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을 통해 살펴 본 인권의 역사
“내놔"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방으로 공간을 찢으며 교무실에 울려 퍼졌다. 교사들의 시선이 착하다고 소문난 김 고민 교사에게 향했다. 몇 명은 투명벽이 있어 소리를 못 들었다는 듯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교사들도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을 것이었다. 공간에 비해 그 소리가 너무 컸다. 사실 그 벽이란 것이 민망함의 벽이었을 것이다. 왠지 부끄러워질 것 같아 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왜요, 핸드폰은 제 것인데 왜 선생님이 내놓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단정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학생 한 명이 김 고민 교사를 쳐다보며 대꾸하고 있었다. 박인권 학생이었다. 그의 얼굴은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증과 억울함이 뒤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요, 제가 핸드폰 사용 규정을 어긴 것까지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핸드폰을 압수할 권한은 없는 것 아닐까요? 핸드폰은 제 물건인데 말이에요.”
인권이 말을 이었다.
인권의 말은 상황을 지켜보는 장교사의 마음에 혼란을 주었다. 학교 규정상 핸드폰을 무단으로 사용하다 걸리면 압수를 하게 되어있었고, 지금까지 드러내 놓고 이 규정에 반대한 학생들은 없었다. 이 규정은 학생회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핸드폰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즉 규칙을 잘 지켰으면 애초에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박인권의 행동은 다소 뻔뻔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성실하고 말 잘 듣던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잘했다는 말이야?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 몰라. 핸드폰은 수업용으로만 사용하도록 되어있잖아.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어디서 네가 잘못해놓고 되려 반항이야?”
반항이라는 말에 박인권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하지만 박인권은 잠시 자신의 말투나 표정이 선생님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정말 이해가 안돼서 물어본 거예요. 우리나라는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나라잖아요. 대통령이라고 해서 제 물건을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인데, 학교가 제 물건을 가져갈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만약 잘못을 한 것이라면 벌을 받으면 되잖아요.”
박인권의 목소리에 김 고민 교사의 마음도 다소 누그러졌다. 김 교사도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어나갔다.
“사회에서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범죄에 사용된 물품을 압수해. 살인을 저지르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사용된 칼을 압수하고, 위조지폐범은 위조에 사용된 복사기를 압수하는 거야. 그러니까 소유물이 절대적으로 자기의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지. 그리고 애초에 왜 핸드폰을 쉬는 시간에 사용했니?”
‘범죄’라는 말이 김인권 학생의 감정을 자극했다. 홍당무처럼 얼굴이 빨개졌다.
“선생님, 핸드폰을 사용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쉬는 시간은 저희의 쉬는 시간인데 왜 그 시간까지 학교에서 규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잠시 무엇을 검색하려고 들여다보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학생회가 규칙을 정하면 다 따라야 하나요?”
김 고민 교사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권위를 지키기 위해 혼을 냈지만 김 교사 마음속의 감정과 이성이 충돌을 계속했다. 사회교사인 김 교사가 보기에 박인권의 말이 무조건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김 교사는 이 공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전략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이성의 목소리에 충실할 것인가 선택을 해야 했는데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김 고민 교사는 선배교사인 장선생을 바라보았다.
장교 사는 김 고민 교사와 눈을 마주치자 당황스러웠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인데 자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과거 같으면 “이 건방진 놈의 자식"하면서 학생을 주눅 들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장교사는 생활부장 최중재 교사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해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최중재 교사는 지금까지 봐왔던 생활지도 교사와는 달랐다. 최중재 교사의 별명은 ‘피스 메이커’였다. 모든 상황에서 최 교사는 평화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고려해서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는 해도 많은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서는 최천사로 불리면서 신망을 얻고 있었다. 장교사는 김 고민 교사의 눈길을 피해 최 교사의 자리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최 교사는 자리에 없었다. 왜냐하면 최 교사는 어느새 박인권 학생과 김 고민 교사 사이에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선생님도 인권이도 일단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 좋겠어요. 교무실이 다른 선생님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인데 다른 분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말이 맞는 말이라 김 교사와 박인권 학생은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는 두 당사자의 말이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두 사람의 갈등은 요사이 불거져 나온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의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생활지도부장을 하다 보니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규칙을 깡그리 무시한다고 이야기를 하시고 학생들은 인권이 무시당한다고 이야기를 하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어느 쪽도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는 말이나 행동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참에 교무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동의하시면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것이죠? 선생님?”
장교사가 물어보았다.
최 교사는 잠시 침묵하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떼며 말했다.
“학생들과 교사 모두 참여하는 인권 대토론회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요? 제가 보니까 인권에 대한 생각이나 방향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 참에 차이도 확인하고 좁힐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도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이기적으로 자기주장만 할 수도 있잖아요. 미숙한 학생들이 뭘 알겠어요”
김 고민 교사가 입을 삐죽이며 한마디 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자유주의자 밀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내게 알 수 있는 자유, 말할 자유, 그리고 자유롭게 논쟁할 자유를 달라. 자유롭게 풀려난 진리는 모든 오류의 가능성을 극복하고 승리할 것이다.’ 저는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속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다들 어떠십니까?”
인권 대토론회는 12월 10일 열렸다. 이 날은 ‘세계 인권선언’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날이었다. 최중재 교사는 이 날이 토론하기에 딱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날은 학교가 정한 인권 주간으로 온종일 인권 행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최중재 교사는 이날 오전은 대토론회를 그리고 오후에는 인권 전문가에게 특강을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인권 전문가인 미셀린 이샤이가 한국을 방문 중이었는데 고등학교 대상 특강임에도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인권 대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에 학생들은 대 찬성이었다. 반면교사들은 김 교사처럼 학생들이 불만이나 쏟아내고 불쾌한 말을 할까 봐 걱정을 하였다. 최 교사는 규칙을 정해서 대화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사회는 자신이 볼 테니 믿어달라는 말도 했다. 선생님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최 교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어렵게 인권 대토론회가 성사되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권 대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최 교사의 인사말에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일제강점기에 억압받던 민중의 함성소리 같았다. 최 교사는 여유를 잃지 않고 말했다.
“네, 열띤 함성 감사합니다. 관심을 표해주시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오늘 토론을 하는 목적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마이크를 잡은 학생이나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는 다 같이 경청하도록 합시다. 질서 있는 토론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어요?”
“네!”
우렁찬 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좋습니다. 그럼 이 토론회의 계기가 되었던 박인권 학생부터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박인권은 교무실에서와는 달리 다소 부끄러워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박인권입니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최중재 선생님, 그리고 학교 당국에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언성을 높여 이야기했던 것에 대한 사과의 말씀도 드립니다. 오늘은 차분하게 제 의견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소유권을 절대적인 권리로 인정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돈을 주고 구입한 소유물을 다른 사람이 가져갈 권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런 권리가 학교 안에서 쉽게 무시당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핸드폰 압수가 문제가 되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학교 교칙에 어긋난다며 귀걸이와 목걸이 등을 압수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화장품을 압수당하기도 했어요.”
맨 뒤 여학생이 외쳤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맞습니다. 화장품도 있네요. 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학교가 이것을 가져갈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규칙을 어겨서 벌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개인의 소유물까지 가져갈 권리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네, 박인권 학생 이야기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손을 드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니 학생들이 할 이야기가 많은가 보네요. 그럼 일단 학생들이 생각하는 인권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최대한 이야기해보고 그다음에 선생님들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떨까 싶네요. 그럼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들면 제가 마이크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른쪽 끝의 핑크머리 문현수 학생."
“2학년 3반 문현수입니다. 저는 두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우연히 동계올림픽을 보다 핑크머리를 한 쇼트트랙 선수를 보았습니다. 별명이 핑크 보이인가 그랬어요.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미장원에서 핑크머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선생님께 불려 가서 혼났어요. 학칙에 과도한 염색은 불가하다는 거예요.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제가 염색을 해서 친구가 화려한 색깔에 눈이 머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괴롭힌 것도 아니잖아요. 제 머리를 가지고 제가 하고 싶은데로 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요?”
“맞아요, 참, 저는 같은 반 김태희라고 합니다. 머리뿐 아니에요. 학교 규정에 보면 춘추복을 입을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양말의 색깔, 속옷의 색깔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춘추복 입는 기간에 동복을 입었다가 벌점을 받기도 했어요. 사실 추위를 타는지 안 타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개인의 복장을 가지고 학교가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학년 5반 박지현입니다. 저는 이성교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성이 교제하면서 공공장소에서 과도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서양에서는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 정서에서는 학생들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성교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개인이 자유롭게 누구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고, 사귈 수도 있는 것인데, 학교가 이것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지금이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학생들의 이야기가 점점 고조되었다. 저 멀리서 학생회장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학생회장이 손을 들었네요. 학생 회장 이야기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학생회장 이호근입니다. 학생들의 불만을 들으니 회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이런 문제를 학교에 이의 제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생각하는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발 자유 관련해서 제가 게시판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글을 붙인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 게시판에 글을 붙인 것인데도 지도교사에게 불려 가 혼났습니다. 허락 없이 붙였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부당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학교 내 집회를 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사전 불허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집회와 시위를 할 때 신고를 할지언정 허가를 받지는 않습니다. 표현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전에 검열이 이루어진다면 자신의 생각을 누가 맘껏 표현하겠습니까? 학생 자치라는 말은 해놓고 모든 것을 사전에 학교와 조율해야 한다면 그것을 자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학생회장의 비장한 발언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 회장의 발언이 많은 학생들의 마음을 만졌는데 무엇보다 이야기를 주저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만진 것 같았다. 그것은 박성실 학생의 발언에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3학년 4반 박성실이라고 합니다. 저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평범합니다. 학교 규칙도 잘 지키고, 대부분 학교 규칙에 큰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학교에 있는 특별반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학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학생은 능력에 따라 동일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즉, 부족한 학생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면서 동시에 학교 공간, 선생님 수업에 대한 기회가 동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특별반은 특별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반입니다. 별도의 공간을 제공받고, 실력이 우수한 선생님들이 이 학생들을 따로 가르칩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학습권이라는 인권의 침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술렁였다. 많은 학생들은 우열반을 다소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성실 학생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학교는 모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학습권이라는 말에 다른 학생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는 2학년 5반 김해솔입니다. 저는 임신한 학생의 학습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올 초 제 친구가 임신을 이유로 자퇴하였습니다. 친구들 중에서 안 좋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는데 더 큰 문제는 학교의 처사였습니다. 지역사회에 평판이 안 좋아지니까 자퇴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했습니다. 물론 강요는 아니었지만, 제 친구는 큰 압력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임신을 했어도 학생인 것은 변함이 없고 제 친구에게도 학습권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 학습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학교가 할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제 친구가 좋은 직업을 갖기는 힘들 것 같고, 육아와 가난을 모두 안고 살아야 하는 친구가 불쌍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7반 체육 반장 박 허약입니다. 저는 건강에 대한 권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19세기 노동자들의 삶이 극도로 열악해서 최저임금제와 노동 시간의 제한을 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교육은 19세기 포악한 자본가들보다 더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루 7시간 수업에 야간 자율 학습, 그리고 학원까지 다니면 하루에 자는 시간은 길어야 5시간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말조차 학원을 가야 하니 차라리 19세기로 돌아가 탄광 노동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주 45시간 근무니, 주 40시간 근무니 하면서 자신들의 건강은 예민하게 생각하면서 우리들에 대해서는 너무 잔인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요새 젊은이들 거칠다고 하는데요. 왜 거칠까요? 다 예민해지고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행복감을 느끼고 하루하루 살면 거칠 이유가 없지요"
많은 학생들이 이 말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눈물을 흘리는 학생조차 있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거친 표현들이 있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들 중 이야기하실 분은 말씀해주세요"
박인권 학생이 먼저 시작했듯이 김 고민 교사는 자신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손을 들었다.
“네, 김 고민 선생님이 먼저 손을 드셨네요. 말씀해주세요"
“박인권 학생의 담임 김 고민입니다.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박인권 학생과 교무실에서 언성을 높여 이야기한 후 저도 며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가르치는 사회 수업과 연결 지어 언행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순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럼 교사가 바라보는 학생 인권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인권은 모든 인간의 권리이고 학생들도 인간이므로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저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더라도 지나친 학생 인권 침해 때문에 분노한 적이 많았습니다. 성적 순이나 키 순으로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게 한 선생님들이 계셨고, 시험문제 좀 틀렸다고, 사소한 잘못 했다고 학생들을 몽둥이로 때린 선생님들도 계셨습니다. 심지어 학생들끼리 서로 뺨을 때리게 한 선생님이 계시기도 했습니다.”
김 고민 교사는 서로 뺨을 때리게 했다는 부분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학생 인권 조례가 제정되고 체벌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체벌이 없으면 학생을 지도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체벌 없이도 학교가 잘 유지되는 것을 보니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학생들이 제기한 인권 문제가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고민 교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학생이 교사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습니다. 성인이 된 사람이 어디에서 살든 어디로 옮기든 아무도 이를 막을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어른이 된다면 자녀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는 네 권리니 들어오던 나가든 알아서 해라”라고 하시겠습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의 안전을 위해 간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자녀의 핸드폰을 압수하거나 시간제한을 걸어 놓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이 말에 교사들 뿐 아니라 많은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 고민 교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학교는 이 학부모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조퇴를 할 때 허락을 하고, 다른 학급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다 학생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핸드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핸드폰을 규제하는 것은 선생님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것입니다. 물론 수업 시간에만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핸드폰을 쉬는 시간에 사용하게 되면 수업 시간까지 사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러므로 규칙을 어긴 학생의 휴대폰을 규정대로 압수하는 조치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점에서 생각이 좀 달라요.”
오른쪽 줄 끝에서 박인권 학생이 일어서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공기는 저번 교무실에서 있었던 긴장과 갈등의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운 헬륨 같은 느낌이었는데 학생 입장에서 충분히 말을 한 이후여서 그런 것 같았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소유니까 무조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고 말이에요. 하지만 벌어질 일이 두려워 규제를 하는 것이라면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깨진 창문 이론을 인권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김 고민 교사는 수업시간에 깨진 창문 이론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마을의 깨친 창문 하나에서 시작해서 마을이 점점 범죄화 될 수 있다는 설명을 했다. 그러므로 창문 하나가 깨졌을 때 범죄자들이 얕잡아보지 않도록 잘 수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김 고민 교사는 자신의 수업 내용을 응용해서 말한 박인권 학생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니?”
이제 대화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와의 대화처럼 이어졌다.
“권리는 언제나 남용의 소지가 있잖아요. 잘 지키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요. 염색을 해서 나쁜 길로 빠지는 친구가 있고, 자율적으로 시험을 보라고 해도 커닝을 하는 친구가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우려가 있다고 규제를 하게 되면 인권을 마땅히 누려도 될 친구들이 못 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상응하게 그 학생을 제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해솔 학생이 손을 들고 발언을 시작했다.
“저는 박인권 학생의 이야기도 모순이 있다고 봐요. 인권을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인권이라는 것이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니까,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도 그 권리를 누려야 하겠지요. 저는 우리가 학교 안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반드시 누려야 하는 인권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어느 누구도 체벌은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처럼요"
“아, 제 말뜻은 그게 아니었어요.. 제 말은..”
이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마치 학생들 뱃속 자명종 소리가 합쳐져 들리는 것 같았다.
“아쉽네요. 더 이야기를 나누면 좋았을 지점인데요.. 그래도 먹을 권리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니까 이건 지켜져야 하겠죠? 인권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는 오후 이샤이 교수 특강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상 최중재 교사였습니다.”
특강은 2시부터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자마자 특강을 시작하면 코미디언 할아버지가 와도 잠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었다. 장교 사는 잠시 학교 수업도 점심 먹고 낮잠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무리 유익한 강의도 학생들의 집중력은 20분을 넘기지 못한다. 강의는 이샤이 교수의 강의 후 사회자와의 일문-일답 형태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샤이 교수는 2시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이샤이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하지만 국제 인권 학계에서 명성이 높은 학자였다. 그녀가 강의를 위해 단상에 올랐을 때 시선이 집중되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그녀에게서 지적 단단함과 정서적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 그것은 우리가 ‘인권'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데 그런 점에서 그녀는 인권이 육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기도 하였다.
“여러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 학교의 인권 주간에 강의를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은 지난 세기 동안 제3세계 인권 투쟁의 선봉에 있었습니다.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에 맞서 싸운 한국이야말로 제3세계뿐 아니라 전 세계 인권의 귀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샤이 교수의 강의 시작은 한국에 대한 칭찬에서 시작되었다.
“저는 장선생님을 통해 여러분이 오전에 인권 대토론회를 개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과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네요. 오늘 저는 인권의 기원, 인권의 역사적 발전 과정, 그리고 현대 사회 인권의 도전에 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다소 긴 강의가 되겠지만 경청하여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이샤이 교수는 장교사에게 생수를 달라 요청하고 강의를 다시 이어나갔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우선 좋은 질문을 던져 주시면 좋겠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한국 사회에서는 좀 견디기 힘든 분위기다. 장선생님이 먼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기초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네, 질문의 시작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훌륭한 질문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인권이라고 하는 것인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지는 권리라고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인권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인권이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정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인권이라고 말하고 보장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오전에 말했던 내용들도 보장되어야 할 인권에 관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보장받아야 할 인권의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난 문서는 무엇일까요?”
“헌법이 아닐까요?”
회장이 대답을 하였다.
“네, 맞습니다. 각 나라의 헌법에는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각 나라의 헌법에서 보장받아야 할 헌법의 내용이 비슷해요. 그렇다면 많은 나라의 헌법이 참고로 한 문서가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것은 1948년 UN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선언입니다. 세계 인권 선언은 크게 30조 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카생이라는 분은 이 인권 선언을 사원의 늘어진 기둥으로 이루어진 현관에 비유했는데요, 제가 지금 하나하나 말씀드리면 시간이 너무 오래갈 것 같아요. 개략적으로 말씀드리면 1~2조가 하나의 기둥인데 이 기둥은 모든 사람이 향유해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하다'라는 선언이 그중 하나입니다. 3~19조의 둘째 기둥은 계몽시대 때 쟁취했던 1세대 인권입니다. 자유권이나 평등권의 내용들이 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6조는 세 번째 기둥으로 산업형명 시기에 쟁취했던 2세대 인권입니다. 이 인권에서는 사회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7~28조의 네 번째 기둥은 3세대 권리로 공동체적 유대나 민족의 권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네 개의 기둥이 29~30조를 떠받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질문 있습니다.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인권이라는 것이 서양에서 발달한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양을 너무 야만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요?”
이샤이 교수는 질문한 학생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인권 개념이 유럽에서 비롯된 것인가?’라는 질문인데요. 사실 각 지역마다 인권의 가치를 담고 있는 문화적 내용들이 많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귀족과 평민을 차별을 두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힌두교는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불교는 아시다시피 자비를 강조하는 데 이는 이웃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여러분의 유교문화권은 인권 친화적입니다. 정부가 국민의 복리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경우에도 평등과 박애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권 사상이 서양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했습니까?”
“다시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만약 15세기 이후 사회가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 흥하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이루어졌다면 서양 중심이 아닌 다른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더 강조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와 불교는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환경에 대한 권리는 훨씬 이른 시기부터 강조되고 지금의 지구온난화 문제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가정이고요. 어찌 되었건 여러분도 세계사 시간에 배워서 아시겠지만 서구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강성했고, 그 사회가 계몽주의 시대, 산업 혁명을 통해 발전하고 다른 나라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인권들은 사람들이 의논 끝에 결정한 권리가 아니고 이런 서구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권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권을 잘 이해하려면 그 인권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하고 발전했는지 이야기해야 하겠지요. 그 인권이 만들어진 취지를 알아야 인권문제로 갈등이 생겨도 잘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친구들과 잘 다투는 이유도 상대방이 말하는 배경과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잖아요. 그럼 다시 질문 던져 볼게요. 어떤 인권이 궁금하세요? 맨 앞에 앉은 학생 이야기해볼까요?”
“학교 생활이 자유가 없으니까 자유권이 아닐까요?”
“네, 출발이 좋군요. 여러분은 아마 신체의 자유가 가장 관심사인 것 같아요. 계몽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였습니다. 세계가 시간에 배우셨겠지만 중세 유럽에서 계몽기로 넘어가면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큰 다툼이 있어 수많은 사람이 전쟁과 박해로 죽었습니다. 또 과학적 진리를 종교의 이름으로 말을 못 하게 했어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이야기했다고 박해당했잖아요. 단순히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죠. 그래서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권리가 되었습니다. 밀턴이라는 분은 출판의 자유를 호소하면서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내게 알 수 있는 자유, 말할 자유, 그리고 자유롭게 논쟁할 자유를 달라. 자유롭게 풀려난 진리는 모든 오류의 가능성을 극복하고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어떤 표현을 하든 별 문제없는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투쟁의 결과죠. 사실 아직까지 이 자유를 획득하지 못한 나라들도 많습니다. 아주 가까이에는 북한이 있죠.”
“그렇다면 신체의 자유는 언제 강조된 건가요?”
“중세 사회가 근대 사회로 변하면서 왕과 교황, 그리고 성직자의 힘이 약해지고 상공인의 힘이 강해집니다. 상공인과 평민들은 권력자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재산을 뺏기고, 신체적으로 해를 당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 권리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권리장전은 벌금 및 잔인하거나 비정상적인 형벌을 가자히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홉스는 생명권은 너무 중요한 권리여서 사회 계약을 했더라도 생명권을 방어하지 못하면 그 계약은 무효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고문이나 무자비한 사형제도가 횡횡했는데요. 처음에는 악한 사람에게 자백을 받으려면 고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남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은 사형을 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점차 고문은 야만적인 구습이 되었고 사형제도도 아직까지 논쟁적이긴 하지만 인권을 강조하는 국가에서는 국가가 생명을 빼앗는 행위 자체가 잘못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은 고문을 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인데요. 교수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사회시간에 자유권 중 재산권이 중요한 권리로 이야기되는데 왜 재산권이 그렇게 중요한 권리인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문에 대한 견해는 제 견해보다 볼테르가 했던 이야기가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볼테르는 진실을 찾기 위해 고문을 하는 것은 누가 범인인지 가리기 위해 결투를 신청하는 것만큼 우둔하다고 보았습니다. 건장한 범인은 고문에 견디어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무고하고 병약한 사람은 고통 앞에 거짓 자백을 하기 하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즉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쉽다는 이야기겠죠. 재산권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질문을 해주신 것 같아요. 잠시만요"
이샤이 교수는 잠시 마이크를 놓고 물을 마셨다. 긴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에 대한 생각은 과거 사회에 비해 확실히 다른 의견들이 득세를 했습니다. 과거에 개인의 재산이라는 것은 국가가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인정되는 권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유교에서는 ‘왕토 사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하의 토지가 왕의 토지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 개인의 토지가 있었지만 그 권리가 하늘에서 온 권리라기보다는 국가가 인정하는 권리라고 생각했지요. 다시 생명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자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에 대한 권리가 누군가는 앗아갈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하늘이 부여할 수 있는 뺏길 수 없는 권리라고 생각하세요?”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하늘이 부여하거나 타고난 권리를 자연권이라고 하는데요. 근대 사회가 되면서 재산권도 생명권처럼 양도할 수 없는 자연적 권리라고 보았습니다. 로크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떤 농부가 사과나무를 심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때 사과나무에서 열린 사과는 당연히 농부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집 농부가 이 사과를 훔치러 와서 붙잡히면 이 농부가 이웃집 농부를 벌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제 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이웃집 농부를 벌할 권리, 형벌권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잘못을 저지른 친구를 직접 복수하고 싶지만 경찰에게 신고하지요? 국가가 만들어지면 이 형벌권은 국가가 가져가게 됩니다. 각자의 형벌의 종류와 정도가 달라 서로 다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사과에 대한 권리는 어떨까요? 로크는 국가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개인의 생명에 대한 권리가 절대적인 것처럼 이 소유에 대한 권리도 절대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국가라고 해서 개인의 소유권을 가져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산권이나 생명권은 빼앗길 수 없는 자연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이나 성직자들은 이런 생각을 싫어했겠네요?”
“네, 하지만 계몽주의 사회는 상공업자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부르주아 계급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계급들이 권력을 잡고 인권을 확대하는 사회였어요. 당시 부르주아 계급에게 인권이라는 것은 부르주아 계급에게 필요한 권리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계급의 성장과 함께 재산권과 생명권 같은 인권 개념이 계몽주의 시대에 확산되어갔고, 점차 부르주아 계급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산업혁명이 시기가 도래하면서 자유권이 가장 중요한 권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참정권이나 노동자의 기본권은 그 이후에 생긴 권리인가요?”
“그렇습니다. 이것도 세계사 시간에 배워서 어느 정도 아는 내용이실 겁니다. 계몽주의 이후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되고 유럽 사회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산업 혁명은 유럽 사회 전체의 생활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선 산업 혁명을 통해 자본가 계급이 사회를 완전히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다수 사람들이 노동자가 되고 공장에서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도시로 몰리면서 불결한 환경에서 굶주리고 살게 되는 빈민들의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빈민의 삶을 생각해보시면 될 거예요. 당시의 인권이라는 것은 말로는 모든 사람의 인권이지만 실제로는 부르주아들이 누리는 인권이었어요. 그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새로운 인권에 대한 요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요구는 무엇인지요?”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아노엘 바뵈프는 재산이 없는 무산계급이 참정권, 즉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에 제한을 당해 다른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평등한 경제적 사회적 권리 확보를 위해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차티스트 운동이 일어나 선거권 확대를 주장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1867년 2차 개정 선거법이 통과되면서 백만 명의 유권자가 늘어났고, 1918년 선거법으로 아무런 제한 규정이 없는 보통 선거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당연히 누리고 있는 선거에 대한 기본권도 사실 수백 년의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정권의 확대와 함께 진행되었고 20세기 초가 되어서야 확인받은 기본권은 사회권입니다. 사회권은 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열, 노동자 그룹에 의해 강조되었습니다. 영국의 실천적 사상가인 오언은 1816년에 어린이 교육을 호소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앵겔스는 1840년에 어린이들이 무상 공립 교육을 인정하도록 촉구했습니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이것이 법제화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1883년 공장법이 제정되어 9세 미만의 어린이가 방적 공장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15세 미만의 아동이 일을 하면 안 되고 청소년들이 심야근무를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18세기 19세기에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권관이 한국의 법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봐야겠지요. 어린아이에서 시작해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 확산되어갔습니다.”
“그럼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는 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보장이 되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면서 이런 사회적 기본권을 헌법 안에서 강조했습니다. 자유권이나 재산권 등은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만들 때까지 유보될 수 있다고 보았어요. 일시적으로 독재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세계사에서 배워서 아시겠지만 이 일시적 독재가 결국 장기 독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기본권을 앗아갔습니다. 지금 북한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노동자의 권리나, 교육의 권리 같은 사회적 기본권은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의 왕정의 비스마르크 총리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독일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세력을 막으려면 착취받는 다수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국가가 노동자들의 권리와 필요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죠. 그리고 북유럽의 경우는 소련의 생각과 달리 자유주의적 인권관과 사회주의적 인권관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정당하게 의회를 통해 선출된 정당이 집권을 해서 사회적 기본권과 자유주의적 기본권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는데 우리는 이를 복지국가의 출현이라고 합니다. 국민이 행복하게 살 권리, 그리고 국가가 이를 해주어야 할 의무가 하나의 인권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누가 핵심을 한 번 정리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왕과 투쟁하면서 자유주의적 기본권이 등장하고 발달했다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교육, 복지, 노동자 보호 같은 사회주의적 기본권이 발달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네, 아주 정리를 깔끔하게 잘하셨어요. 그래서 유엔 헌장에, 그리고 한국의 헌법에도 이런 자유주의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추가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이런 사회적 기본권이나 자유주의 기본권은 제국주의 사회에서 힘 있고 점령한 나라들의 기본권이었요. 점령당한 나라에는 이런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이 되지 않았어요. 점령당한 나라들이 생각해보니까 자신들에게 더 필요한 기본권은 민족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였어요. 이를 민족 자결권이라고 하는데요. 인도, 아프리카 및 아시아 피점령국, 일제 점령기의 한국과 같은 나라에게 필요한 기본권이었죠. ”
“그런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이 20세기 초에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유엔 헌장에는 어떻게 사회적 기본권과 자유주의적 기본권이 모두 포함되게 되었나요?”
“20세기 초에 있었던 두 번의 전쟁의 영향이 큽니다. 두 번의 전쟁은 승자 국이든 패자 국이든 인간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인류사적 비극을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UN이 창설되면서 국제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유지를 위해 양 진영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인권 선언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인권 선언 초안에 참여했던 찰스 말리크는 사회적 기본권의 강조가 개인성과 궁극적인 불가침 한 인권에 큰 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반대로 리브니카르는 사람이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떻게 인간의 권리를 갖게 되느냐고 반문했죠. 사회적 기본권과 자유주의적 기본권이 충돌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인권에 대한 두 견해가 모두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UN 인권 선언을 주도했던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는 이 인권 선언이 세계만방의 모든 이들에게 국제적인 마그나카르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국제적 기준이 될 것이라 말한 것이죠.
이 선언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양 진영은 인권 선언을 바탕으로 인권을 적극적으로 수호하기보다는 인권 선언을 근거로 다른 진영을 비판하기에 바빴습니다. 인권 선언을 수단화한 거죠. 예를 들어 자유주의 진영은 출판의 자유가 없는 공산 진영을 비판하고 사회주의 진영은 사회적 기본권이 잘 보장되지 않는 자유주의 진영을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인권 선언은 전 지구가 실현할 중요한 규칙이 되어 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세요. 이런 준칙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다른 나라나 다른 권력 집단이 인권을 지키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인간의 권리를 쟁취해서 얻어낸 것이죠. 왕에 대항해서 자유에 대한 권리를 얻어냈고, 특권층과 대항하며 투표권을 얻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파업 등을 통해 노동에 관한 기본권을 얻어냈습니다. 두 번의 전쟁으로 우리가 얻어낸 인권의 가치가 훼손되었지만 유엔을 중심으로 이를 다시 재건하고 확인했습니다. 물론 국제 사회가 힘이 지배하는 사회지만 어떤 사회도 인권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인권을 잘 보장하지 않는 나라들도 자신들의 인권을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인권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만 하더라도 전 세계의 인권은 진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의 가치는 항상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도전에 대응해서 새로운 인권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제 여러분 세대의 몫입니다. 오늘 인권 토론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비판할 줄 아는 여러분 때문에 한국 인권의 발달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샤이 교수의 목소리는 결의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박수갈채가 시청각실을 가득 메웠다.
이샤이 교수와 학생들과의 만남은 이샤이 교수의 요청에 의해 저녁 시간에 이루어졌다. 이샤이 교수는 인권에 대해 발언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말했고 학생들은 흔쾌히 수락을 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한국 관광도 하시고 강남에서 강남스타일 춤도 한 번 추셔야 하는 데 마다하고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아닙니다. 장선생님. 그건 내일 하면 되지요. 학생들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 특히 한국의 학생들이 인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던 학생들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도 함께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 반가워요"
“네, 반갑습니다. 교수님"
학생들 모두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자 그럼 어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우선 오후 강의 중에 궁금했는 데 이야기 못 나눈 것부터 말해보면 좋겠어요"
“그럼 제가 먼저 질문드려보겠습니다.”
김태희 학생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아니 교수님"
김태희 학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괜찮아요. 선생님이면 어떻고 교수님이면 어때요. 편하게 말해주세요"
“네, 교수님. 고맙습니다. 저는 교수님 강의 중에 여성 인권 이야기가 빠져서 아쉬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성이 보통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20세기 초반이라고 들었어요. 여성의 인권은 왜 늦게 획득된 것일까요?”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큰 흐름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여성 이야기를 뺐어요. 하지만 여성 인권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늦게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네요. 인권은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과거부터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인간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겼던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남성들에 의해 그렇게 정해진 거죠. 유럽에서는 흑인과 여성이 그랬습니다.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했지만 여기에서 여자는 제외가 되었죠. 그래서 프랑스혁명 초기부터 여성 운동가들은 이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올랭프 드 구주는 1791년 프랑스 인권선언을 비꼬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남성과 동일한 권리를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내용 제가 한 번 읽어볼게요,
“여성이여 일어나라, 이성의 종소리가 전 우주에 울려 퍼지고 있다… 남자는 일단 자유롭게 되자 자기의 반려에게 불공평해졌다… 혁명으로 너희가 무슨 이득을 얻었느냐?.. 너희는 이렇게 말하여야 한다. 남녀가 다를 게 무엇이냐. 모든 게 다 똑같다.”
하지만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똑같은 인권을 부여하지 않았어요. 구주의 경우는 사형을 당했어요. 그래서 19세기에 여성들이 여성의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투쟁을 하게 됩니다. 합법적인 계몽운동부터 상가 유리창을 부수는 등의 비합법적인 과격 투쟁까지요. 여성의 권리가 확대된 계기는 1차 세계 대전이었어요. 당시 여성 참전자도 있었고 여성도 국가를 지키는 데 같이 기여했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를 무시할 수 없었던 거예요. 이후에 참정권이 보장되고 이를 계기로 남녀평등에 대한 다양한 입법들이 이루어집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을 하려면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까지 여성이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차별받는 곳이 많아요. 하지만 점차 좋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청소년의 건강권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교수님께 강의를 듣다 보니 산업혁명 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 착취를 당한 것 같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보호를 위해 탄광 노동을 금지시키고 노동 시간을 제한했는데요. 한국의 경우 노동은 아니지만 지나친 공부 때문에 건강이라는 기본권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허약 학생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한국이 인적자본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한 것은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한국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를 하는지요?”
“아침 8시에서 12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4시간이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침 8시에서 밤 12시까지입니다.”
“오 마이 갓, 거의 16시간이네요. 공부는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학생의 건강권이 보장 안된다는 점에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네요. 국가 차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여러분도 당연한 권리를 지키게 해달라고 요구할 문제이기도 하고요"
“저도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전 대토론회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학교가 부모로부터 학생의 교육을 위임받은 것이니까 학생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교수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장교사가 질문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나라나 부모가 자녀가 모든 것을 맘껏 할 수 있도록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각 나라마다 허용되는 범위나 시기가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을 건전하고 역량 있는 시민이 되도록 어느 정도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봐요. 통금시간, tv나 인터넷 시청 제한, 술과 담배의 제한 등이 이에 해당되겠죠. 학교가 부모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할 때 학생들을 건전한 시민이 되도록 제한해야 하는 점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권의 발달 역사로 볼 때 그 제한이라는 것이 일단 본질적인 것까지 침해해서는 안 되겠고, 제한의 내용이나 범위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의할만한 수준으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4시까지 수업인데 공부를 원하는 다수 학생이 있다고 해서 모든 학생을 5시까지 남게 하는 것 같은 것은 안 되겠죠. 그런 원칙하에서 학교의 제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헌법에도 기본권을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지만 그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못 박아 놓았잖아요. 그게 대원칙이어야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입니다. 저는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저희 시대가 만들어갈 인권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답을 하기보다는 각 학생들이 대답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사이 눈에 띄게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난민들이 아닐까요? 자기 살던 지역에서 쫓겨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들어오려 했던 난민들이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할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인데 별명이 임계장이래요. 임시 계약직 노인네를 조롱하듯 부르는 거죠. 저희 할아버지가 계약직이라고 재계약을 빌미로 별의별 일을 다 시키더라고요.”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동을 하고 있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도 심각한 것 같습니다. 월급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도 많고 인격적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요.”
“모두 잘 이야기해주셨어요. 방금 말씀하신 인권 문제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만약 전 세계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더라면 두드러진 문제가 아니었을 거라는 겁니다. 세계화라고는 들어보셨죠? 현대 사회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경제적으로 밀접해지면서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요. 이것을 세계화라고 합니다. 전 세계가 밀접 해지 다 보니까 노동의 이동도 활발해지고 전쟁 기근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이주로 난민 문제가 크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도 세계화 시대에 각국이 유연하게 경쟁을 하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기도 하고요. 즉,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인권 문제들이 발생하는 데 이것이 난민, 비정규직 노동자, 제3세계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로 나타나게 되는 거지요. 세계화로 인한 또 다른 문제들이 있어요. 기업들이 전 세계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으니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대항해 노동권을 온전히 행사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 문제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쾌적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이것이 잘 보장되지 않는 거예요. 산업사회 이후 환경오염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지금은 환경 문제의 원인이 아닌 투발루 같은 나라들이 피해를 볼 정도로 전 지구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화를 중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요?”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책에서 세계화를 비판하는 쪽에서 답을 찾는 사람들을 스파르타쿠스파라고 불렀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제국 시대의 노예로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이죠. 로마 제국은 당시의 세계화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들은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인권신장을 강조하면서 막상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을 비판해요. 사우디 왕세자가 유력 언론인을 암살했다고 강대국이 비난하다가도 유가가 상승하니까 이들과 화해하는 식의 행태를 비난합니다. 강대국들이 인권을 문제 삼으며 개입하는 나라와 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는데 개입하지 않는 나라들은 주로 미국과 경제적 군사적 이익이 별로 없는 나라들이에요. 그러니까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허구라고 비판을 하는 겁니다.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가 인권 신장에 도움을 준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이 사람들을 제국주의를 확대하려 했던 시이저에서 이름을 빌려와 시이저파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로마제국이나 나폴레옹 제국이 더 나은 인간적 삶을 제공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도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으세요?”
“저는 절충적 입장이에요. 스파르타쿠스파의 경우 미국의 개입을 싫어하면서도 전 세계 전쟁과 학살 상황에서는 강대국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모순이 있고요, 시저파는 강대국의 개입이 인권 확대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 개입으로 인권이 신장된 나라는 많지 않다는 모순이 있어요. 전 세계적 경제 성장이 사람들의 삶을 향상한 것도 사실이고 환경오염을 가중시킨 것도 사실이에요. 강대국의 인권 강조의 진실이 의심되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인권의 강조를 통해 인권이 세계의 중요한 규범으로 확인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저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인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싸우지 말고 단합하여 화해, 민주주의, 그리로 인권을 향한 비폭력 전략을 고안해야 합니다. 저는 유엔과 국제기구, 그리고 NGO가 힘을 모아 인권에 대한 통합적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는 데 그것이 여러분의 몫이라 생각해요"
박인권 학생이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토론회가 만들어진 첫 시작점이기도 했는데요. 제 핸드폰을 압수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소유에 대한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으로 절대적인 권리가 아닌가 생각되어 반발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 압수는 완전히 뺏는 것은 아니니까 기본권의 제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것에 대해 학생들이나 선생님들마다 생각이 다르실 거예요. 저는 여전히 이 문제는 몇십 년 후에 체벌의 문제처럼 당연히 뺏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 생각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문, 노예제, 여성 참정권 등의 인권문제가 처음에는 소수 의견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자명한 것이 된 것처럼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진짜 말은 그건 아니고요. 제가 진짜 말씀드리고 싶은 말은 이런 토의와 논쟁, 그리고 배움이 우리를 더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인권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었고, 인권 문제가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숙고하는 마음이 생겼고 이제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아요. 이것이 제가 진짜 배우게 된 귀한 것이에요.”
이샤이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제를 제기한 박인권 학생에게 내가 고마워요.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인권이라는 것이 더 발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박인권 학생 말씀처럼 인권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내가 억압받기 싫다면 흑인 노예도 똑같이 싫을 테니 노예제도는 폐지해야 하겠죠. 남성으로서 하기 싫은 것은 여성도 하기 싫고, 남성이 누리고 싶은 것은 여성도 누리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남녀평등도 앞당겨질 것 같아요. 이런 것을 사자성어로 뭐라고 하던데요. 욕지사지?”
“역지사지입니다. 교수님. 욕지사지는 발음이 좀 그렇네요. 하하”
장교사가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장 교수의 말에 학생들과 이샤이 교수 모두 크게 웃었다. 어느새 보름달이 창문 뒤로 올라와 환히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