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천 조각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진다. 이 천조각을 이용해 우리는 옷을 만든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현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학문이란 전체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씨실과 날실 같은 것이었다. 개별 학문을 통달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과거 학자들은 여러 학문 분야에 정통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윤리학, 논리학, 자연 철학 등 많은 학문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동시에 수학자였다.
현대 사회에 들어 분과 학문이 발달했다. 분과 학문의 발달은 전문성의 발달에 기여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학문이 존재하는 본래 목적을 잃어버렸다. 바로 세상에 대한 이해이다. 분과 학문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은 하나의 창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는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창문을 통해, 사회학자는 기능과 갈등이라는 창문을 통해, 정치학자는 권력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이 틀린 세상은 아니지만 세상 전체는 아니다. 사실, 존경받는 학자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자기 학문 너머의 학문들에 겸손하고 탐구하고 세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학교다. 학교는 학문을 가르치면서 그 학문을 통합하여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차이들에 의해 국가별 선택을 달리한다. 복지에 대한 이해는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이는 각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7가지 주제로 쓰여 있지만 각 주제가 분절적이지 않다. 민주주의나 복지 정책의 방향은 경제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역량의 격차를 만들어 낸다. 경제 정책은 반대로 정치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주의 정치는 자유 경제를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든다. 공정과 능력주의도 정치, 경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정치, 경제적 출발선상이 애초에 다른데 공정과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은페적이다. 생태 전환은 성장에 대한 욕구가 제한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문제다. 시민이 경제적 성장만을 열망하는 데 정치 권력자들이 생태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권리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진영의 대립 속에서 만들어진 권리라는 것을 배웠다. 어느 주제도 다른 주제와 무관한 것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주제와 영역 통합을 염두에 두고 썼다. 각 영역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세상의 문제가 생각보다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의 영역 안에서만 해결책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필경 이런 인식은 우리를 대화와 토론과 협력의 장으로 이끈다.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이런 깨달음을 공유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성공했으면 좋겠다. 실패라면 그것은 필자의 공부와 필력의 부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