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촉 Nov 11. 2024

FINDING NIMO: Not in my office

사무실 밖, 나의 일상을 찾아서

Not in my office

   나는 여느 MZ와 같이 직장에서 성취를 통한 인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성취동기가 높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어떤 성과가 남아서 그를 통해 인정받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높은 성취동기와 그놈의 서기관 마인드 덕분에 어려운 업무가 생겨도 ‘언제 이걸 해보겠나’ 혹은 ‘이걸 해 내서 내 실력을 보여줘야지’ 따위의 생각을 했다. 덕분에 사업부서에서는 영업과 다름없는 업무를 맡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실적을 올려 시장표창을 2년 연속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성취동기에 관한 성격은 그야말로 공무원과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공무원 업무 자체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행 절차와 결과 등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업무(법정 업무)가 대부분이라 단순히 그저 문제없이 법을 잘 집행하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하듯 원래 잘 굴러가던 업무를 맡아 계속 잘 굴린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격한 칭찬을 해주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전임자와는 다른 무언가를 해 내려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방직치고는 운 좋게 승진최소연한을 채우고 별 경쟁 없이 승진을 하고 나서 한… 3년 차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 모든 노력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곧 승진 적체가 시작되었고, 나는 애초에 회사에서 성취감을 느끼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행정학을 전공하며 '공무원 성과관리의 특징: 매우 모호한 기준 어쩌구' 하는 것을 시험 기간만 되면 머리로만 외우고는 했었는데, 그것이 내가 근무하는 공무원 조직에서는 수시로 일어나고 있었다.(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공익을 위한 업무에 어떤 성과가 있단 말인가. 성격이 각각 다른 수많은 업무가 있는 조직의 특성상 A부서에서 근무하는 내 성과와 B부서에서 근무하는 다른 직원의 성과 중 무엇이 더 뛰어나고, 누가 더 고생을 했으며, 그러므로 나와 누군가 중에 누가 더 잘했는가에 대한 평가에 대한 기준은 당연히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근무시간의 양만으로 판단할 수도 없었고, 어떤 업무가 더 어려운 업무인가에 대한 기준을 정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누구는 이래서 승진을 해야 했고, 누구는 저래서 근무성적평정을 높게 받아야만 했다. 나는 어떤 날은 나이로, 어떤 날은 부서 서열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하면서도 창의적인 이유들로 밀리고 밀려가며 근평 밀림 서열 밀림 승진 밀림으로 밀림의 왕 사자가 되어가고 있었.


“직장인이 월급하고 승진 빼면 뭐가 남냐.” (드라마 <미생> 중에서)


   김대리의 대사에 따르면, 나는 이제 직장인에서 반쪽만 남은 사람이 되었다. 그럼 이제 나는 '반짱인'인가. 이렇게 밀릴 줄 알았다면 진작 시험을 다시 볼 것을 그랬다며 후회해보기도 했다. 요즘은 경쟁률도 많이 낮고 다들 공무원이 하기 싫다고 난리인데, 정말로 마음먹고 도전해 볼까 불쑥불쑥 생각이 덮쳐왔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간들에 너무 많은 힘을 빼서 도저히 더 이상 다시 수험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밀린 평정은 곧 밀린 서열을 남겼고, 승진이 결정되는 시기까지는 통상 2개월 정도 소요되었는데, 그래서 상하반기 연 4개월은 늘 억울한 기분으로 회사를 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나의 성취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으면 안 되었다. 나의 성취동기는 NIMO였다. Not in my office. 나는 다른 곳에서 나의 니모를 찾아야 했다.



퇴근 후 일상, 니모를 찾아서

   상담 선생님이 상담 첫날부터 줄곧 나에게 이야기했던 것은 '워라밸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회사 일에 너무 골몰해 있으며, 그래서 퇴근 후 일상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록 마우스 몇 번 딸깍이면 그만인 업무를 맡고 있을지라도, 나의 일상에서 회사는 늘 80% 정도의 비율이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그러했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도 남은 업무나 일정이 떠오르기도 했고, 민원 걱정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나에게는 나의 50% 이상을 쏟을 수 있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선생님은 줄곧 나에게 연애를 권했다. 다 큰 어른이 있지도 않던 취미생활을 갑자기 찾는 것은 어려우므로, 연애는 내가 회사 일과 회사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쉬운 방법이었다. 사람 하나를 처음부터 알아가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회사에 두던 비중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웬만하면 나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이 연애 쪽이었으므로, 회사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기분이 상할 일도 별로 없었다. 팀장이 뭐라 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연애는 나의 일상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여,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회사에 두던 80%의 비중을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아가 주변 직원 중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회사에 대한 비중이 매우 줄어드는 듯 보였다. 특히 공무원은 육아휴직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요즘은 적극 권장까지 하고 있어 오히려 결혼과 육아를 하지 않으면 손해일 지경이기 때문에, 나는 이 부분이 어쩌면 연애와 결혼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애라는 것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데에 문제가 있다.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연애를 하지 않는 기간 동안에는 반드시 취미가 필요했다. 공무원에 임용되기 전에는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연을 찾아다니며 열렬히 덕질을 하기도 하면서 에너지를 불태웠지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회사에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정적인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10년째 계속해오고 있었던 요가와 필라테스가 생각을 비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다니는 회사가 서울 한복판에 있으므로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고 도전해 보기에 매우 적합했다. 서촌에서 마들렌 만들기나 타르트 만들기와 같은 제빵 원데이클래스를 수강하거나, 꽃바구니 만들기, 양모인형 만들기, 가죽공예 공방에서 소품 만들기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교보문고가 회사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저자 강연 프로그램에 자주 갔다. 저자 강연을 통해 좋아하는 책의 작가들에게 한두 번 사인을 받다 보니 용기가 생겨서 아예 출판사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 두었다가, 신간 북토크가 열리면 찾아가기도 했다. 인문학이나 과학, 심리학, 철학과 같은 책의 작가들은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였기 때문에 저자 강연에서 책 내용을 압축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소설 작가들의 경우 내가 읽어낸 것과 작가가 의도한 것이 같은지, 혹은 다른 의도가 더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특히 아예 모르는 것을 새로 배우는 것에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아예 모르는지에 대해 파악해 보고 일부러 그것들을 배우러 다녔다. 주식이나 거시경제와 관련한 강의나, 클래식 음악 모임, 혹은 미술사학 강연 같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워보기도 했고, 회사 근처 요리학원의 한식 조리사 자격증 과정에 등록해서 3개월 간 퇴근 후 조기를 굽고, 고기를 다지며 기어코 자격증을 따 내기도 했다. 아예 모르는 것에 대해 하나둘 알아가는 것에서 조금씩 성취감을 채웠다. 그리고 올해는 브런치스토리에 도전했고, 글을 써서 발행하는 것 또한 나의 퇴근 후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 뚜렷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나는 수많은 새로운 취미들을 경험하며 조금씩 퇴근 후 나의 일상을 만들었다. 새로운 취미들을 배우는 것은 작은 성취들을 쌓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공무원만 가득한 회사를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이었다. 퇴근 후에는 최대한 퇴근 후의 일상에만 집중하며, 내 마음속에서 회사 스위치를 툭 꺼버리는 연습을 했다.


   올해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윤홍균 작가님은 저서 <자존감수업>에서 자존감을 훼손하는 직업을 나열했는데, 그중에는 ‘감정 노동자’, ‘동료의 사직을 바라보는 직장인’, ‘수험생, 대학생, 취업 준비생’이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속의 나는 이 모든 것에 해당한다.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부정할 수 없음과 허탈함이 함께 밀려와 코웃음을 쳤는데, 바로 다음 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의 마음에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꿈, 성장, 자아실현, 가족 같은 분위기는 죄다 사장들이 꾸며낸 환상이다. 직장은 일을 끊임없이 시키고 그 대가를 쥐꼬리만큼 쥐어주고 생색이나 내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직장에서 자존감을 시험하지 말 일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직장과 직업, 꿈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했으면 한다. (중략) 우리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퇴근 이후의 삶을 위해서 살아간다. (윤홍균, <자존감수업> 중에서)


많은 위로를 주었던 작가님을 올해 교보문고 강연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상의 민들레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