭉만 보고 지나쳤는가 보다. 뉴턴(1642~1726)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 냈다 한다. 나는 떨어진 대추 열매를 보고 ‘물체의 가장 완전한 형태는 구(球)’라는 피타고라스의 철학적 관점을 생각해본다.
대추 열매도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 대추 한 알 / 장석주 >의 시구대로 ‘무서리 몇 밤,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삶이 키우는 인생 열매도 ‘무서리, 초승달’이 들어서면 대추처럼, 지구처럼 둥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씀대로 한 알의 대추에서 인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